재판거래 등 핵심 혐의 “실체 사라져” 무죄, 일부 단독범행 유죄…2심 직권남용 법리다툼 불꽃튈 듯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1부(부장판사 김현순·조승우·방윤섭)는 2월 5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된 임 전 차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2018년 11월 기소 이후 약 5년 3개월 만이다.
#양·임 재판부 일부 판단 달라
약 40분가량 진행된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이 받는 대다수의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의 주요 쟁점이었던 재판개입 관련 혐의도 대부분 인정되지 않았다. 양 전 원장의 재판에 이어 이번에도 ‘권한이 없으니 남용도 없다’는 직권남용 법리가 적용됐다.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려면 ‘직권’이 있어야 하는데 사법행정권자인 임 전 차장에게는 일선 재판에 개입할 직무상 권한이 없기에 직권남용죄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 재판개입으로 지목된 강제징용 손해배상 재상고 사건 관련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 재판부는 “외교부 의견 반영 검토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인정돼 재판 독립을 침해했다고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가 나왔고 위안부 관련 소송 검토 역시 “재판절차와 결론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없어 직권남용으로 볼 수 없다”고 봤다. 같은 논리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건과 관련한 직권남용 혐의 △통진당 행정소송 관련 재판개입 혐의 등도 무죄가 됐다.
임 전 차장의 국제인권법연구회 및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인사모) 등 법원 내 학술모임을 부당하게 축소하고 탈퇴를 종용하는 취지의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부분 역시 “관련 예규에 따른 행동”이었다면서 “필요성과 상당성이 인정되는 업무 범위 내의 행위”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직권에 대한 판단이 다르다 보니 양 전 대법원장의 1심 재판부 판단과 엇갈린 부분도 있었다. 서기호 전 의원의 판사 재임용 탈락 불복소송에 개입한 것을 두고 양 전 법원장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의 개입이 인정된다고 봤지만 이번 재판부는 무죄라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장을 비판하는 내용의 기사를 사법정책심의관에게 대필하게 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양 전 대법원장 재판부의 경우 “헌재소장에 대한 비판적 내용의 자료를 제공하는 것은 보도자료 제공으로도 충분해 보이며 사법정책심의관이 거부의사도 표시했다”면서 임 전 차장의 직권남용을 인정한 반면 이번 재판부는 “(기사가) 허위 내용이 아니고 이는 대외업무 담당자가 정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취지로 무죄를 선고하며 다른 결론을 냈다.
한편 유죄가 인정된 혐의는 임 전 차장 단독범행으로 결론 내렸다. 구체적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재항고이유서 관련 검토 지시 및 청와대 전달 혐의 △국회의원 사건 관련 검토 지시 혐의 △헌법재판소(헌재) 파견 법관에 대한 사건 정보 및 자료 수집 지시 등 10개 혐의다.
이를 두고 재판부는 “사법부의 독립을 수호하고 사명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 국가가 부여한 사법행정권을 사유화했다”면서 “사법행정권을 특정 국회의원과 청와대에 이용한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검찰 “직권남용 해석 범위 넓혀야”
판결문에는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지적하는 듯한 대목도 있었다. 유무죄 판단 이후 이어진 양형 이유를 밝히는 과정에서 재판부는 “수사 초기 언론을 통해 국민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던 ‘사법농단’이나 ‘재판거래’에 관한 중대한 의혹들은 수많은 검사들이 투입돼 수사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가 300쪽이 넘는 분량의 공소사실로 정리되는 동안 대부분의 실체가 사라졌다”고 우회적으로 검찰을 비판한 뒤 “이러한 혐의사실들도 본 판결에서 보듯 대부분 범죄가 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됐다”고 했다.
또 “(임 전 차장이) 사법농단 핵심으로 지목돼 오랜 기간 대내외적으로 질타의 대상이 됐고, 유죄로 판명된 사실보다 몇 배나 더 많았던 혐의를 벗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비용을 소비해야만 하는 일종의 사회적 형벌을 받았다”며 “이 사건 범죄와 관련해 500일이 넘는 기간 구금되며 자신의 과오에 대해 반성도 했다”고 덧붙였다. 임 전 차장은 선고 결과를 듣는 내내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법원 안팎에서는 재판부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너무 좁게 해석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사법농단 의혹을 처음 제기한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양 전 대법원장 선고 이후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재판개입 사실은 인정된다면서 (임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이) 무죄라면 실무진은 누구의 지시를 받은 것인가”라고 반문했고 직권남용에 대해서도 “재판에 개입하는 게 권한이 없는 일인데, 권한이 없는 일을 아예 했기 때문에 무죄다 이런 법리를 우리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겠나”라고 비판했다.
이날 법정에서 만난 한 형사 전문 변호사는 “사법농단 판결을 종합하면 재판 개입이 있긴 했으나 실무진 선에서 행해진 것이고 일부 적법하지 않은 행위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나 직권남용이 아니거나 위법성이 조각돼 형사처벌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라며 “말장난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법리만 따져보면 위와 같은 결론이 나온다”고 말했다.
다만 법 적용에 있어서 법원의 논리가 일관적이지 않은 부분은 있다고 했다. 앞서 유죄 선고를 받은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1심 재판부가 ‘직무권한 범위 내 남용’뿐만 아니라 ‘권한 유월형 직권남용’까지 인정한 까닭에서다. 당시 재판부는 대법원장 등에겐 재판사무 핵심 영역에 대해 지적할 수 있는 권한이 존재하며, 그 행위가 지적을 넘어 권고가 되는 순간 직권남용이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이를 두고 앞서의 변호사는 “검찰이 최근 양 전 대법원장 판결에 항소하며 강조한 부분도 이 지점이다. 법상 권한이 없더라도 사실상의 권한이 있다면 직권남용 해석을 넓게 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만약 검찰이 이번에도 항소한다면 2심 재판은 직권남용에 대한 법리다툼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편 검찰은 판결문을 분석한 후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서울중앙지검은 5일 “이날 선고된 임 전 차장의 1심 판결과 관련해 판결의 사실인정과 법리판단을 면밀하게 검토·분석하여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이미 양 전 대법원장 1심에 항소한 만큼 이번 판결에도 항소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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