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 실망 안긴 결과에 태도 논란으로 분노 더해…이제 화살은 정몽규 회장에게 향해
#"분석하겠다"더니 미국으로 떠나
결코 만족할 수 없는 과정과 결과였다. 당초 목표는 우승이었다. 대회 정상급 선수진을 자랑하던 대표팀이었기에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대표팀은 실망스런 모습만을 연출했다. 첫 경기 바레인을 상대로 3-1 승리를 거둔 이후 시원스런 경기력을 보이지 못했다. 조별리그를 1승 2무로 통과, 토너먼트에서는 두 경기 연속 연장전을 치렀다. 결국 4강 요르단전에서는 유효슈팅 0개를 기록하며 완패했다.
한국의 아시안컵 여정이 마무리된 이후 감독 경질 여론이 들끓었다. 선수단 관리, 선수기용, 전술 등을 놓고 갖가지 지적이 나왔다. 4강에는 들었지만 무기력하게 대회를 치른 책임을 져야한다는 주장이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대회 전부터 불안한 행보를 이어왔다. 그의 잦은 외도가 문제가 됐다. 이전 커리어에서도 '재택근무' 문제가 불거졌던 인물이다. 취임 당시 대한축구협회는 "계약 조건은 재임 기간 내 한국 거주가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의 습관은 여전했다. 유럽 원정 친선경기 일정 당시 감독은 이미 유럽에 나가 있었고 선수들만이 소집돼 출국길에 올랐다. 국내에서 일정을 소화하기보다는 해외에서 체류하는 기간이 길었다. 취임 당시 '업무가 많다'며 파주 국가대표 트레이닝 센터에 사무실을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던 전임 파울루 벤투 감독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 같은 외도는 부작용을 낳은 듯했다. 평가전 과정에서 국내 리그 소속 선수들의 기용법이 도마에 올랐고, 아시안컵에서도 선수기용과 관련해 물음표가 달렸다.
비판 여론이 들끓었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스스로 물러날 뜻이 없어 보였다. 그는 대회를 마친 이후 "한국으로 돌아가 이번 대회를 분석할 것이다. 월드컵 예선 경기가 곧 다가온다. 할일이 많다"는 말을 남겼다. 축구협회 또한 이렇다 할 입장을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설 연휴가 지나며 분위기는 더욱 경질로 가닥이 잡혔다. "돌아가서 분석하겠다"던 클린스만 감독이 대회를 마치고 귀국 이틀 만인 지난 10일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는 것이 알려지면서다.
#대표팀의 잃어버린 1년
클린스만 감독에 대한 비토 여론은 극에 달했다. 연휴 기간이 끝난 13일부터 대한축구협회가 자리 잡은 축구회관 앞에는 클린스만 감독, 정몽규 회장을 규탄하는 팬들이 찾아 시위를 진행했다.
이날 '축구협회 개혁의 시작, 정몽규와 관계자들 일괄 사퇴하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과 음향장비 등을 동원해 시위에 나선 강민구 씨는 "나는 어떤 단체를 조직한 것도 아닌 일개 축구팬이다. 축구협회 행태를 참을 수가 없어 이렇게 나왔다"고 말했다. 이튿날에는 또 다른 팬들이 시위를 진행했으며 15일에는 강 씨가 다시 나섰다. 이외에도 축구회관에는 항의의 뜻이 담긴 팬들의 근조 화환이 세워지기도 했다.
시위 첫날, 현장에서 목소리를 높이던 팬들의 입에서는 강남 또는 용산 등 축구는 거리가 있는 지명이 언급됐다. 정몽규 회장이 이끄는 HDC에도 압박을 가할지 논의를 한 것이다. 이는 정 회장이 대회 이후 자취를 감춘 탓이다.
정 회장은 대표팀이 4강에 진출하자 대회가 열리는 카타르 현장을 찾아 훈련을 지켜보기도 했으나 탈락 이후 두문불출했다. 대회 이후 12일 황보관 기술본부장과 마이클 뮐러 전력강화위원장의 미팅, 13일 임원회의에 모두 불참했다. 15일 이어진 전력강화위원회 결과 브리핑도 황보관 본부장이 나섰다.
이 같은 정몽규 회장의 '잠행'은 이웃나라 일본의 사례와 대조를 이룬다. 일본 역시 이번 대회 유력한 우승후보로 꼽혔으나 대표팀 소속 선수의 사생활 문제가 대회 중 불거졌고 8강에서 이란에 패해 조기 탈락하는 등 혼란을 겪었다. 그럼에도 다지마 고조 일본축구협회장은 문제가 된 선수에 대해 입장을 밝혔고 대회 탈락 이후에도 감독 거취를 직접 설명한 바 있다.
정 회장은 결국 아시안컵 이후 열흘이 지난 16일 오전, 임원회의에 참석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약 2시간의 회의 이후 그는 결국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을 공식 발표했다. 월드컵 16강에 진출했던 대표팀을 이어 받은 클린스만 감독이 임기 1년도 채우지 못한 채로 여정을 마무리하게 된 것이다.
#정몽규 회장 책임론 불거져
클린스만 감독은 팀을 떠나게 됐다. 이제 화살은 정몽규 회장에게 향하고 있다.
이번 아시안컵에 나선 대표팀은 '황금세대'로 불렸다. 지난 월드컵서 강호 포르투갈을 상대로 승리, 월드컵 16강에 오른 멤버들이 대거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사이 주요 자원들은 유럽의 중심으로 소속팀을 옮기거나 더 나은 활약을 하고 있다.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 재임 기간, 대표팀은 1년을 허비했다. 4년에 한 번 찾아오는 아시안컵 또한 우승 기회를 날렸다.
이에 자연스레 정 회장의 책임론이 불거진다. 정 회장은 16일 입장을 발표하며 클린스만 감독에 대해 "경기 운용, 선수 관리, 근무 태도 등 대표팀 감독에게 기대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감독을 선임한 것이 협회와 그 수장인 정 회장이라는 지적이 뒤따른다.
그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책임을 묻는 질문에 정 회장은 "종합적인 책임은 저와 협회에 있다"면서도 "앞으로 자세히 대책을 세우겠다"며 두루뭉술한 답을 내놨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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