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 후보가 2일 박선숙 선거총괄본부장과 함께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을 방문해 이희호 여사와 면담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현재 세 후보 공히 감출 수 없는 아킬레스건을 드러내며 매우 위태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두 달여 남은 기간 동안 자신들의 약점을 얼마나 잘 커버하느냐에 따라 대선의 승부가 갈릴 전망이다. 이런 예상의 최정점에 서 있는 주자가 바로 안철수 후보다. 흔히 말해서 그는 ‘모 아니면 도’의 기로에 서 있다. 안철수 바람은 여전히 강하게 불고 있지만 정치적 노하우가 필요한 조직관리가 그 바람을 따라주지 못해 점수를 조금씩 까먹고 있다는 것이다. 깊어가는 안철수 캠프의 위기론을 심층 진단해봤다.
안철수 바람이라는 안 후보의 ‘하드웨어’는 여전히 강고하게 작동 중이다. 각종 검증공세와 정책실종 등의 미비점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지지율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웬만한 후보 같았으면 거품이 빠진다는 얘기가 벌써 흘러나왔겠지만, 이 정도면 잘 버티고 있다는 평가가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하지만 일부 정치전문가들은 안철수 캠프의 ‘소프트웨어’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 시각을 보이고 있다. “아무리 성능 좋은 명품 기계도 운용하는 사람의 숙련된 노하우가 없으면 무용지물에 불과할 뿐”이라는 지적이 그것. 훌륭한 인적 자원들이 안철수 캠프라는 새로운 정치 환경에서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안 후보가 대선출마 선언을 한 뒤 이제 갓 2주일이 지났다(10월 4일 기준). 그런데 벌써부터 캠프 주변에서는 엇박자 소리가 새 나오고 있다. “자신들은 ‘새로운 정치’ ‘새로운 실험’ ‘혁신’이라는 식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아무리 봐도 소프트웨어적인 내실이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안철수 캠프는 지금이야 컨벤션 효과(전당대회와 같은 정치 이벤트 직후 지지율이 상승하는 현상)에 따른 높은 지지율로 버티고 있지만, 갑작스런 위기가 닥쳤을 때 그것을 돌파할 능력이 있는지 의문스럽다는 아픈 지적과 마주하고 있다.
그 상징적 예를 박선숙 선거총괄본부장을 통해서 찾아볼 수 있다. 박 본부장은 정치권에서 논리적이고 판단이 정확한 것으로 꽤 유명한 편이다. 그에 반해 돌파력, 즉 파이팅은 좀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싸움을 잘 못한다는 얘기다. 어쨌든 지난 4·11 총선 당시 민주당 선대본부장을 맡았을 때 박 본부장이 하는 말은 기자들 사이에서 ‘명문’으로 소문이 났었다. 그가 브리핑하는 말은 문장으로만 만들면 그냥 기사가 될 정도의 정제된 수준이었다. 그 정도로 선거판을 읽어내는 전략이 명쾌했고 논리적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철수 캠프에 합류한 뒤부터 이 ‘고수’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할 때 많이 ‘버벅댄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안철수 캠프 사정을 잘 알고 있는 한 중견 정치부 기자는 이에 대해 “박 본부장이 자기 생각을 제대로 표현을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하는 속사정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기자들 중에도 그런 얘기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더라”고 말했다.
그렇게 ‘똑똑하던’ 박 본부장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앞서의 중견 기자는 이에 대해 “박 본부장이 안철수 후보의 생각을 잘 읽지 못하는 것 같다. 자신감이 떨어지다 보니 함부로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박 본부장이 선대본부 총괄역을 맡고 있기는 하지만, 그만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관련이 있다. 유민영 대변인과 금태섭 상황실장 등이 또 다른 파워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박 본부장이 위축이 되고, 예의 자신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민주통합당에서는 박선숙이라는 정치판 고수가 안철수 캠프에 합류하자 상당히 우려를 표명했었다. 박 본부장의 능력을 그만큼 인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철수 캠프에 합류하면서 그의 능력이 백퍼센트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앞서 지적한 대로 정치경험이 전무한 안철수 캠프가 인적 자원의 소프트웨어 운용에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기존멤버와 합류멤버 사이의 불협화음과 권력 갈등도 서서히 나타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캠프가 구성된 지 얼마 안 되긴 했지만 ‘안철수 사람’과 ‘민주당 사람’ 간의 화합이 제대로 안 되는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안철수 사람’이라면 유민영 정연순 금태섭 조광희 윤태곤 한형민 이혜진 이윤정 등 안철수 후보가 직접 끌어들인 ‘자기 식구’들이다. 여기에 ‘민주당 사람’이라면 박선숙 박인복 김형민 허영 김경록 등 민주당에서 넘어간 사람들을 말한다. 대체로 박선숙 본부장을 통해 합류한 인사들이다. ‘안철수 사람’들이 아마추어라면 ‘민주당 사람’들은 선수, 프로들이다. 이들 간에 안철수 후보의 일정 조율부터 보도지원, 캠프 운영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지점에서 갈등을 빚고 있다는 전언이다. 앞서의 중견 기자는 “아직까지 외부로 알려질 정도의 사건은 없었지만 서로 간에 불만이 꽤 많이 쌓여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안철수 캠프의 위기대응 능력도 ‘초보자’라고 치부하고 넘기기에는 심각한 수준이라는 분석도 있다. 추석 연휴 전부터 안철수 후보에 대한 검증 공세가 한층 격화됐었다. 하지만 안철수 캠프에서 한 거라곤 ‘안 스피커’를 통해 대변인 성명 발표하고, 반박 글 올린 게 거의 전부였다. 기자회견을 열고 반박을 하거나, 역공을 펴는 일은 전혀 없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대변인 명의로 낸 성명서를 보면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이게 대변인 성명에 들어갈 표현인지 의아스럽다. 초등학교 수준의 떼쓰는 성명 같았다”라고 말했다.
앞서의 평론가는 또한 “전투가 시작되면 현장 지휘부의 지휘에 따라 전략적으로 싸움에 임하는 게 상식인데, 안 캠프에선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안철수를 대신해 누군가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같은데, 온라인 소통에만 매달리는 것 같아 안타깝더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맞서 싸우는 게 구태 정치에 말려드는 일이라면 다른 식의 대응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그마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민주당의 한 초선의원은 이에 대해 “검증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이슈를 꺼내 다른 싸움을 벌여야 하는데, 정책을 발표하는 것도 아니고, 인재 영입을 통해 뭔가 세 과시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검증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새로운 정치와 아마추어 식 대응은 분명히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중앙 컨트롤 타워 부재도 문제로 지적된다. 안 캠프 사람들은 마치 지금 있는 실무진만으로 선거를 치를 것처럼 얘기한다. 기자들이 “선대위원장이 누가 되느냐”고 물으면 “그런 것 생각 안하고 있다”고 답한다. 선대위원장을 비롯한 ‘윗선’ 없이 실무형 캠프로 가겠다는 얘기다. 조직책도 없다. 이를 두고 안 캠프 측은 ‘새로운 실험’이라고 주장한다. 자발적으로 결성되고 있는 각종 포럼들을 네트워크로 엮어서 가겠다는 전략이다. 기존의 선대위 체제가 중앙의 상층부가 모든 결정을 내려 하부 조직으로 명령을 떨어뜨리는 식이었다면, 기획과 실행을 동시에 하는 포럼들을 통해 선거를 치르겠다는, 일종의 발상의 전환인 셈이다.
민주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이에 대해 “구상은 참신하지만, 문제는 그 많은 포럼을 ‘안철수 캠프’로 분류할 수 있느냐는 데 있다. 안 캠프 스스로 포럼 참가자들을 모두 안철수 캠프 사람으로 분류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김호기 김민전 장하성 최상용 등 많은 교수들이 안철수 후보를 돕고 있지만 이들 중 ‘안철수 캠프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까지인지 헷갈리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대선을 불과 두 달여 앞두고 안철수를 상징하는 대표적 정책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안철수 후보는 ‘10월 7일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들이 뭔지 밝히고, 이후 틈틈이 정책을 발표하며, 11월 10일 정책을 총괄 발표하겠다’고 했다. 11월 10일이 돼야 안철수 후보의 정책이 분명해지는 셈이다. 어떤 이유를 갖다 붙이든 정책 검증을 어렵게 하고, 정책 선거를 어렵게 하는 행태라는 비판을 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때론 안 후보와 ‘술래잡기’
이런 ‘쿨’한 관계가 바람직하긴 하지만 기존 취재관례를 따르지 않아 생기는 잦은 실수 때문에 안 후보를 마크하는 기자들의 불만도 조금씩 쌓여가고 있다는 전언이다. 대부분 취재편의와 관련된 사항이라 그냥 넘길 수도 있지만 그와 같은 잦은 실수가 다른 상황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사로 넘길 일은 아니다.
안철수 캠프를 커버하는 기자들의 의견을 토대로 두 가지 정도만 지적한다면 다음과 같다. 지난 10월 2일 오후 7시 박선숙 본부장이 캠프 내 여러 명의 실장, 팀장들을 이끌고 캠프 구성 후 처음으로 출입기자들과 만찬 간담회를 했다. 사실상 안철수 캠프에서 처음으로 가진 출입기자 간담회라고 해도 무방했다. 이런 경우 통상적으로 모든 출입사 반장들에게 연락을 해서 ‘1명씩은 보내 달라’고 요청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안 캠프 측에서 전혀 연락을 안 했다는 것이다. 캠프 기자실에서 일하고 있던 기자들에게만 “오늘 저녁 때 식사 자리가 있으니 참석해 달라”고 통보했던 것. 당시 간담회가 있는 줄도 몰랐던 언론사들도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당시 모임은 안철수 후보도 잠시 참석했을 만큼 캠프에서는 중요한 ‘행사’였지만 결국 주인공들을 초대하지 못하는 실수를 한 셈이 됐다.
또 하나. 10월 3일부터 5일까지 안철수 후보가 2박 3일 일정으로 호남을 방문했는데, 보도지원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지방 출장이 있을 경우 새누리당, 민주당은 일단 언론사들로부터 신청을 받은 뒤 교통편(비행기 또는 기차)과 숙박업소를 예약해 주는 게 관례로 돼 있다. 물론 돈은 기자들이 개별적으로 내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안 캠프는 그런 절차를 하나도 실행하지 않았다. 그냥 안철수 후보의 동선, 일정만 공개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기자들이 동선에 맞춰 ‘알아서’ 현장에 가고, 안 후보가 어디서 잠을 자는지 파악해서 알아서 숙소 잡고 알아서 따라다니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고 한다. ‘우리는 왔으니 너희들은 알아서 하라’는 취재방식에 익숙해지지 않은 기자들의 불만이긴 하지만 상호간의 효율적인 ‘협업체제’를 유지한다면 시간이나 돈 낭비를 줄일 수 있는 ‘혁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아직 여러모로 완벽하지 않은 안철수 캠프다. 기자들이 그들의 작은 실수를 성마르게 지적하는 건 아니다. 대선을 불과 두 달여 앞두고 서둘러 출마선언을 했던 안철수 후보의 대선 전략이 원죄라면 원죄일 것이다.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