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내남결’ 누적 73개국 일간 1위 기록…인기 비결은 ‘높은 수위’ 아니라 ‘한국적 서사’
최근 K막장의 인기는 tvN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내남결)가 진두지휘했다. 죽음과 동시에 10년 전으로 돌아가 깨어난 여주인공의 2회차 인생을 다룬 이 작품에서는 친구와 남편의 부적절한 만남, 살인 사주를 비롯해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했다. 원작 웹툰을 바탕으로 비교적 탄탄하게 전개되던 초반과 달리 후반부로 갈수록 막장의 수위가 상승한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보다 눈에 띄는 것은 글로벌 성과였다. CJ ENM에 따르면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2월 25일 기준 아마존프라임비디오에서 K드라마 최초로 4차례에 걸쳐 글로벌 TV쇼 부문 일간 순위 1위를 기록했다. 장기흥행의 척도인 월간 순위에서도 1월에 글로벌 2위를 기록했고, 방송 기간 중에는 누적 73개국에서 일간 순위 1위를 기록했다. 아시아뿐만 아니라 미국(최고 2위), 캐나다(최고 1위), 프랑스(최고 2위), 영국(최고 3위) 등 미주·유럽 국가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K막장에 대한 외국 시청자들의 관심은 지난 1월 방송된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도 확인됐다. 이날 출연진인 그룹 샤이니 멤버 키는 절친한 사이인 프랑스 출신 안무가 카니의 집을 방문한다. 평소 한국의 막장 드라마를 즐겨본다는 카니는 불륜을 전면에 다뤄 대표적 막장극으로 꼽히는 ‘내 남자의 여자’(2007)를 보며 “잤니? 잤어? 잤냐고”라는 대사를 연발했다. K막장극에서 불륜 관계가 폭로되는 과정에서 자주 쓰이는 이 대사를 수차례 되뇌던 카니는 “I love this”(나 이런 거 너무 좋아)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K막장은 넷플릭스 등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자연스럽게 소비되고 있다. 과거 이런 작품이 해외에 수출된 사례는 드물었다. 막장 코드가 강하면 톱A급 스타들이 출연을 꺼린다. 중년배우 등이 대거 출연하는 막장극은 주로 주말드라마나 일일드라마로 편성되곤 했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넷플릭스 안에서는 미니시리즈, 주중극, 주말극, 일일극이라는 구분이 없다. 그 안에서는 모두가 콘텐츠로 승부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KBS 2TV 주말극 ‘신사와 아가씨’가 역주행 인기를 누렸고, ‘막장극의 대모’라 불리는 임성한 작가의 ‘결혼작사 이혼작곡’은 넷플릭스 국내 콘텐츠 흥행 1위에 올랐다. 이외에도 또 다른 막장극 전문인 김순옥 작가의 ‘펜트하우스’나 최근작 ‘7인의 탈출’ 등도 해외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여기서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한국의 막장극이 과연 해외의 막장극보다 수위가 높을까. 그렇지 않다. 해외 콘텐츠는 훨씬 수위 높은 설정과 비뚤어진 인간관계를 다수 배치한다. 넷플릭스 흥행 1위를 기록한 영화 ‘365일’은 주인공 여성이 자신을 납치한 마피아 보스와 사랑에 빠진다는 파격적인 줄거리를 내세웠다. 또 다른 시리즈인 ‘섹스 라이프’는 거대한 남근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그 장면이 담긴 ‘3화 19분 50초 보기 챌린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이처럼 해외 콘텐츠는 국내 콘텐츠가 도무지 시도할 수 없는 설정과 노출로 자극을 극대화한다.
그럼에도 한국의 몇몇 드라마가 ‘K막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결국 한국 사회에 대한 관심과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신선함이 바탕이라 할 수 있다. 막장극의 단골 소재 중 하나는 고부 갈등이다. 아들을 끔찍이 아끼는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못살게 군다는 설정은 진부함의 끝이다.
하지만 ‘고부 갈등’이라는 가족 관계 자체가 낯선 해외 팬들이 볼 때는 이로 인해 한 가족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이 흥미롭다는 것이다. ‘내남결’의 경우도 단순히 불륜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2회차 인생’을 강조한다. 여주인공이 복수에 성공하며 자신의 삶을 새롭게 개척해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셈이다.
인도판 롤링스톤은 “한국의 막장 드라마는 인간 본성의 사악한 측면과 복잡한 가족 역학을 탐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면서 “다양한 장르의 결합은 이런 상황을 더욱 독특하게 만드는 특징이다. 예를 들어, 막장 드라마는 로맨스, 코미디 그리고 액션의 요소들을 결합할 수 있고 이것은 예측할 수 없고 흥미진진한 시청 경험을 낳는다”고 평가했다.
즉, 서사를 중시하는 한국 드라마의 특성상 막장극 역시 더욱 긴장감 있는 전개를 꾸려간다는 의미다. 이처럼 국내에서 폄하되던 막장 드라마는 해외 시장에서 ‘K막장’으로 새롭게 생명력을 부여 받았다. K콘텐츠가 또 다른 지류를 형성한 셈이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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