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완성도·브랜드 효과·입소문 충족해야…오컬트 장르 한계 극복하고 고지 밟을지 주목
2023년 11월 22일 개봉한 ‘서울의 봄’이 1312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한국 영화 흥행 순위 6위에 오른 가운데 ‘파묘’까지 순항하면서 위기의 한국 영화계가 한숨 돌리는 분위기다. 과연 ‘파묘’의 흥행세는 어디까지 이어질까.
제작 단계부터 ‘파묘’가 좋은 영화일 것이라는 기대감은 분명했다.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를 통해 분명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한 장재현 감독에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 등 연기파 배우들이 가세했기 때문이다. 제작비도 140억여 원이나 투입됐다.
문제는 흥행에선 한계가 분명한 오컬트 장르라는 점이었다. ‘검은 사제들’(누적 관객수 544만여 명)과 ‘사바하’(누적 관객수 240만여 명)로 장르적 한계를 극복해낸 장재현 감독의 차기작이긴 하지만 ‘파묘’는 제목부터 장르적 특성이 너무 강하다. 게다가 극장가 비수기인 2월 22일 개봉도 모험이었다. 제대로 터지면 별다른 경쟁작 없이 롱런이 가능하지만 터져볼 기회조치 얻지 못할 수도 있는 게 바로 비수기다.
영화계에선 흥행 추이를 놓고 볼 때 1000만 관객 돌파는 물론이고 역대 한국 영화 흥행 순위 톱10 진입도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영화계에서 1000만 관객 돌파를 위한 기본 요소로 손꼽는 몇 가지 조건들이 있다. 우선 영화 자체의 높은 완성도, 두 번째는 브랜드 효과, 세 번째는 입소문이다. 1000만 관객 돌파는 기본, 역대 한국 영화 흥행 순위 톱10까지 진입하려면 기본적으로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
우선 영화 자체의 높은 완성도는 논외로 한다. 기본적으로 한국 영화 흥행 순위 톱10에 진입했다는 사실만으로 완성도는 이미 관객들을 통해 검증이 끝났기 때문이다.
개봉 초기 흥행은 ‘브랜드 효과’가 책임진다. 흥행을 담보하는 브랜드 효과는 기존 흥행작 속편이거나 인기 웹툰 등 검증된 원작이 있는 영화들이다. 예외적이긴 하지만 개봉을 앞두고 폭발적인 화제성이 동반돼 브랜드 효과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지난 10년 사이 가장 막강한 오프닝 성적을 기록한 영화는 개봉 첫날 143만 7959명의 관객을 동원한 ‘부산행’이다. 어찌 보면 브랜드 효과가 제로(0)에 가까운 작품이다.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유명했던 연상호 감독이지만 데뷔작은 실사 영화였고, 게다가 한국 최초의 좀비 블록버스터였다. 그런데 이런 생소함이 제작 초기부터 엄청난 화제를 양산하며 기대감을 높여 개봉 첫날부터 제대로 터졌다. 결국 1156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지금까지 한국 영화 흥행 순위 역대 14위로 자리하고 있다.
개봉 첫날 126만 8352명의 관객을 동원한 ‘신과 함께-인과 연’(누적 관객수 1227만여 명)과 122만 4178명을 동원한 ‘범죄도시3’(누적 관객수 1068만여 명)는 이미 1000만 관객 신화를 쓴 영화의 후속작이라는 점에서 막강한 브랜드 효과를 누렸다.
그런데 정작 역대 한국 영화 흥행 순위 톱10에 든 영화 가운데 브랜드 효과를 봤다고 여겨지는 작품은 ‘범죄도시2’와 ‘신과함께-죄와 벌’ 정도다. ‘범죄도시2’는 전편의 흥행이, ‘신과함께-죄와 벌’은 원작 웹툰의 인기가 브랜드 효과를 부여했다. ‘범죄도시2’는 개봉 첫날 65만 417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신과함께-죄와 벌’은 개봉 첫날 42만 2564명을 동원했다.
나머지 8편은 모두 개봉 초기보다 어느 정도 입소문이 나면서 흥행 돌풍이 불기 시작했다. 역대 흥행 순위 1위인 ‘명량’을 비롯해 2위 ‘극한직업’, 4위 ‘국제시장’, 5위 ‘베테랑’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개봉해 역대 흥행 순위 6위에 오른 ‘서울의 봄’의 개봉 첫날 관객수는 21만 9445명이었다. 개봉 일주일째 누적 관객수는 236만 4698명, 10일째에는 327만 6885명이었다. 개봉 10일까지 성적만 놓고 보면 1000만 관객 달성이 쉽지 않아 보였지만 서서히 입소문이 나면서 결국 1300만 고지를 돌파했다.
개봉 첫날 하루에만 12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신과 함께-인과 연’과 ‘범죄도시3’는 모두 1000만 관객 신화는 썼지만 전편의 흥행 기록에는 다가가지 못했다. 특히 ‘범죄도시3’는 무지막지한 흥행 초반 돌풍에도 불구하고 누적 관객수 1068만여 명으로 겨우 1000만 고지에 올랐다. 1·2편보다는 재미없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흥행세가 급격히 꺾였기 때문이다.
‘범죄도시3’는 개봉 일주일 만에 605만 3085명의 관객을 기록했지만 10일째에는 672만 7160명에 그쳤다. 개봉 첫 주 일평균 관객수가 86만여 명이었지만 이후 3일 동안은 일평균 관객수가 22만 명으로 급감했다. 주말 효과로 이후 4일 동안 130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개봉 14일 만에 800만 고지에 올랐지만 900만을 돌파하는 데에는 8일, 1000만 돌파까지는 12일이 걸렸다. 이런 흐름은 브랜드 효과 하락을 가져와 2024년 개봉 예정인 ‘범죄도시4’의 초반 흥행 성적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오락 영화로서의 가치가 탁월해 이번에도 흥행이 예상되긴 하지만, 다시 1000만 관객을 돌파하려면 입소문 효과가 절실하다.
반면 ‘서울의 봄’은 100만 관객 돌파까지 4일이 소요되는 등 개봉 12일이 지나서야 400만 고지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후 개봉 33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하고, 65일 만에 1300만 고지를 밟는 무서운 흥행세를 기록했다.
‘파묘’의 개봉 첫날 관객수는 33만 6129명이었다. 브랜드 효과가 강한 영화는 아니었다. 그런데 개봉 초기에 입소문이 강력하게 나면서 개봉 일주일 누적 관객수 331만 2956명, 개봉 10일째 538만 1139명을 기록했다. 게다가 비수기 속 유일한 성수기인 삼일절 연휴 3일 동안 233만 5940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600만 고지를 돌파했다. 이는 개봉 11일 만의 성적으로, 개봉 18일 만에 600만 고지를 넘은 ‘서울의 봄’보다 빠른 속도다.
과연 ‘파묘’의 흥행 성적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서울의 봄’이 점령한 1300만 고지에도 다다를 수 있을까. 현재 흥행 흐름만 보면 가능해 보이기도 하지만 3월부터 극장가가 본격적인 비수기에 접어든 데다 장르적 한계도 분명 존재한다.
완성도와 브랜드 효과, 입소문까지 모두 갖춘 ‘기생충’은 개봉 첫날 57만 7954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화려하게 시작해 10일 만에 600만 고지를 돌파했지만 최종 성적은 1031만여 명이었다. 비수기인 5월 30일에 개봉한 데다 스릴러와 블랙 코미디, 피카레스크 등이 섞인 장르적 한계가 일정 부분 흥행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은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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