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전문강사 준비 부족 탓 교사 업무 가중…“2학기 전면 시행 시 되레 공교육 훼손 우려” 지적
지난 6일 윤석열 대통령은 제2차 ‘늘봄학교 범부처 지원본부’ 회의 자리에서 늘봄학교를 ‘후퇴할 수 없는 과제’로 표현하며 ‘무조건 성공’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1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도 “아이를 제대로 돌보고 키우는 것은 대통령과 정부의 헌법상 책무”라며 늘봄학교 정책에 대한 정부의 제법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윤 대통령이 연일 힘을 싣고 있는 ‘늘봄학교’는 초등학생에게 방과후 프로그램과 돌봄 프로그램을 함께 제공하는 것으로 3월 새 학기 시작과 함께 전국 2741개 학교에서 시범 운영 중이다.
과거 돌봄교실은 각 학교가 세운 기준에 따라 맞벌이 가정에 추첨식으로 제공됐지만 늘봄학교는 자녀가 초등학교 1학년이라면 무상으로 정규수업 후 2시간 동안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정부는 앞으로 전국 모든 학교에서 전 학년이 저녁 8시까지 머무르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배울 수 있도록 시행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의 ‘호언장담’과 달리 일선 교육현장에선 각종 우려가 일찌감치 터져 나온다. 무엇보다 운영 공간이나 전담 강사진 준비에 부실함이 노출됐다. 이미 학부모들 사이에선 늘봄학교의 운영 수준이 과거 돌봄교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냉소적 반응이 짙어지고 있다.
뚜껑을 열어보니 과거 돌봄학교 대비 프로그램 이용 학생은 급증했다. 올해 늘봄학교(돌봄학교 포함) 이용자 수는 지난해 돌봄학교 이용자 수의 2배를 기록했다. 12일 교육부와 17개 시도 교육청에 따르면 3월부터 전국에서 늘봄학교(돌봄교실 포함) 시범운영을 이용 중인 초등 1학년생은 모두 12만 8000명. 지난해 돌봄교실을 이용한 초등 1학년생은 6만 6000명이다.
프로그램의 질적 수준은 기대에 한참 못 미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프로그램 운영 공간과 전담 강사 준비가 미흡하다 보니 결국 일반 교사들에게 부담이 전가되며 일상 업무에 큰 지장을 주는 문제까지 생겼다. 최연선 초등교사노동조합 정책실장은 “정부에서 늘봄학교 관련 기간제 업무담당자를 채용하겠다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고 방과 후 교실 담당 교사나 돌봄 실무사에게 해당 업무를 추가로 시키거나 강사가 잘 구해지지 않는 학교는 담임선생님들에게 강사 수당을 미끼로 유인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운영 공간 부족 문제로 방과후 (늘봄학교를 위해) 교사들이 교실을 내주면서 다음 날 수업 준비나 학습 활동 정리 등 각종 업무에 지장을 주는 일도 많다”고 덧붙였다.
현재 늘봄학교 강사진 확보 현황에 대한 정부와 학교 현장의 설명은 서로 엇갈린다. 정부는 초등 1학년 대상 프로그램 강사로 약 1만 1500명을 확보했으며 이 중 외부 강사가 83.2%, 희망하는 내부 교원이 16.8%라고 밝혔다. 현장의 설명은 다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지난 12일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교내 기간제 교사와 정교사 상당수가 늘봄학교에 투입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는 늘봄학교를 운영 중인 전국 학교 가운데 22%(611개교)가 참여한 결과로, 응답자의 53.7%(377개교)에서 이 같은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늘봄학교 시행을 위해 관련 행정 업무 부담이 급증한 것도 일선 학교에서 적지 않은 불편으로 지적된다. 이번 조사 결과 교감이나 정교사, 기간제 교사 등 교원에게 늘봄학교 행정업무가 부과된 학교는 89.2%(545곳)에 달했다. 전교조는 “정부는 아무 문제 없이 늘봄학교를 추진할 수 있을 것처럼 각종 홍보와 광고에 몰두했지만 결국 관련 실무를 떠안아야 했던 학교 현장은 각종 문제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현재 늘봄학교를 시행 중인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 A 씨는 “우리 학교는 (늘봄학교) 강사 섭외를 아직도 하고 있다. 심지어 기존 방과후 교실을 담당했던 영어 원어민 선생님이 이제 입학해 한글도 잘 모르는 1학년 아이들을 상대로 늘봄학교 강사 역할을 하고 있다”며 “늘봄학교 관련 일손이 부족해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학부모 사이에선 늘봄학교 이용을 신청했다가 취소하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서울 마포구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만난 학부모 B 씨는 “엄마들 사이에서 늘봄학교 반응이 좋지 않다”며 “갑자기 시행되다보니 프로그램이 부실해서 방과후 학교를 신청하거나 학원으로 돌리고 늘봄학교는 취소한다는 학부모를 봤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단 늘봄학교 시행을 밀어붙이는 데 주력할 모양새다. 윤 대통령이 최근 3주간 매주 한 번씩 늘봄학교 관련 일정을 수행 중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월 27일 전국 시도지사와 시‧도 교육감을 불러 지역별 늘봄학교 준비 상황을 직접 체크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 6일에는 늘봄학교 범부처 지원본부 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지난 14일에는 전남 무안군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해 늘봄학교 프로그램을 직접 참관했다.
현장에서는 2학기 전면 시행에 대한 우려가 이어질 전망이다. 무대책 시행에 공교육 질이 오히려 훼손될 수 있다는 날선 비판까지 나온다. 정혜영 서울교사노동조합 대변인은 “국고 보조금도 없는 상태에서 한정된 시도 교육청 예산으로 시행되는 것이다 보니 공간‧강사 수급 등에 어려움이 크다”며 “이대로 시행 학교만 (양적으로) 늘린다면 더욱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최연선 초등교사노동조합 정책실장은 “인력과 예산의 안정성이 확보된 것 없이 현장 교사의 손과 교내 공간을 빌려 추진된 정책은 오히려 공교육 현장을 훼손시킬 것”이라며 “전면 시행을 제고하고, 충분히 준비가 된 뒤 국가적 차원의 돌봄 프로그램이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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