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고유 권한 ‘무단 불출석 불허’ 엄중 경고…강제 구인 땐 정치적 개입 해석 여지 ‘부담’
다만 법원 내부에서도 재판부가 경고한 것처럼 실제 구인장을 발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총선에 영향을 주는 결정이 될 수 있어, 재판부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재명 대표가 불만을 표시하면서도 재판에는 출석하고 있기 때문에 한차례 정도의 불참을 놓고는 구인장을 발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형사합의33부의 엄포
현재 이재명 대표가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형사 사건은 모두 3건이다. △대장동·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 및 성남 FC 관련 사건 △위증교사 혐의 사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이다.
이 대표 측은 총선 일정을 이유로 각 재판부에 기일을 미루거나 불출석을 허가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제1야당 대표로 선거에 임해야 하는 상황에서, 선거가 가진 중요성을 고려할 때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당초 위증교사 혐의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는 다음 기일을 총선 이틀 전인 4월 8일로 잡으려 했지만 이 대표의 요청을 받아들여 4월 22일로 미뤘고,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 재판부도 총선 후인 4월 12일을 기일로 정했다.
하지만 가장 복잡한 대장동·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 및 성남 FC 관련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김동현 부장판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재명 대표도 선거일정 등을 이유로 3월 12일 재판에 지각한 데 이어, 19일에도 허가를 받지 않고 출석하지 않았다. 그 사이 열린 18일 위증교사 혐의 재판에는 출석했지만 또 22일에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한성진 부장판사)가 심리하는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다만 이 재판은 공직선거법 규정에 따라 불출석 상태로 재판이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특히 19일 불출석의 경우, 사전에 재판 연기 및 불출석을 요청했지만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음에도 재판 일정 대신 총선 유세를 선택했다. 이에 재판부는 “정치적 일정을 고려해 재판을 진행할 수는 없다. 강제 소환을 고려하고 불출석을 반복하면 구인장 발부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엄포를 놨다.
#이재명 측, 재판부에 불만
다시 재판 일정이 잡힌 3월 26일.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반드시 재판에 출석하라고 경고하자, 이 대표는 법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대표 변호인은 26일 재판에서 “총선 이후로 기일을 잡아 달라. 피고인 본인의 후보자 지위뿐 아니라 제1야당 당대표 지위와 활동이 있는데 선거 직전까지 기일을 잡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고 모양새도 좋지 않다”며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여당 나경원 전 의원은 재판이 사실상 공전 중인 상태에서 (기일을) 선거기간을 빼고 지정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비교했다.
이 대표 측 변호인은 또 “총선 후보자‧당 대표로서 활동해야 할 피고인을 강제로 구인하는 것은 좋은 모양새가 아니”라며 “선거의 중요성을 생각해 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함께 기소된 정진상 전 당대표 정무조정실장의 변호인도 “선거운동 기간에 후보자를 불러 재판하는 것은 처음 본다”며 거들었다. 이재명 대표에게 재판부의 판단이 가혹하다는 것을 지적한 셈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정치 일정을 고려해 재판 기일을 조정하면 분명히 특혜란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며 “맞출지 안 맞출지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불출석할 경우 전에 말씀드린 대로 구인장까지 발부는 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강제 소환까지 가는 것은 파장이 적지 않을 거 같지만, 계속 (불출석이) 반복되면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변호인들이 항의하자 재판장인 김동현 부장판사는 “변호인들과 토론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재판은 “이재명 대표가 있어야 진술하겠다”던 증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코로나19 확진으로 열이 오른다며 몸 상태 악화를 호소해, 오전 재판만 치른 채 조기 종료됐다. 재판부는 향후 일정으로 3월 29일, 4월 2일, 9일로 기일을 예정했다.
제대로 된 증인 신문을 하지 못하고 끝난 재판에 이 대표는 이날 “저는 (반드시 출석해야 한다는) 검찰의 입장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사실 제 반대신문은 끝났고, 정진상 측 반대신문만 있어서 제가 없더라도 재판 진행은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재판부의 판단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 대표의 재판 불출석은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3년 10월 국정감사를 이유로 선거법 재판에 두 차례 불출석한 바 있는데,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34부(재판장 한성진)는 이 대표가 불출석한 상황에서 전 성남부시장, 국토교통부 직원 등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한 바 있다.
법원 내에서 ‘재판부의 고유 권한’이라는 반응과 ‘정치적인 사건에 피고인이 불출석하는 문제가 고착화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동시에 나왔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일정을 고려해 충분히 총선 후에 재판을 진행해도 되지만 문제는 이런 케이스를 누군가 따라하고 악용한다는 것 아니겠냐”며 “총선이나 국회 본회의 등 주요 일정을 핑계로 계속 재판을 미룰 우려가 있기 때문에 재판장이 법원 전체의 입장을 고려해 구인장 발부를 경고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다만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남은 재판에서 참석, 불참석, 참석처럼 꾸준하게 불참하는 게 아니라면 재판부가 쉽게 구인장을 발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옥중 출마 송영길에 미칠 영향
법조계에서는 제22대 총선 광주 서구갑에 옥중 출마한 송영길 소나무당 대표의 보석 신청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송 대표의 아들 송주환 씨는 3월 26일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유세 한 번 하게 해달라며 보석을 신청한 송영길 대표의 간곡한 요청을 법원이 받아들여줘야 한다”며 “광주시민 연대의 힘을 빌려 다시 한 번 애절한 호소를 한다”고 밝혔다. 송 대표 측도 재판에서 꾸준히 “정치인 송영길에게 어쩌면 마지막 국회의원 선거”라며 “선거유세 한 번 못 한 채 구치소에 무기력하게 있어야 한다면 너무나도 가혹한 형벌”이라고 호소했다.
재판부는 고심 중이다. 송영길 대표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허경무 부장판사) 재판부는 3월 20일 재판에서 이재명 대표의 재판 불참을 언급하며 “최근 다른 재판부에서 선거운동 때문에 재판에 안 나오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선거운동이 급하면 재판에 출석하지 않을 수 있지 않냐”고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 대표의 잇따른 재판 불참이 송영길 대표 보석 여부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분석으로 이어진다.
앞선 판사는 “정치인에게만 특혜를 줄 수는 없지만, 정치적 판단으로 기소됐다고 생각한다면 재판부가 흔들릴 수도 있지 않겠냐”며 “결국 재판 일정이나 보석 여부는 재판부 고유의 권한이기 때문에 재판부가 가장 고심하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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