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인천문학경기장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4차전 SK 와이번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 박은숙 기자 eopark@ilyo.co.kr |
# PO에 임하는 자세
“오늘 이기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다.”
12일 사직구장에서 만난 롯데 양승호 감독은 4차전의 중요성을 수차례 강조했다. 이유는 간명했다.
“오늘 지고 5차전에서 이긴다 치자. 준플레이오프는 통과할지 몰라도 플레이오프에선 SK 들러리가 될 게 자명하다. 선수들 힘이 다 빠진 상태에서 어떻게 시리즈를 치를 수 있겠나.”
사실이었다. 만약 4차전에서 지면 롯데는 서울 잠실구장에서 5차전을 치러야 했다. 투수와 야수 모두 체력소모가 말도 못하게 심한 상황에서 5차전까지 치르면 선수들 전체가 녹다운될 게 뻔했다. 설령 5차전에서 이겨도 하루 쉬고, 16일부터 SK와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했다.
양 감독의 바람대로 롯데는 4차전에서 시리즈를 끝냈다. 투수진 체력소모를 최대한 막을 수 있었다. 부상으로 신음 중인 야수들에게도 3일 휴식은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최상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 롯데는 SK에 강한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양 감독은 준플레이오프가 끝나고서 “SK 공포증은 옛말”이라며 “올 시즌 상위 3팀 가운데 유일하게 SK 상대 전적이 좋다”고 강조했다.
올 시즌 롯데는 삼성을 상대로 6승1무12패로 열세였다. 두산에게도 8승1무10패로 뒤졌다. 하지만, 유독 SK엔 10승9패로 앞섰다.
반면 SK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됐다”며 아쉬워하는 눈치다. SK 모 코치는 “5차전까지 혈투가 진행됐다면 롯데의 체력적 부담이 더 컸을 것”이라며 “롯데가 역전승을 거두자 우리 코칭스태프 모두 ‘아쉽다’는 반응 일색이었다”고 귀띔했다.
물론 호재도 있다. 롯데가 파트너란 것이다. 이 코치는 “허슬 플레이가 돋보이고, 팀워크가 탄탄한 두산은 껄끄러운 상대”라며 “속으로 롯데가 올라오길 바랐다”고 털어놨다.
SK 이만수 감독은 “롯데를 충분히 연구했기에 별 긴장감은 없다”며 “롯데가 그랬듯 우리도 3승 혹은 3승1패라는 최상의 시나리오로 한국시리즈에 오르겠다”고 다짐했다.
▲ 박희수 |
“투수진은 객관적 전력을 비교할 때 확실히 SK가 한 수 위다. 선발진, 불펜진 모두 그렇다. 주관적으로 분석해도 준플레이오프에서 체력소모가 심했던 롯데보단 충분히 휴식을 취한 SK 투수진의 컨디션이 더 좋을 거다.”
MBC 허구연 해설위원은 SK와 롯데 마운드를 비교해달라는 질문에 SK 손을 들었다. 과연 그럴까.
먼저 선발진이다. 롯데는 준플레이오프에서도 선발야구에 실패했다. 송승준과 유먼이 기대만큼 활약했지 사도스키와 고원준은 조기 강판되는 굴욕을 경험했다. 가뜩이나 롯데 선발진은 준플레이오프에서 사도스키가 부상당하며 비상이 걸린 상태다.
불펜진은 사정이 좋은 편이다. 정규 시즌에서도 롯데 불펜은 삼성, SK와 함께 3강으로 꼽혔다. 롯데 불펜진의 최대 장점은 다양성이다. 우완 김사율·최대성, 좌완 이승호·이명우·강영식, 사이드암 김성배·정대현이 버틴 롯데 불펜진은 상대 타자 성향과 경기 흐름에 따라 맞춤형 등판이 가능하다.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롯데 불펜진은 적재적소에 투입돼 만점 활약을 펼쳤다.
롯데는 “선발진 싸움에서도 SK와 겨뤄볼 만하다”는 자세다. 기록만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올 시즌 송승준은 SK전에 5번 등판해 1승2패 평균자책 2.90을 기록했다. 유먼도 5번 등판해 2승1패 1홀드 평균자책 1.27로 호투했다. 사도스키는 2경기에 등판해 1승 1홀드 평균자책 2.45였다. 사도스키 부상이 장기화될 시 대체 선발요원으로 꼽히는 진명호도 SK전에 3번 등판해 평균자책 1.29를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렇다면 SK는 어떨까. 올 시즌 SK 선발진 평균자책은 3.89로 3.60의 롯데보다 좋지 않았다. 규정 133이닝을 채운 선발도 윤희상이 유일했다. 10승 투수도 윤희상뿐이다. 그런 윤희상도 올 시즌 롯데전에 6경기 등판해 1승2패 평균자책 4.25로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SK 선발진을 낮춰보는 야구전문가는 드물다. 송은범, 마리오 산티아고, 채병용, 김광현이 버틴 까닭이다. 마리오를 제외한 세 선발투수는 2007년부터 포스트 시즌 무대를 밟았다. 6년 연속이다. 큰 경기 경험이 누구보다 풍부하다. 여기다 포스트 시즌에서 불펜에서 뛴 적도 있어 활용범위가 넓다.
마리오의 존재감도 인상적이다. 마리오는 부상에서 복귀한 후반기 두 차례의 투구에서 13이닝 동안 단 2실점하는 호투를 펼쳤다. 허 위원이 “선발자원이 롯데보다 SK가 더 풍부하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SK 불펜 역시 최상급이다. 정대현, 이승호가 롯데 유니폼을 입으며 타격이 컸지만, 박희수와 정우람이 그 공백을 메웠다.
불펜의 핵은 역시 좌완 박희수다. 박희수는 올 시즌 65경기에 출전해 프로야구 역대 최다인 34홀드와 8승1패6세이브 평균자책 1.32를 기록했다. 특히나 앞선 투수가 주자를 남겨두고 강판했을 때 다음 투수가 이 주자들을 얼마나 잘 막아냈는가를 증명하는 ‘기출루자 득점허용률’에선 1할7푼5리로 이 부문 1위다. 롯데전에 유독 강한 것도 장점이다.
박희수는 올 시즌 롯데전에 10번 등판해 6승 2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 1.38을 기록했다. SK 이만수 감독이 박희수를 절대 신뢰하는 이유다.
마무리 정우람은 박희수와 철벽 콤비다. 올 시즌 정우람은 2승 4패 30세이브, 평균자책 2.20을 기록했다. 정대현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만한 활약이었다. 정우람도 박희수 못지 않은 ‘롯데 킬러’다. 롯데전에 5번 등판해 4세이브 평균자책 0을 기록했다.
롯데 불펜 장점이 다양성이라면 SK 불펜 장점은 완급조절이다. 박희수의 주무기는 투심패스트볼이고, 정우람은 체인지업이다. 우완 불펜 엄정욱과 이재영은 시속 150㎞가 넘는 강속구가 주무기인데 반해 최영필, 박정배는 날카로운 제구로 상대 타선을 무력화한다.
KBS 이용철 해설위원은 “충분한 휴식을 취한 SK 불펜이 롯데보다 다소 앞설 수 있다”며 “박희수가 언제 등판하느냐, 몇 경기에 등판할 수 있느냐에 따라 양팀 승패가 좌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문규현 |
투수진은 SK가 다소 앞설지 모르나, 타선은 롯데가 한 수 위일 수 있다. 올 시즌 롯데는 팀 타율 2할6푼3리를 기록했다. 팀 홈런은 73개, 팀 도루는 119개였다. 팀 타율 2할5푼8리, 팀 홈런108개, 팀 도루 104개의 SK와 비교해 장타력을 빼면 롯데가 다소 앞선다.
특히나 롯데는 준플레이오프에서 타격감이 살아난 상태다. 정규 시즌 팀 타율보다 3푼2리가 높은 2할9푼5리를 기록했고, 홈런도 2개나 쳤다.
고무적인 건 롯데 하위타선의 활약이다. 올 시즌 롯데 6, 7, 8, 9번 하위타선 타율은 2할4푼4리였다. 하지만, 포스트 시즌에선 문규현이 타율 4할6푼2리, 황재균이 3할5푼7리, 용덕한이 2할3푼1리 홈런 1개를 기록했다.
‘깜짝 스타’ 박준서의 등장도 호재다. 박준서는 준플레이오프 4경기에 출전해 9타수 4안타 1홈런 2타점으로 맹활약했다. 김주찬, 손아섭, 전준우의 타격 페이스도 준플레이오프 3차전 이후 조금씩 올라왔다.
반면 SK 타선은 10월 6일 문학 롯데전 이후 10일가량 쉬었다는 게 악재다. 자체 청백전을 벌이며 타격감을 유지했지만, 청백전은 실전과는 큰 차이가 있다. 포스트 시즌에서 타자가 투수보다 감을 찾는 시간이 더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SK 타자들에겐 1차전이 매우 중요하다. 1차전에서 패할 시 좋지 않은 타격감에 부담까지 더해지면 2차전부터 타격이 더 꼬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SK 이만수 감독도 “휴식과 훈련을 병행하며 충분히 플레이오프를 준비했다”며 “1차전만 이기면 나머지 경기는 수월하게 풀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SK는 중심타선에 희망을 걸고 있다. 타율 3할, 26홈런, 84타점을 기록한 3번 최정과 타율 3할 18홈런 78타점을 올린 4번 이호준, 타율 2할5푼5리 12홈런 59타점의 5번 박정권이 기회 때마다 득점타를 올리길 바라고 있다.
▲ 양승호 감독. |
롯데와 SK의 벤치 싸움도 볼거리다. 지난해 두 팀은 플레이오프에서 만났다. 입장은 반대였다. 플레이오프에 직행한 롯데가 준플레이오프에서 KIA를 꺾고 올라온 SK를 맞았다.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당시 양 감독은 “3차전으로 끝내겠다”고 공언했다. 이 감독은 “4차전에서 끝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승부는 5차전까지 갔다. 결과는 SK의 승리였다.
당시 야구계는 SK의 승리를 이 감독이 양 감독보다 지략에서 한 수 위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도 그럴 게 이 감독은 한 템포 빠른 투수교체와 적절한 대타작전 그리고 롯데 타자들의 성급함을 이용한 다양한 공배합을 구사했다. 반면 양 감독은 투수교체에서 재미를 못 봤고, 벤치 작전보단 선수들 스스로 경기를 풀어나가길 바랐다.
양 감독은 이때 일이 기억에 남았는지 이번 준플레이오프에서 투수교체를 이전보다 두 템포 정도 빨리 했고, 대타 작전도 망설이지 않았다. 여기다 갖가지 작전 사인을 내며 경기를 선수가 아닌 벤치가 주도했다.
과연 양 감독이 플레이오프에서도 세밀한 야구를 펼칠지 주목할 일이다. 이 감독은 “SK 야구는 늘 똑같다”는 말로 지난해 플레이오프에서 선보였던 힘과 세밀함을 조합한 ‘이만수식 야구’를 다시 한 번 펼칠 뜻임을 밝혔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롯데 맏형’ 홍성흔 인터뷰
“더 미치는 팀이 이긴다”
“온몸이 안 아픈 데가 없어요. 슬라이딩하다가 무릎이 다 까져서 걷기조차 힘들 정도입니다. 그래도 PO 진출에 성공해 아파도 기분은 좋네요.”
두산과의 4차전을 승리로 이끈 다음날인 13일, 롯데 홍성흔은 잔부상으로 몸은 힘들지만 그래도 인천으로 갈 수 있게 돼 오랜만에 잠을 푹 잘 수 있었다고 말한다.
“나이 먹고 나선 가급적 ‘오바’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이번 준PO전에는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오고 파이팅을 외치고 선수들도 가장 많이 집합시키는 등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PO 진출을 소망한 것 같아요. 만약 이번에 또 두산한테 지게 되면 우린 가을야구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돼요. ‘롯데는 안 된다’는 좋지 않은 이미지가 계속 가는 거죠. 그래서 더 절실했어요.”
홍성흔은 만약 4차전에서 졌더라면 5차전은 이기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4차전을 마지막 경기처럼 치렀다는 것.
“4차전에서 0-2로 지고 있을 때 선수들을 집합시켰어요. 다른 때 같으면 그럴 필요도 없었겠죠. 그러나 계속 점수가 벌어진다면 그걸 회복하기가 힘들다고 판단했고, 선수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줘야 할 것 같았어요. 아마 두산 벤치에서 봤더라면 ‘쟤 또 오버한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홍성흔은 서울 잠실에서 2-0으로 승리를 거둔 후 부산으로 내려왔는데, 오히려 롯데 선수들보다 두산 선수들이 더 여유 있어 보여 가슴이 아팠다고 한다.
“참 신기하죠? 두산 선수들은 마음을 비워서 그런지 표정들이 밝더라고요. 롯데 선수들은 자꾸 쫓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아마도 2010년의 악몽 때문일 거예요. 사직에서 이기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행여 그때의 악몽이 재현되는 게 아닐까 싶었던 거겠죠. 그런 마음가짐이 경기 내용으로 나타나더라고요. 어휴, 정말 다시 생각해봐도 아찔해요.”
홍성흔은 플레이오프에서 만나는 SK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예상했다.
“쉽지 않은 경기가 될 거예요. SK는 큰 무대 경험이 많잖아요. 그러나 박희수와 정우람 등을 잘 공략한다면 우리한테도 승산이 있다고 봐요. 우리가 타격 쪽에선 SK보다 앞서는 터라 타선이 집중력을 발휘해야 할 것 같아요. 포스트 시즌에선 쉬운 팀이 없어요. 정규리그 성적도 중요하지 않고요. 누가 얼마나 간절하고 미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고 생각합니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