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야권 192석 ‘개헌 빼고 모두 다’ 주도권 확보…첫 국회의장 추미애 유력, 정부와 대립각 가능성
제22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지역구 161석을 석권했다. 수도권과 충청권 등 주요 승부처에서 민주당이 싹쓸이에 가까운 대승을 거뒀다. 비례대표 선거에서 민주당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은 득표율 26.69%를 기록해 14석을 얻었다. 지역구와 비례를 합치면 175석을 얻었다. 제21대 총선에 이어 또 다시 대승을 거뒀다.
국민의힘은 지역구 90석을 얻었다. 국민의힘이 전략적으로 가장 집중했던 ‘한강벨트’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용산, 마포갑, 동작을 등 승부처에서 의석을 확보했지만 양천, 영등포, 중, 성동, 광진, 강동에서 고배를 마셨다. ‘낙동강벨트’에선 절반의 성공을 했다. 그러나 인천, 경기도, 충청권에서 참패했다. 국민의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는 득표율 36.67%을 기록하며 비례대표 18석을 확보했다. 총 108석을 얻으며 개헌 저지선만 지켜냈다.
‘지민비조’ 열풍을 일으켰던 조국혁신당은 비례대표 선거에서 24.15% 득표율을 보이며 12석을 확보했다. 원내 제3당 입지를 단단히 구축했다. 이준석 대표가 이끄는 개혁신당은 총 3석을 확보했다. 이 대표가 경기 화성을에서 4수 끝에 지역구 승리를 일궈냈다. 비례대표 선거에선 3.61% 득표율로 2석을 추가로 확보했다. 진보당과 새로운미래는 지역구에서 각각 1석을 확보하며 원내로 진출했다.
범야권 의석은 192석이다. 제6공화국 출범 이후 가장 확연한 여소야대 정국 출범이다. 원내 진입한 범야권 정당 모두가 윤석열 정부 심판을 외치는 ‘반윤 진영’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집권 3년 차 진입을 목전에 둔 윤석열 정부는 임기 전체를 ‘국회 주도권’ 없는 상태로 보내게 됐다. 국정동력 상실을 비롯해 조기 레임덕이 현실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범야권은 ‘개헌 빼고 모두 다’ 옵션을 획득했다. 개헌을 제외한 나머지 안건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한 셈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패스트트랙(안건신속처리제도) 저지선인 180석 이상을 범야권이 확보하면서 완전한 입법 권력을 얻었다”면서 “여권이 단독으로 국회 입법을 통해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고, 야권은 모든 법안을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했다”고 했다.
정가에선 윤석열 정부가 사실상 ‘식물 정부’로 전락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회 주도권을 잃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꺼낼 수 있는 카드는 ‘거부권’뿐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이제 윤석열 대통령실이 행사할 수 있는 가장 큰 권한이 거부권이라는 점은 상당한 딜레마”라면서 “지금까지 거부권으로 거대야당과 대립했던 대통령실이 총선 이후에도 거부권으로 거대 야권에 맞선다면 국정 지지율은 반등의 기미도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 관계자는 “총선 전에는 정부 출범 시기부터 국회 주도권이 없었으니 그러려니 했지만, 국민의 심판을 받은 총선 이후에도 거부권 퍼레이드가 이어지면 대통령 지지율은 끊임없이 내려가며 국정 동력 상실 악순환 고리에 접어들 것”이라고 점쳤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조기 레임덕을 감수하면서도 ‘차기 주자’ 격인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을 내세웠는데, 그마저도 실패로 돌아갔다”면서 “레임덕과 데드덕 그 어딘가에서 임기 중반기를 보낼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국회 상임위 주도권도 범야권이 절대적 우위를 점하게 됐다. 상임위원장 점유율에도 상당한 격차가 생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예산안 통과 국면이나 국정감사 시즌에서도 정부를 향한 강력한 견제구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향후 내각 인적쇄신 과정에서 예정된 ‘청문회 국면’에서도 대통령실은 범야권의 기관총 진지를 통과해야 하는 처지다.
22대 첫 국회의장도 민주당 몫이다. 가장 강력한 후보로 꼽히는 건 경기 하남갑에서 승전보를 울린 추미애 당선인이다. 추 당선인은 2020년 검찰-법무부 갈등 사태 때 윤석열 검찰총장과 첨예한 대립각을 세운 바 있다. 당시 정치권에선 “추미애 장관이 윤석열을 대선 후보 반열에 올라놨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총선이 끝난 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제는 반대로 윤석열이 추미애를 국회로 복귀시켰다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추 당선인은 지역구에서 ‘윤석열 수행실장’ 이용 국민의힘 의원을 간발의 차이로 꺾고 국회에 입성했다. 추 당선인과 이 의원 득표율 차이는 1.17%포인트(p)였다. 윤 대통령 호위무사를 격파한 추 당선인은 6선 고지에 오르며 단숨에 ‘의전서열 2위’ 국회의장 자리를 노릴 수 있게 됐다.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추 당선인은 4월 11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의회가 윤석열 정부를 견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기에 혁신적 과제에 대한 흔들림 없는 역할을 기대한다면 (국회의장 도전을) 주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추 당선인은 “혁신의장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회의장이 될 경우 ‘중립성 시험대’에 오를 가능성과 관련해 추 당선인은 “국회의장은 좌파도, 우파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중립도 아니다”라고 했다. 추 당선인은 “국회의장이 여당 손을 들어주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대의기구로서 혁신과제를 어떻게 받드느냐의 문제”라면서 “지난 국회에서 절충점을 찾으라는 이유로 각종 개혁 입법이 좌초되거나 의장 손에 의해 알맹이가 빠져버리는 경우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전사형 국회의장’이 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추 당선인이 의장이 될 경우 정국은 ‘어게인 2020’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란 관측이다. 법무부와 검찰을 무대로 펼쳐졌던 윤석열-추미애 갈등이 이젠 행정부와 입법부로 무대를 바꿔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내용이다.
국회 주도권을 범야권이 압도적으로 차지한 가운데, 여권은 내부 교통정리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는 “이번 총선에서 개헌 저지선을 확보했지만, 당정관계 정립 등 이슈로 인해 당 내홍 국면이 펼쳐질 경우 개헌저지선이 무의미해질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실에 대한 (총선) 책임론이 불거질 경우엔 다양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면서 “개헌은 공동으로 저지하더라도 범야권이 대통령 거부권을 무력화하는 국면에선 여권 내부에서도 어느 정도 이탈표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고 바라봤다. 그는 “만약 이탈표가 발생해 대통령 거부권이 무력화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때는 대통령실이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끌려 다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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