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송유진 기자 eujin0117@ilyo.co.kr |
지난해 12월 1일 우려와 기대가 공존하는 가운데 채널A, TV조선, JTBC, MBN 등 종편 4사의 첫 방송이 시작됐다. 당시 우여곡절 끝에 개국에는 성공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있는 상태나 다름없었다. 사업자 선정과정에서의 공정성 논란부터 부실 콘텐츠 논란까지 어느 것 하나 문제되지 않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종편의 뿌리가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매일경제인 탓에 친정부 보수 성향의 방송사라는 꼬리표를 떼어 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종편은 문제될 것이 없다며 언제나 당당한 모습을 보였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덧 출범 1년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자신만만해하던 종편 4사가 받아든 성적표는 초라하다 못해 부끄러울 지경이다. 지난 8일 도종환 민주통합당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종편 4사의 평균 시청률은 고작 0.518%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시청률 0%의 굴욕을 겪은 프로그램도 수두룩했다.
그러나 이 같은 시청률 빈곤 현상 속에서도 유독 시사프로그램만큼은 나름 선전하는 특징을 보였다. 개국 초반에 맥을 못 추던 뉴스도 평균 1% 중반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자리를 잡았고 시사프로그램도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덕분에 자체 시청률 집계이긴 하나 일부 시사프로그램은 소위 ‘대박’으로 인정하는 2%대를 훌쩍 뛰어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 대선까지 맞물리면서 종편의 시사프로그램 인기는 더욱 상승했다. ‘특집’ ‘집중보도’ 타이틀을 달고 새로운 프로그램이 속속 등장했으며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땐 기존의 프로그램을 확대편성하기도 했다. 현재 종편에서 방영하는 시사프로그램만도 10여 개에 이를 정도다. 채널A의 간판 프로그램인 <박종진의 쾌도난마>와 <대담한 인터뷰>를 비롯해 TV조선의 <최박의 시사토크 판> <장성민의 시사탱크> <신율의 대선열차>, MBN의 <정운갑의 집중분석> <시사기획 맥> <시사콘서트 정치 IN> 등이 그것이다.
물론 프로그램 편성은 방송사의 권한이기에 이 자체로는 문제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방송 횟수가 거듭될수록 신중을 기해야 할 시사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편향성을 띠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 시작했다. 보수성향의 패널이 주를 이뤘고 객관적 근거 없이 특정 후보를 폄하하는 발언을 여과 없이 내보내 시청자들의 원성을 산 것이다.
일각에서는 종편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한계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공중파 시사프로그램의 경우 주로 하나의 현안을 두고 상반된 시각을 가진 패널이 똑같은 비율로 출연해 토론을 이어나가는 형식인데 반해 종편은 1인 대담 형식이 주를 이루고 있어 이 같은 문제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 게다가 대선을 앞두고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MBC <100분 토론>의 경우 시민논객의 출연을 중단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종편은 오히려 특정후보 지지자를 등장시켜 방송의 기본 자질도 갖추지 못했다는 비난을 들어야했다.
실제 지난 9월부터 10월 둘째 주까지 방영된 각 종편의 대표 시사프로그램 출연진을 비교 분석해 보니 보수 인사의 출연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토론 형식으로 진행된 방송분 및 중도 인사로 평가받는 패널을 제외한 나머지 출연자를 분석해본 결과 보수 인사 비율이 60% 이상에 달했다. 일부 프로그램은 일주일 내내 야권 인사가 단 한 차례도 출연하지 않은 사례도 있었다.
더욱이 대표 보수논객인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전원책 자유경제원장과 스스로 ‘안철수 저격수’로 자청하는 정규재 한국경제 논설실장 등은 종편에 중복 출연해 이러한 논란을 부추겼다. 그나마 10월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야권 인사나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 관련 인물들의 출연 비율이 높아지면서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춰가는 움직임을 보였다.
▲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에 출연한 이정현 공보단장. |
▲ TV조선 <최박의 시사토크 판>에 출연한 안병직 명예 교수. |
보도 채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뉴스Y의 <고성국의 담담타타>는 진행자부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치평론가인 고성국 박사는 박근혜 대선후보의 지지자로 알려진 만큼 방송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것 자체부터 공정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송 행태에 시청자들의 불만도 상당하다. 시민언론단체에서도 종편의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고 이에 대한 시정을 요청하고 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관계자는 “정치인들의 종편 및 보도채널 출연이 잦아지면서 편향성 논란도 더욱 거세지고 있다. 종편은 출발부터 문제가 많아 출연을 거부하는 인사들이 많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방송이라면 중도인사나 당파성을 벗어난 인물을 섭외해야 하는데 종편은 이를 위한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지속적으로 종편을 모니터링하며 다각도로 해결책을 찾아보려한다”고 말했다.
종편의 시사프로그램 관계자들도 패널의 여권 쏠림 현상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았으며 이를 둘러싼 정치적 편향성 논란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있었다. 다만 의도적으로 프로그램에 정치적 색깔을 담으려 한 것은 아니며 종편 출연을 기피하는 사회적 분위기 탓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채널A 박종진 앵커는 “방송에 출연하는 패널의 성향을 진보와 보수로 나눠 통계를 내보라면 당연히 보수 쪽으로 기울어진다. 그러나 여기에 방송사나 제작진의 의도가 개입되진 않는다. 우리도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싶고 이것이 방송의 의무라는 점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다”며 “종편에서도 끊임없이 야권 인사들에게 섭외 요청을 하지만 번번이 거절당한다. 당 차원에서 종편 출연을 막고 있는 실정이니 우리로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박 앵커는 “현재로선 개인적 인맥을 총동원해 야권 인사를 섭외하고 있다. 그러면 부탁을 받은 상대 측은 목숨 걸고 나온다는 말까지 한다. 그만큼 어렵게 모시는 자리이기 때문에 방송에서 하고 싶은 말은 다 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만약 야권에서 문을 열어준다면 그동안 못 모셨던 인사들을 다 초대하고 싶은 심정이다”면서 “종편도 방송심의위원회로부터 철저히 모니터링을 받고 있기에 절대 정치적 색깔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을 국민들이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의 연출을 맡고 있는 오동선 PD도 패널 선정에서 정치적 색깔을 고려하는 일은 절대 없다고 밝혔다. 오 PD는 “정치적 편향성을 보인다는 비판을 받을까봐 방송제작과정에서도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다. 되도록 다수의 패널을 초대해 토론형식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려는 것도 이러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다. 보통 패널 선정은 주요 현안과 관련한 이해 당사자나 전문가 및 사회 원로를 중심으로 두루 모시려 노력한다”며 “아직까지는 야당 인사를 패널로 초대하기엔 현실적 제약이 많은 게 사실이다. 점차 섭외가 자유로운 환경이 마련되면 자연스레 방송도 균형을 찾아갈 것이고 종편을 둘러싼 정치적 편향성 논란도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종편 관계자의 주장처럼 일부 진보성향을 띤 시민단체 및 시사평론가들의 출연거부 선언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는 극히 소수에 불과했을 뿐 야당 인사들도 종편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민주통합당 관계자는 “방송 출연은 의원들의 개인적인 의사로 결정하는 것일 뿐 당 차원에서 제재를 가하는 일은 없다. 불과 며칠 전에 김부겸 공동선대위원장도 채널A에 출연한 바 있다”면서 “물론 여권 인사가 아니라면 매체(종편) 특성에서 비롯되는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공중파처럼 자유로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누가 출연을 망설이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이처럼 종편의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 거세지면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위)도 보다 강도 높은 모니터링 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실제 종편에 가하는 제재 횟수도 증가하는 추세다. 방통위 관계자는 “대선을 90일 앞둔 지난 9월 20일부터 전체 방송에 대한 집중적인 모니터링 작업을 펼치고 있다. 물론 종편도 예외는 아니다. 여러 사유로 인해 지금까지 총 27건의 심의안건이 선정됐는데 그중 15건이 종편과 관련된 부분이더라. 현재 국내에 방송되는 채널이 수백 개에 이르는데 단 4개 채널밖에 없는 종편이 전체 안건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치적 편향성만 콕 집어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기에는 기준과 잣대가 명확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앞서의 관계자는 “방통위에서도 종편의 정치적 편향성 문제를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몇 차례 이 부분에 대한 논의를 해보기도 했으나 어떠한 제재를 가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며 “종편에서도 야당 인사의 출연거부로 균형을 맞추기 어렵다는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설령 그러한 문제가 있더라도 방송이라면 응당 균형감각을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기에 계속해서 지켜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