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포폴을 상습 투약하다 덜미를 잡힌 연예인 에이미가 징역 1년을 구형받았다. 필로폰, 코카인과 같은 악성 마약이 아닌 일반 전신마취제가 이토록 사회를 시끄럽게 만들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지난 15년간 포폴이 각종 의료 시술마다 ‘애용’되어 왔다. 그동안 ‘쉬쉬’했던 일들이 근래 들어서야 봇물 터지듯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정부 및 검경에서는 “대대적인 ‘포폴 단속’을 벌이겠다”고 공표한 상황이지만 여전히 제약, 의료 업계에서는 포폴을 은밀히 찾는 수요자들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제약회사 영업이사 출신 김 아무개 씨(40대)는 “포폴은 법망에서만 안전하게 ‘암거래’되기 때문에 정부든 검찰이든 거래의 ‘몸통(공급책)’을 죽었다 깨어나도 잡아내지 못할 것”이라며 “간혹 환자의 밀고로 병원사무장 등이 발각될 순 있다. 그러나 진정한 ‘몸통’인 제약도매상들이 지하에서 활동하는 한 악순환은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에 따르면 현재 국내 ‘포폴 암거래 시장’은 거시적으로는 제약 도매상과 개인병원, 미시적으로는 의사, 간호조무사, 제약 영업사원으로 구성돼 있다. 그는 “제약 도매상이 마음만 먹으면 일반인에게 포폴을 무한대로 판매할 수 있다. 일부 개인병원이 3% 정도의 인센티브를 받는 조건으로 일반인과 제약 도매상 간의 포폴 암거래가 안전하게 성사되도록 돕는다”고 귀띔했다.
포폴 암거래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바로 구체적으로 집계되진 않았지만 국내 포폴 중독자 수가 해마다 급증하고 있어 수요층이 두텁고 무엇보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업계 일각에서는 포폴은 ‘금폴’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포폴 장사로 빌딩을 세웠다’는 전직 간호조무사들의 ‘전설’ 같은 소문이 알고 보면 대부분 실화였다는 것도 업계에선 이미 유명한 얘기라고 한다.
이처럼 포폴 장사가 돈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포폴은 1병당 각각 12cc, 20cc, 이렇게 두 종류의 제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제약회사마다 단가가 천차만별이지만 20cc 제품의 경우 1병당 약 3500원에서 8000원 정도의 저렴한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제약 도매상이 개인병원에 넘길 때 매겨지는 도매 납품가가 이 정도다. 반면 대학병원들은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제약회사로부터 기존가보다 약 30~40% 할인된 가격으로 포폴을 공급받고 있다. 쉽게 말해 포폴은 1병당 2000~5000원 수준의 가격에 납품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러나 이 포폴을 대량으로 빼돌려 유흥업소 종사자, 연예인을 비롯해 일반인들에게 몰래 공급하는 경우 포폴 1병의 가격은 크게 뛴다. 약 80만 원에서 120만 원 수준으로 가격이 최소 100배 이상 껑충 뛴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포폴 1병은 2명분으로 이뤄져 있는데 주사 1대당 약 40만~60만 원을 받는다고 한다. 한마디로 싸게 싸서 비싸게 팔 수 있을뿐더러 고객도 꾸준히 넘쳐나는 굉장히 ‘쏠쏠한’ 장사인 셈이다.
한때 동료가 포폴 장사로 억대 부자가 되는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봤다던 ㅇ 제약회사 직원 이 아무개 씨(30대)는 “전직 제약회사 출신이거나 간호조무사였던 사람들이 예전에 알고 지내던 제약 도매상들에게 많게는 몇 백만 원씩 뇌물을 주면서 친하게 지낸다. 포폴 유통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다. 원래 포폴은 의료인들만 구입할 수 있지만 제약 도매상들과 손잡으면 문제될 게 없다. 도매상이 직접 병원 측과 협의해서 물량을 얼마든지 빼돌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일반인인 A 씨가 제약 도매상 B 씨로부터 포폴 20cc 1병당 5000원을 주고 50병을 25만 원에 구입하기로 결정했다고 가정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원래 제약 도매상 B 씨는 거래처인 C 병원에 월마다 100병씩 포폴을 공급하고 있었는데 A 씨가 주문한 달에는 일부러 C 병원에 150병을 공급한다. 이때 C 병원에 전체 납품가의 3%를 떼어주고 납품한 포폴 150병 중 50병을 다시 병원으로부터 돌려받아 원래 주문자인 A 씨에게 넘기는 것이다.
이 같은 ‘검은’ 거래를 두고 일부 제약 회사 영업사원들은 “이렇게 포폴 주문자, 도매상, 개인병원이 짜고 치면 문서도 깨끗할뿐더러 밀고자가 있어도 잡아내기 어렵다. 검찰이 제 아무리 반도체 칩을 심어도 답이 안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3자 협의’가 없어도 포폴을 빼돌릴 수 있는 방법은 또 있다. 제약회사 직원 이 씨는 “사무장 병원에 고용된 일부 간호조무사들에 의해 포폴이 무분별하게 퍼져나가고 있다”고 털어놨다.
포폴은 주로 내시경, 성형 수술에 많이 이용되고 있다. 일례로 서울 경기권에서 위 내시경을 받는 환자의 평균수를 꼽아보면 병원 한 곳당 하루에 약 30명 정도다. 여기서 위 내시경 시술을 위해 환자 1명에게 투여되는 포폴 분량은 약 8cc~10cc 정도다. 체격이 작은 여성에게는 7cc 정도를 투여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5cc 정도를 주입하고 환자의 상태를 봐가며 투여 분량을 차차 늘리는 것이다. 이 시술 과정에서 의사는 모니터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고 한다. 때문에 포폴을 직접 투여하는 임무는 간호조무사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사가 간호조무사에게 “2cc 더 투여하세요”라고 주문하면 간호조무사가 직접 투여 분량을 조절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의사도 모르는 ‘꼼수‘가 이뤄진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간호조무사 신 아무개 씨(여·20대)는 “시도해보진 않았지만 내시경 할 때 의사 지시에 따르지 않고 환자에게 포폴 2cc가 아니라 1cc를 줄여서 투여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한 사람이 내시경 받을 때마다 포폴 1병당 3~4cc 정도를 남길 수 있다. 환자 20명만 이런 식으로 해도 하루에 포폴 2병 정도는 거뜬히 빼돌릴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내시경 실에서 하루에 포폴 2병씩, 한 달에 병원 한 곳당 약 40병의 포폴을 빼돌릴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간호조무사에 의해 빼돌려진 포폴은 다시 중간 납품업자나 ‘주사아줌마’들에게 팔려나간다. 이렇게 나온 포폴들은 ‘부르는 게 값’이지만 단속이 심해진 최근에도 없어서 못 팔 지경이라고 한다. 이런 불법 유통을 거친 대량의 포폴들이 검은 암시장을 형성해 중독자를 양성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