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릿의 뉴진스 카피가 이 사건의 본질” 주장하지만…경영 분쟁에 아이돌 끌어들였단 비난↑
4월 22일 민희진 어도어 대표는 공식입장을 내고 "하이브는 여러 레이블이 독립적으로 자신의 음악을 만들고 이를 통해 문화적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해 멀티 레이블 체제를 운영하고 있으며 어도어는 그 레이블 중 하나"라며 "그런데 어도어 및 그 소속 아티스트인 뉴진스가 이룬 문화적 성과는 아이러니하게도 하이브에 의해 가장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 대표는 "하이브의 레이블 중 하나인 빌리프랩은 올해 3월 5인조 그룹 아일릿을 데뷔시켰다. 아일릿의 티저 사진이 발표된 후 '뉴진스인 줄 알았다'는 반응이 폭발적으로 온라인을 뒤덮었다"라며 "아일릿은 헤어, 메이크업, 의상, 안무, 사진, 영상, 행사 출연 등 연예활동의 모든 영역에서 뉴진스를 카피하고 있다. '민희진 풍' '민희진 류' '뉴진스의 아류' 등으로 평가되고 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 레이블의 수장이 같은 산하의 다른 레이블과 그 소속 아이돌을 공개적으로 '카피' '아류'라고 부른 것은 민 대표가 최초다.
민 대표는 이 같은 아일릿의 '뉴진스 카피'가 단순히 빌리프랩의 작업이 아니라 하이브 방시혁 의장의 관여로 이뤄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K팝을 선도하는 기업이라는 하이브가 단기적 이익에 눈이 멀어 성공한 문화 콘텐츠(뉴진스)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카피해 새로움을 보여주기는 커녕 진부함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바로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민 대표가 하이브에 문제를 제기했으나 하이브와 빌리프랩 모두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고 구체적인 답변을 미뤄왔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던 중 4월 22일 오전, 하이브가 돌연 민 대표의 대표이사 직무를 정지하고 해임하는 절차를 밟겠다고 통보하는 한편, 하이브 발 소스로 추정되는 민 대표의 '어도어 경영권 탈취 시도'가 보도됐다는 것이다.
민 대표의 주장은 언뜻 보기에 어느 정도 정당한 항의라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실제로 빌리프랩의 아일릿은 데뷔 전 공개한 콘셉트 포토 구성이나 멤버 전원이 긴 검은 생머리로 스타일링을 하는 등 뉴진스가 추구하는 '추억 속의 소녀' 이미지와 겹치는 부분이 많아 K팝 팬덤 사이에서 "하이브가 뉴진스의 이미지를 재활용해 신인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었다.
그러나 데뷔 후에는 뉴진스보다 어린 연령대(10대 초반)를 겨냥한 듯한 다소 유아스러운 이미지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며 뉴진스와의 차별화를 두기 시작했다. 하이브나 빌리프랩이 이미 '뉴진스스러움'으로 자리잡은 이미지를 이용해 데뷔 전 아일릿에 대한 관심 지수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것은 맞지만, 이 이후 행보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면 굳이 민희진 대표가 이 문제를 '사태'로까지 지적하며 공론화시키려 한 필요가 있었느냐는 의문도 생긴다.
이 부분에 대해 민 대표는 "하이프 및 빌리프랩은 아일릿의 활동이 많아질수록 뉴진스와의 다른 점들만 모아 부각시키며 데뷔 시의 사태를 희석시키려 할 가능성이 있다. 시간이 흐르는 사이 팬과 대중들이 가진 오해들도 커질 가능성이 있다"며 "이에 어도어는 뉴진스 멤버 및 법정대리인들과 충분히 논의한 끝에 공식입장을 발표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문제는 이 부분에서 발생한다. 민희진 대표의 이 공식입장, 즉 한 레이블의 수장이 '아일릿은 뉴진스의 카피'라고 공식적으로 밝힌 이 입장에 '뉴진스의 멤버'들의 의사가 반영돼 있다는 것이다. 기존에 하이브가 주장한 '민희진 대표의 경영권 탈취 시도'와 민 대표의 반박인 '하이브와 빌리프랩의 어도어에 대한 배임'이 결국 경영진들 사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임에도 민 대표의 입장으로 인해 사안은 '뉴진스 대 아일릿'으로 번지게 된 셈이다. 두 그룹 모두 16살부터 19살까지 10대 미성년자 멤버들이 포함돼 있는 만큼 어른들의 싸움에 아이들을 본격적으로 말려들게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민희진 대표의 공식입장에는 하이브 측이 앞서 주장한 의혹에 대한 세세한 반박은 없고 단순하게 "뉴진스의 문화적 성과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항의가 어떻게 어도어의 이익을 해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인지, 어떻게 어도어의 경영권을 탈취하는 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인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의도가 있다고 보인다"고만 적혔다. 하이브 측이 경영권 탈취 시도의 핵심 인물로 꼽은 어도어 경영진 A 씨나 관련 의혹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주장에 대한 명확한 반박이 이후 재판에서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굵직한 의혹에 대해서는 최소한 '그런 사실의 존재 유무'를 밝혀야 했지만 민희진 대표의 공식입장에서 남은 것은 "아일릿은 뉴진스의 카피 그룹"이라는 주장 뿐이다. 구체적인 해명 없이 "이 입장 발표로 하이브 및 빌리프랩이 잘못을 직시하고 앞으로는 타인의 문화적 성과를 존중하고 치열한 고민을 거친 창작을 통해 우리나라 음악 산업과 문화에 기여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는 일침으로 끝난 이 공식입장으로 인해 결국 상처는 '카피 그룹'이라는 오명을 얻은 아일릿과, 데뷔 2년이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회사의 경영분쟁에 휘말리게 된 뉴진스의 몫이 됐다.
익명을 원한 한 가요계 관계자는 "대중들도 아일릿의 초기 콘셉트가 뉴진스와 많이 비슷하다고 여겨왔던 만큼 민 대표가 이 사태의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자 했었다면 굳이 뉴진스 멤버들의 동의 여부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대중을 설득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뉴진스를 내세우는 순간 민 대표의 공식입장문은 결국 멤버들의 뜻과 동일해져 버리는데 과연 경영진들의 고래 싸움에 아무리 법정대리인인 부모님과도 논의한 것이라지만 미성년자가 포함돼 있는 신인 그룹이 거론되는 게 맞는 것인지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짚었다.
한편 4월 23일 기준으로 하이브는 민희진 대표와 어도어 경영진 A 씨 등이 경영권 탈취를 위해 민감한 회사 내부 정보를 유출하고, 하이브가 보유하고 있는 어도어 지분(80%)을 자신과 손 잡은 사모펀드(PEF)에 매각하도록 하이브에 압박을 가하려 했다는 정황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만일 사모펀드 매각 압박 전략이 통하지 않을 경우엔 별도의 독립 법인을 설립해 뉴진스 멤버들을 데리고 나오려 한 방안도 2순위로 준비돼 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하이브 박지원 CEO는 이날 사내 구성원들에 이메일을 보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건(민희진 대표의 경영권 탈취 시도 의혹)들은 아일릿의 데뷔 시점과는 무관하게 사전에 기획된 내용들이라는 점을 파악하게 됐고, 회사는 이러한 내용들을 이번 감사를 통해 더 구체적으로 확인한 후 이에 대한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민희진 대표는 첫 번째 공식입장 이후 별다른 추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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