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관 명령 복종’ 넘어서는 근거와 명분 찾아내야…당시 이시원 비서관 등과 통화한 유재은 법무관리관이 ‘키맨’
국방부 장관이나 각 군 참모총장이 임명하는 군검찰단이 바로 군사법경찰에 해당하는데, 법조계에서는 이 조항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해병대원 순직사건 외압 의혹 수사의 핵심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방부 장관 등 상관의 지시에 ‘복종해야 한다’는 이 법 조항을 넘어서는 근거와 명분을 공수처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냐는 부분이다.
#직권남용 적용할 수 있을까
공수처 수사4부(이대환 부장검사)는 5월 21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중장)을 재소환했다. 김 사령관에게 적용된 혐의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다. 오전 9시 20분 즈음 공수처에 출석한 김 사령관은 “대통령이 격노했다고 말한 게 맞나” “장관의 이첩 보류 지시가 외압이라고 생각했나” “박정훈 대령의 주장은 거짓이라고 보느냐” 등의 취재진 질문에 답하지 않고 들어갔다.
같은 날 오후, 공수처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같은 날 두 사람을 동시에 부른 것은 공수처가 두 핵심 관계자의 진술 중 서로 상반되는 점을 대비해 ‘VIP 격노설’의 진위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등 윗선으로부터 받은 지시 내용 등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해병대 최고 지휘관인 김 사령관은 2023년 7∼8월 채상병 순직 사건을 초동 조사한 박 전 단장에게 윗선의 외압이 가해지는 과정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전 단장은 2023년 7월 30일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 간부 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 수사 결과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이종섭 전 장관은 당시 해병대 수사단장의 보고를 받은 다음날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김 사령관은 돌연 언론 브리핑 취소를 통보하며 부대 복귀를 지시했다. 하지만 박 전 단장은 이를 따르지 않고 사건을 경찰에 이첩했다. 이 과정에서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박 전 단장에게 전화해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수정하라”고 했다는 것이 박 전 단장의 주장이다.
이 일련의 과정을 군사법원법 45조 기준으로 바라보면 양쪽 모두에게 ‘다툼의 여지’가 생긴다. 범죄 수사에 관해 ‘직무상 상관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에 김 사령관의 지시나 이종섭 장관의 명령에 항명한 것만 문제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이번 사건을 잘 아는 한 법조인은 “군사법원법 45조를 적힌 그대로 해석할 경우 법무부 장관, 해병대 사령관, 더 나아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지시는 모두 ‘수사 관련된 명령’에 해당할 수 있다”며 “법원에서 이 조항을 넓게 해석하면 모두 무죄가 나올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놓고 박 전 대령 측은 ‘장관은 조직 체계상 상관일 뿐 수사기관의 직무상 상관이 아니며, 공식 문서가 아닌 구두로 지시를 내린 것은 절차적 문제가 있다’며 반발하는 상황이다. 공수처 수사 과정은 물론, 기소 시 법정에서 치열한 논리 다툼이 예상되는 지점이다.
#대통령실-유재은 관리관 통화도?
공수처가 수사 중인 나머지 한 축은 이시원 전 공직기강비서관과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의 통화다. 공수처는 2023년 8월 2일 이시원 전 비서관과 유재은 관리관이 통화한 내역을 확인했다. 이시원 전 비서관이 유재은 관리관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고, 오후 늦게 통화가 이뤄졌다.
8월 2일은 해병대 수사단이 윗선의 보류 지시를 따르지 않고, 해병대원 사건 수사 기록을 경북경찰청에 넘긴 날이다. 당시 국방부 검찰단은 박정훈 전 단장의 항명 증거라며 돌연 수사 기록을 회수했는데, 당일 유재은 관리관과 이시원 전 비서관 사이에 통화가 오간 것이기에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 확인이 필요하다는 게 공수처의 입장이다.
공수처는 특히 유재은 관리관을 주목하고 있다.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이 결재를 번복하며 수사 외압 의혹이 일어난 2023년 7월 31일부터 국방부 검찰단이 경북경찰청에서 수사 자료를 회수한 지난해 8월 2일 사이, 유재은 관리관은 대통령실과 국방부, 경찰 그리고 해병대 사령부, 해병대 수사단 관계자와 모두 소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재은 관리관을 시작으로 대통령실까지 올라가는 수사는 혐의 적용이 모호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시원 전 비서관의 경우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근무했는데,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내부 감찰과 사정 등을 담당한다. 8월 2일 이뤄진 통화가 박 전 단장의 항명을 놓고 대통령실과 국방부 간의 소통이었다면 이시원 전 비서관이 ‘주어진 권한’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법무관리관 역시 군 사법제도 전반을 총괄·조정하고 군사법원과 군 검찰기관, 군 수사기관을 감독하는 국방부 장관 직속 참모다. 국방부 내에서 법무부 장관에 해당하는 역할을 하는, 군사법경찰(군검찰단)을 임명하고 지휘하는 국방부 장관의 담당 업무 참모다. 이를 감안하면 직권남용을 적용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국방부 장관을 보좌하는 역할에 ‘부합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언론에 박 전 단장의 항명 파동이 불거진 것은 8월 9일. 때문에 수사 결과 보고가 이뤄진 7월 30일부터 8월 9일까지, 10여 일 동안 대통령실과 국방부 핵심 관계자 중 직권에 해당하지 않는 누군가가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공수처가 모두 확인해야 ‘기소 여부와 범위’를 판단할 수 있는데 이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지점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조사 처분을 놓고 대통령실이나 국방부 수뇌부의 판단이 아쉬웠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이 사건이 위법에 해당한다거나 직권남용을 적용했을 때 유죄가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최근 법원이 직권남용 혐의도 보수적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공수처가 어설픈 증거로만 직권남용을 적용한다면 되레 논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동운 신임 처장 취임이 변수
오동운 신임 공수처장이 사건 처리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관심이 쏠린다. 5월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오동운 공수처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 보고서를 여야 합의로 채택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임명을 재가했다. 민주당은 오동운 후보자의 개인 논란에 대해서는 부적격 판단을 내리면서도 “공수처가 수사하는 채 상병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뿐 아니라 누구든 성역 없이 원칙대로 수사하겠다는 오 후보자의 소신을 존중해 문제점이 있지만 수용했다”고 밝혔다.
오 처장이 취임하면 공수처의 해병대원 순직사건 외압사건이 ‘다른 흐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앞선 공수처 흐름에 정통한 법조인은 “처장과 차장의 판단으로 얼마든지 사건의 기소 여부 결정이 바뀔 수 있기에 이번 사건의 흐름은 처장 취임 후 공수처 분위기를 봐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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