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좀 보내주세요 김응용 감독이 류현진의 메이저리그행 불가 방침을 밝힌 이후 논란이 뜨겁다. 일요신문 DB |
그렇다면 어째서 한화 관계자는 ‘1995년 이후’라는 표현을 쓴 것일까. 1995년은 해태 선동열이 구단 만류를 이겨내고 일본 프로야구 진출에 성공한 해다. 당시 해태는 선동열을 잡으려 무진 애를 썼다. 코칭스태프에서도 ‘선동열은 전력의 반’이라며 그의 일본행을 우려했다. 하지만, ‘선동열을 놔주라’는 여론의 압력에 밀려 결국 구단은 선동열의 일본행을 허락했다.
▲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
한화 팬들은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김 감독이 과거처럼 통 큰 자세로 류현진의 미국행을 허락하길 바란다. 그러나 김 감독은 “류현진과 선동열은 다른 케이스”라는 입장이다.
“류현진도 선동열처럼 팀의 기둥이다. 하지만 류현진은 아직 우승 경험이 없다. 일단 팀을 정상으로 끌어올리고서 자기 꿈을 찾아 떠나는 게 순서다. 그나마 해태 마운드는 선동열 없이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한화는 다르다. 류현진이 빠지면 한화 마운드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김 감독은 “류현진의 미국행은 구단이 결정할 문제”라며 전혀 개입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11월이 가까워지자 김 감독은 “류현진의 잔류를 구단에 요청했다”며 메이저리그행 불가 방침을 밝혔다.
한발 나가 “아직 국내에서 7년을 뛰고 해외에 진출한 사례가 없다”며 “설령 미국에 가고 싶더라도 계속해서 이것을 외부에 말하는 것은 해단(害團) 행위”라고 류현진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 김응용 감독 취임식에서 김 감독과 류현진이 악수를 나누는 모습.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
이 관계자는 “억지로 봉인했던 판도라의 상자가 김 감독의 발언으로 열렸다. 류현진은 미국행 추진, 김 감독은 미국행 불가 방침을 밝혔기 때문에 결국 구단이 손에 피를 묻혀야 하는 입장”이라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10월 중순까지 구단 내부 분위기는 7대 3 정도로 류현진의 미국행에 호의적이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여론이었다. 한화 팬들조차 류현진의 미국행을 바라는 상황에서 자칫 한화가 ‘불가 카드’를 꺼내들었다간 심각한 역풍이 불 게 자명했다.
두 번째는 동기 부여였다. 한때 한화는 류현진에게 “내년 시즌까지 뛰면 미국행을 허락하겠다”는 뜻을 전달할 방침이었다. 일단 팀 전력이 정상궤도에 올랐을 때 미국에 가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류현진이 “내년까지 기다리는 건 별 의미가 없다. 차라리 2014년까지 기다렸다가 9년 차 FA(자유계약선수) 때 구단 허락 없이 마음 편하게 진출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계획을 철회했다. 구단 관계자는 윤석민(KIA)를 예로 들며 “지난해 해외 진출에 실패한 윤석민이 올 시즌 좋지 않은 투구를 선보였다”며 “윤석민처럼 류현진도 억지로 잡아두면 되레 팀과 선수 모두 불편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화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구단 고위층이 야인이던 김 감독과 만났을 때 류현진 거취에 대해 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김 감독은 “구단이 놔준다면 나도 따르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한화는 김 감독이 야인이었을 때 “류현진의 미국 진출을 허락해야 한다”고 주장한 걸 상기하고선 ‘류현진을 보내자’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막상 김 감독이 사령탑에 선임되자 일이 틀어졌다. 김 감독은 “구단 입장에 따르겠다”고 밝혔지만, 김 감독의 복심인 김성한 수석코치와 이종범 주루코치는 “9년을 채우고 미국에 진출해도 늦지 않는다”며 류현진의 잔류를 주장했다.
김 감독을 잘 아는 야구인은 “두 코치의 발언은 개인적 의견이라기보다 김 감독 의중을 대리 표현한 게 맞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김 감독이 한화 사령탑이 되고나서 ‘생각했던 것보다 팀 전력이 너무 좋지 않다’는 말을 자주 했다. 특히나 마운드가 다른 팀에 비해 무척 낮다고 평가했다. 이 상태에서 류현진까지 떠난다면 내년 시즌에도 꼴찌는 한화 차지라는 두려움이 생긴 것 같다. 겉으로 ‘중립’을 외쳤지만, 속으론 구단이 알아서 류현진을 잡아주길 바란 듯싶다. 하지만, 구단이 별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자신이 나서 외국 진출 불가론을 주장하는 강수를 뒀다. 김응용다운 정면돌파였다.”
▲ 류현진이 벤치에서 소속팀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류현진을 보내자니 팀 전력 하락이 예상되고, 붙잡고 있자니 여론이 심상찮다. 김 감독에게 “상위권 도약을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해놓고 류현진을 보낸다면 한 입으로 두 말한 꼴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김 감독에게 “과거와 말이 다르지 않소”하고 따질 수도 없다.
한화 수뇌부는 류현진과 김 감독을 만나 서로의 의견을 듣고, 의견을 조율해 11월 초 구단 입장을 최종 발표할 예정이다.
구단 핵심 관계자는 “원체 선수와 코칭스태프의 입장이 확고해 적당한 타협안은 나오기 힘들 것 같다”며 “‘미국에 가느냐, 남느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구단이 어떤 결론을 내리든 양측에 ‘100% 수긍하고 따라 달라’고 요청할 참”이라며 “어떻게 하면 후폭풍을 최소화할 수 있느냐가 구단의 가장 큰 고민”이라고 귀띔했다.
만약 구단이 류현진의 미국행을 허락한다면 곧바로 포스팅시스템에 따라 미국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입찰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류현진 측은 “메이저리그 2, 3개팀이 류현진 영입에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며 “최소 입찰액으로 1000만 달러 이상을 예상 중”이라고 밝혔다.
아메리칸리그 모 구단 스카우트는 “류현진의 가치를 미국 구단들이 더 잘 안다”며 “구단간 영입 경쟁이 치열해지면 입찰액과 몸값 합쳐 3000만 달러 이상을 상회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손혁 MBC SPORTS+ 해설위원은 “류현진의 미국 진출을 놓고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기보다 입찰을 지켜본 뒤 최종 판단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조언했다.
“일단 류현진을 매물로 내놓고, 시장 상황을 지켜보는 게 가장 적합한 문제 해결책이다. 미국 구단에서 적은 금액을 써놓으면 국내에 잔류하면 되고, 만약 높은 금액을 적어놓으면 구단이 고민해 결정하면 된다. 류현진의 미국행은 차치하고서라도 과연 한국 최고의 에이스가 미국 구단 눈엔 어떤 선수로 비치고,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야구계는 류현진마저 포스팅시스템을 활용하지 않으면 7년 차 국외진출은 사실상 ‘죽은 조항’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야구계는 손 위원이 제시한 것처럼 ‘선 입찰, 후 결정’을 가장 합리적인 대안으로 꼽고 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마쓰자카 머니’로 홈구장 리모델링
언뜻 마쓰자카의 몸값이 5111만 달러 같지만, 그 돈은 소속 구단 세이부에게 주는 돈이었다. 보스턴은 마쓰자카에겐 따로 6년에 5200만 달러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마쓰자카 한 명을 잡으려고 보스턴은 무려 1억 311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썼다.
내심 ‘마쓰자카를 팔아 1000만 달러 정도의 수익’을 올리려던 세이부는 보스턴의 결정에 크게 놀라면서도 생각지도 못한 횡재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결국 마쓰자카가 보스턴과 계약하며 세이부는 60억 엔(5111만 달러)을 받았고, 법인세 40%를 뗀 약 36억 엔을 손에 쥐었다. 이 돈으로 세이부는 홈구장 세이부돔을 전면 수리했다. 선수들의 염원이었던 신형 인조잔디를 깔고 펜스를 교체했으며, 관중석 화장실을 전부 손봤다. 여기다 기존 3000엔이던 어린이 회원비를 1000엔으로 깎았다.
세이부는 이른바 ‘마쓰자카 머니’를 허투루 쓰지 않은 덕분에 구장을 자력으로 개보수할 수 있었고, 새롭게 단장한 홈구장엔 많은 팬이 찾았다.
전력 향상에도 돈을 썼다. 세이부는 마쓰자카가 떠난 2007년 퍼시픽리그 5위에 그쳤다. 그러나 2008년 지갑을 열어 전력 향상에 애쓰면서 그 해 퍼시픽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여기다 세이부는 2010년부터 올 시즌까지 3년 연속 우리의 포스트 시즌 격인 ‘클라이막스 시리즈’에 오르고 있다.
올 시즌 텍사스 레인저스에 입단한 다르빗슈 유도 비슷했다. 니혼햄은 지난 1월 포스팅시스템으로 5170만 달러를 받고 우완 에이스 다르빗슈를 텍사스로 보냈다.
팀 전력 하락이 예상됐으나 올 시즌 니혼햄은 퍼시픽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일본시리즈에 올랐다. 이유는 분명하다. 니혼햄이 입찰액으로 기존 선수들의 연봉을 대폭 올리는 당근책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니혼햄은 66명의 선수 가운데 연봉이 떨어진 선수는 19명이었다. 연봉 인하 폭도 대개 100만 엔 미만이었다. 대신 니혼햄은 주축 선수들의 연봉을 많게는 8000만 엔, 적게는 100만 엔씩 올려줬고, 25명의 선수가 연봉 인상 혜택을 누렸다.
니혼햄은 이밖에도 거액의 입찰액으로 팬 서비스를 강화했으며 2군 훈련장도 개보수했다. 지난 7월 일본을 찾았을 때 니혼햄 관계자는 “다르빗슈가 떠나며 고민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며 “니혼햄이 ‘다르빗슈 원맨팀’에서 벗어난 것이야말로 가장 긍정적인 효과”라고 털어놨다.
이 관계자는 “내년 시즌 팀 전력 강화 차원에서 남은 돈으로 대형 FA 영입을 계획하고 있다”며 “우리는 항상 다르빗슈에게 감사한 마음”이라고 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 때문일까. 라쿠텐 골든이글스는 포스팅시스템에 매우 적극적이다. 라쿠텐은 에이스 다나카 마사히로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적극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해 여름 라쿠텐 고위층을 만났을 때 그는 “다나카가 원한다면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미국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구단은 다나카의 꿈을 짓밟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2015년에야 FA 자격을 취득하는 다나카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주목하는 일본 최고의 우완투수다. 라쿠텐 입장에선 없어선 안 될 에이스다. 그런데도 라쿠텐이 다나카의 미국행을 후원하는 건 ‘엄청난 입찰액을 기대하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IT 업체인 라쿠텐은 2004년 창단한 뒤 해마다 수십억 원의 구장 리모델링비를 지출하고 있다. 구단 측에 따르면 아직 100억~200억 원을 더 쏟아 부어야 한다. 창단한 지 10년 미만 구단이라 마케팅 비용도 엄청나다.
라쿠텐 고위 관계자는 “프로야구는 비즈니스”라며 “우리는 야구연감에 남을 우승보다 장부상 흑자를 더 원한다”고 강조했다.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