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리커처=장영석 기자 |
정부가 농민들을 밀어내면서까지 한·중·일 FTA 공청회를 밀어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공청회가 한·중·일 FTA의 본격적인 협상 개시를 위한 국내 절차의 시작이자 사실상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FTA 협상에 들어가기 전에 정부는 공청회를 열고 이후 FTA 실무추진회의와 FTA 추진위원회 심의, 대외경제장관회의 의결이라는 국내절차를 마무리지어야 한다.
FTA를 시작하기로 방향을 정한 정부가 넘어야 할 유일한 장애물은 공청회다. 농민들 입장에서는 공청회만 무산시키면 추후 절차 진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청회를 막는 데 주력하게 된다. FTA 공청회에서 늘 충돌이 일어나는 이유다.
어쨌듯 이명박 정부가 임기 말임에도 한·중·일 FTA공청회를 밀어붙였다는 것은 임기가 끝나기 전에 협상 개시 선언을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정부가 한·중·일 FTA에 집착(?)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 한국을 ‘FTA 허브’로 만들었다는 평판을 얻기 위해서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FTA 허브란 한국이 세계 최대 시장인 유럽연합(EU), 단일국 최대 소비시장인 미국, 세계 최대 인구를 가진 중국과 FTA를 맺어 중심국가가 된다는 의미다. 이러한 삼각 FTA가 완성되면 중국 시장에 들어가려는 유럽이나 미국계 기업은 관세를 피하기 위해 한국에 투자하고, 유럽과 미국에 싸게 수출하려는 중국 기업이 한국에 몰려들 것이라는 셈법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FTA 허브 구축에 지금껏 이명박 정부의 기여도는 크지 않다.
한-미 FTA의 경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지세력의 반대를 무릅쓰고 2006년 6월 협상을 시작, 2007년 4월 협상을 타결했고 6월에 서명까지 마쳤다. 이후 미국 의회의 반발로 재협상 끝에 2012년 3월에 발효시켰지만 한-미 FTA의 가장 큰 공은 지지세력 반대를 이겨낸 노 전 대통령에게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EU와의 FTA도 노 전 대통령 시절에 공식 추진, 2007년 5월 1차 협상이 개최됐다. 내부 반대가 해결되면 양국 간 협상만 남는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어려운 문제를 다 푼 숙제의 정리만 물려받은 셈이다.
또 한·중·일 FTA가 현재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한-중 FTA나 아직 사전 단계인 공동연구에 들어간 한-일 FTA보다 우리나라에 유리하다는 점도 이명박 정부의 발걸음을 재촉하게 했다.
한-중 FTA의 경우 값싼 중국산 농산물과 공산품이 밀려들어올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농가나 중소기업에 치명적일 수 있다. 또한 한-일 FTA는 일본산 정밀 기계 부품이 관세 없이 들어올 수 있어 아직 경쟁력이 약한 국내 부품업계를 고사시킬 수 있다.
반면 한·중·일 FTA가 이뤄지게 되면 중국산 농산물과 공산품이 국내에 쉽게 들어오는 대신 중국산보다 질이 나은 우리나라 농산물과 공산품의 일본 수출이 활성화될 수 있다. 또 일본산 정밀 기계 부품이 수입되는 대신 저렴한 가격의 우리나라 기계 부품이 중국으로 들어가는 판로가 개척된다.
한·중·일 FTA는 중국이나 일본보다 우리나라에 더 무게 중심이 오게 된다는 것도 유리한 점이다.
중국은 현재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때문에 바싹 긴장한 상태다. TPP는 미국과 호주, 뉴질랜드, 브루나이, 칠레, 말레이시아, 페루, 싱가포르, 베트남 등 9개국이 추진 중인 다자간 FTA다. 이 TPP가 타결되면 중국을 둘러싼 경제적 포위망이 구축된다. 당초 소극적이었던 미국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TPP에 적극적인 이유도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TPP에 한국과 일본마저 참여할 경우 미국이 주도한 경제적 포위망 안에 완전히 갇혀버리게 된다. 이에 중국은 한국과의 FTA에 적극적이다. 다만 일본과의 FTA는 국내에 높은 반일 감정 때문에 추진하기가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내놓은 한·중·일 FTA카드를 마다하기 쉽지 않다.
지금껏 일본의 대외 경제 전략은 FTA에 무게를 두지 않는 것이었다. 자국 내 농민들의 반발이 적지 않아서 다른 나라와 FTA를 맺을 때도 FTA보다는 CEPA(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라는 용어를 사용해왔다. CEPA는 시장 개방보다는 경제협력에 무게를 둔다는 점에서 시장 개방이 중심인 FTA와 차이가 있다. 일본은 다른 나라와 CEPA를 맺을 때 상대국가 농산물에 대한 국내 수입관세를 낮추지 않는 대신 경제지원을 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공산품 수출 길은 열면서 국내 농업은 보호하는 전략을 사용해온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협상국을 유지하는 것도 한계에 달했다. 이 때문에 일본이 TPP 참여를 저울질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해온 국내 여건상 참여가 쉽지 않다. 해당 국가가 지나치게 많은 것도 일본에게는 부담이다. 반면 한·중·일 FTA의 경우 이보다는 부담이 덜하다. 중국이 고도성장 중이라는 점도 공업이 강한 일본에게는 매력이다.
이처럼 FTA 허브 추진, 중국과 일본 사이의 중개자라는 유리한 위치를 노리고 무리하게 진행한 한·중·일 FTA의 협상이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되기는 어렵게 됐다.
당초 정부가 임기 말에 무리하게 한·중·일 FTA 공청회를 마무리 지은 것은 11월 20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개최되는 동아시아 정상회의 기간에 한·중·일 3국 정상회의를 갖고 한·중·일 FTA 협상 개시를 선언하려는 것이었다.
지난 5월에 열린 3국 정상회의 때 올해 안에 한·중·일 FTA 협상 개시를 선언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11월은 협상 개시 선언의 최적기였다. 그러나 그 사이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한일 갈등이 고조되고, 덩달아 중일 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토 갈등이 심화되자 중국과 일본이 3국 정상회의 개최에 소극적으로 돌아섰다.
정부 관계자는 “한·중·일 3국 간 영토갈등으로 감정의 골이 깊어진 데다 3국 모두 권력 교체기에 있어 11월 3국 정상회의 일정을 잡기 어려운 상태다. 정상회의가 개최되더라도 지금 상황에서 한·중·일 FTA 협상 개시 선언이 이뤄질지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준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