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텔레콤 주식가치 ‘100원→1000원’ 수정 적법 여부도 판단…‘대법관들 의견 나뉠 수 있다’ 관측 고개
2심 판결 이후 ‘뒤집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면, 판결문 경정 이후 법원에서는 ‘대법관들 의견이 나뉠 수 있다’는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주식 가치 판단을 놓고 비율이 크게 달라진 것을 단순 계산 실수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 일각에서는 판결문 경정 자체가 드문 일이 아닌 만큼 대법관들이 ‘재판 취지의 큰 틀’을 존중하면 이대로 결론이 날 수도 있다는 의견도 개진되고 있다.
#“SK(주)나 계열사 주식 특유재산으로 봐야”
6월 24일 최태원 회장 측은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가사2부(김시철 김옥곤 이동현 부장판사)에 판결문 경정 결정에 대한 재항고장을 냈다. 최 회장 측은 “이번 오류는 판결문 경정으로 해결될 게 아니라 판결문 내용의 실질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대법원 판단을 받아보고자 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판결문 경정 결정에 대한 재항고장이 제출된 만큼 대법원은 이혼소송 본안 상고심과 판결문 경정 결정에 대한 재항고심을 동시에 심리해야 한다.
5월 30일 서울고법 가사2부(김시철 김옥곤 이동현 부장판사)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1조 3808억 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최 회장 측 변론을 맡은 법무법인 화우가 판결문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2심 재판부의 오류를 발견했다. 최종현 선대회장 별세 직전인 1998년 5월 당시 대한텔레콤(SK C&C의 전신)의 주식 가치가 주당 1000원이었는데, 이를 주당 100원으로 적었던 것.
최 회장 측은 주식 가치가 잘못 산정되면서 SK(주)의 모태가 되는 대한텔레콤 주식 가치 평가 과정에서 고 최종현 선대 회장과 최태원 회장의 기여도가 기존 12.5 대 355에서 125 대 160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봤다. 최종현 선대 회장의 기여 몫이 높아진 만큼 SK(주)나 계열사의 주식을 ‘특유재산(혼인 전부터 부부가 각자 소유하고 있던 재산이나 혼인 중에 부부 일방이 상속·증여·유증으로 취득한 재산)’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최 회장 측의 지적에 재판부는 곧바로 판결문 일부를 경정(수정)했다. 이례적으로 판결문 경정에 대한 설명 자료도 내놓았다. 단순 계산 실수로, 판결문 수정으로 재산 분할 비율 등 핵심 결론은 바뀌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본안 외에 판결문 경정 자체도 판단해야
대법원은 일단 항소심의 판결문 경정이 적법한지 여부를 판단한다. 판결문 경정이 적법하다고 판단하면 수정된 1000원을 전제로 1조 3808억 원의 재산 분할이 타당한지를 심리한다.
판결문 경정에 대한 재항고를 인용하더라도 항소심 판결이 곧바로 파기되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수치(100원)로 기재된 판결문을 전제로 한 항소심의 결론이 타당한지 여부를 가리게 된다. 잘못된 수치로 기재했음에도 항소심의 결과가 타당하다고 판단하면, 대법원은 본안 상고와 판결문 경정 결정 재상고를 기각할 수 있다.
하지만 주식 가치를 100원으로 한 판단이 항소심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다면 대법원은 항소심 결과를 파기하고 다시 심리하도록 서울고법에 돌려보낼 수 있다. 법조계에서는 판결문 경정에 재항고한 것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최태원 회장 측의 전략이라는 평이 나온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판결문 경정 결정에 대한 재항고를 한 것이 어차피 이혼소송 본안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데, 그럼에도 본안 외에 판결문 경정에 대해 재항고를 한 것은 대법원이 판결문 경정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점을 어느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함 아니겠냐”며 “대법원에서 판결문 경정 결정에 대한 재항고를 인용해주면 파기환송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보면 된다”고 풀이했다.
#사뭇 바뀐 법원 내 분위기
‘10단위’ 하나의 차이일 뿐이지만 법원 내 분위기는 사뭇 바뀌었다. 당초 항소심 판결 이후만 해도 ‘대법원에서 뒤집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지만, 판결문 경정 이후 ‘SK 측에서 해볼 만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재산에 기여한 부분을 판단하는 수치에서 오류가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대법원에서 이를 그냥 ‘단순 실수’로만 덮고 넘어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분명 2심 재판부 3명이 돌아가면서 꼼꼼하게 판결문을 읽고 확인했을 텐데 왜 이런 실수가 왜 나왔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수도권 고등법원의 한 판사 역시 “판사들 사이에서 전망을 점치는 얘기들이 나오는데, 예전과 다르게 ‘대법원에서 뒤집는 결정(파기환송)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전망들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의 판결문 기재 실수가 세기의 이혼소송의 큰 변수가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2심 판단이 고스란히 대법원에서 확정판결 날 수도 있다는 전망도 여전히 유효하다. 재산 기여도에 대한 판단이 본질인 이혼소송은 부부 각각의 기여도를 다투는 것인데, 판결문 오류로 인해 최 회장 자산의 총액이 달라지지 않고 노소영 관장의 기여도(35%)가 뒤바뀔 이유는 없다는 관측이다.
소형 로펌의 한 대표 변호사는 “최 회장 측은 ‘특유 재산에 해당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문제를 발견한 것이지만, 결국 대법원도 노태우 전 대통령을 포함한 노소영 관장 측의 기여도가 있다고 본다면 2심 재판부의 판결문 기재 실수는 ‘단순 오류’일 수 있다”며 대법원이 2심을 그대로 확정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망이 첨예하게 나뉘는 만큼 대법관 4명이 판단하는 소부가 아닌, 전원합의체로 사건이 진행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이 재판장이 되고, 대법관 전원의 3분의 2 이상으로 구성된 재판부다.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13명이 참여한다.
단순 이혼소송이 전원합의체에 가는 경우는 드물지만 판례 변경이 필요하거나, 대법관 간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경우 전원합의체로 사건을 진행하곤 한다. 앞선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사상 초유의 재벌가 이혼소송에서 ‘특유재산 여부’를 놓고 빈틈이 생겼기 때문에 대법관들의 의견이 나뉠 경우 전원합의체로 갈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전원합의체까지 갈 경우 결과가 나오는데 최소 6개월 이상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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