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중알코올농도 0.1 차이로 인생 바뀔 수 있는데…” 책 ‘음주단속, 과속 측정의 허상’ 통해 문제제기
메저랜드는 한국에는 소개되지 않은 개념인데, '목적 측정량'으로 번역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음주 운전자 혈중 실제 알코올 농도는 '실제 측정량'이다. 그런데 호흡을 불어서 측정기에 나온 숫자는 메저랜드다. 우리는 두 수치를 막연하게 절대적으로 같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같지 않다. 안 검사는 모두가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이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고 한다.
안 검사는 검찰 내에서도 대표적인 이론가이자 학구파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LL. M., 법학 석사)해 미국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으며, 근무처와 가까웠던 인하대학교에서 형사법 전공으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검찰개혁 논의가 나오자, 검찰 내에서 그에게 ‘검찰이 고민한 사법 정의 실현을 위한 방향을 논문으로 작성해 보라’는 권유로 미국 제도를 연구한 논문을 몇 편 내기도 했다. 그는 고등검찰청에서 불기소 결정을 작성하면서 했던 고민을 엮어 ‘형벌 조항의 해석방법’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안 검사는 대화 중에도 기자가 ‘예측 가능성’이라고 말하자, 그럴 때는 ‘예견 가능성’이라고 써야 한다고 고칠 정도로 평소에도 엄밀함을 추구하는 듯 보였다. 그는 이 책 서문에 “사람은 그 누구의 삶도 귀한 삶이다. 자비심 없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다. 막연한 법을 도구 삼아 사람을 착취해서는 안 된다. 법의 끝은 관용이다”라고 적었다. 안 검사에게 이 책을 낸 배경과 어떤 고민을 담고 있는지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음주 측정 정확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
“사건을 하나 맡았는데 굉장히 억울해 하는 사람이 있었다. 음주운전은 공무원 같은 경우 신분이 좌우되기도 한다. 그게 혈중알코올농도 0.1 차이로 인생이 바뀔 수 있다. 일반 사람들도 면허 취소냐, 면허 정지냐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그 억울해 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미국 문헌은 있는데 한국에는 이런 책이 전혀 없었다. 공부하기 전까지는 수치 자체를 절대적으로 생각했는데, 그 수치에 얼마나 불확실이 있는지 미국 연구가 매우 많았다. 그래서 그 자료를 종합해 약 2년에 걸쳐 책을 썼다.”
—책 부제가 ‘머나먼 메저랜드’다. 부제를 지은 배경이 있나.
“메저랜드(Measurand·목적 측정량)와 메저드(Measured·실제 측정량)가 구별되고 그 안에 계산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않으면 인식을 할 수 없다. 메저랜드와 메저드 개념이 없으면 나온 수치나 결론이 무조건 절대적으로 맞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 두 개념을 구별하면 그 안에 계산 공식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더 나아가 계산 공식은 과연 정확한지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다. 한국은 메저랜드를 인식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메저랜드로 보면 음주 측정에서 해외 사례와 한국이 다른 점이 뭔가.
“여러 측면이 있다. 그중에서도 측정 횟수도 있다. 예를 들어 키를 재더라도 한 번 딱 재고 끝날 수도 있고, 잴 때 자세가 부정확할 수도 있으니 세 번 재서 그 중 평균을 수치라고 인정할 수 있다. 음주 측정도 한국은 한 번 하지만 미국에서는 두 번 내지 세 번 정도 음주 측정을 한다. 메저랜드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음주운전 측정을 할 때 선을 그어 놓고 ‘똑바로 걸어보라’는 요구를 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뭔가.
“미국에서 음주 측정을 하고 처벌하는 이유는 ‘네 몸에 알코올이 나왔으니 그걸 처벌하겠다’가 아니라, ‘뇌에 알코올이 흡수돼 그 영향으로 운전에 장애를 일으키고 정확한 운전을 할 수 있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서 처벌한다’는 거다. 만약 내가 술을 입에 머금고 있다가 뱉었다 그러면 대부분 흡수가 안 되고 뇌까지 가지 않지만, 측정기에 불었을 때 알코올 농도는 나온다. 이런 때라면 아무런 위험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처벌하지 않는다. 미국은 그런 바탕이 있기 때문에 똑바로 걷는지, 말은 제대로 하는지를 측정하는 거다. 즉, 미국은 처벌의 철학적 기초가 운전자가 위험한 상태인지에 달린 ‘장애 주의’이기 때문에 측정하는 거고, 한국은 수치가 나오면 처벌한다는 일종의 ‘수치 주의’로 운영하기 때문에 그런 게 중요하지 않은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숙취 운전 처벌도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숙취 운전 처벌은 어떤 문제가 있나.
“처벌하는 사람은, 처벌 받는 사람을 두고 처벌 가치가 있는지 여러 고민을 해야 한다. 대표적인 고민거리로 멜란비 효과라는 게 있다. 지금 술 한잔 마시고 밖에 나가서 운전했다가 측정기를 통해 적발됐다. 운전자가 ‘나는 멀쩡하다’고 해도 처벌해도 되겠지만, 전날 술을 마시고 잠에 든 뒤 일어나 운전대를 잡았는데 음주 측정에서 0.35가 나왔다고 하자. 알코올이 뇌와 중추 신경을 억제한 지 10시간, 20시간이 지나면 뇌가 적응해 장애 능력이 거의 없어진다. 만약 알코올이 인지 능력에 장애를 주기 때문에 처벌한다면 숙취 운전을 처벌하는 게 맞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많은 고민이 있겠지만, 결국 측정기를 통해 수치가 나오면 적발하는 방식이 단속과 처벌에 훨씬 용이한 것 아닌가.
“책을 통해 그 수치가 과연 정확한지 의문이 든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한국은 호흡으로 나온 알코올농도에 2100을 상수로 곱해 혈중알코올농도를 계산한다. 이 상수는 국가마다 다르다. 영국과 네덜란드는 2300, 프랑스와 호주는 2000을 곱해서 계산한다. 그런데 한국이 적용한 2100보다는 실험 결과 1913이 더 적합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사실 이 상수는 1555~3000까지 혹은 900~3700까지 그 폭이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상수로 1000이 적합한 사람은 단속에서 2배인 2100이 적용돼 면허 취소 혹은 징역을 살 수도 있고, 3000이 적합한 사람은 과소 판단돼 훈방 조치 될 수도 있다. 즉, 같은 수치가 나오더라도 알코올 마신 양이 다를 수 있고, 뇌에 미치는 영향도 다를 수 있다.”
—소위 ‘윤창호법’ 등 음주운전 처벌은 국회에서도 더 엄벌로 가고 있고 대중이 바라는 쪽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지금과 같은 고민이 대중적인 논의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미국에 ‘음주운전 추방을 위한 어머니 모임’(MADD)이 있다. 음주운전으로 자식을 떠나보낸 어머니들이 모여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미국도 음주운전에 엄벌 방향으로 가게 만든 모임이다. 그분들이 말하는 게 ‘잘못한 사람을 강하게 처벌하는 건 좋지만, 부정확한 수치로 무조건적인 엄벌은 반대한다’고 한다. 막연하게 위험성이 크다는 이유로 자신이 한 일 이상으로 가혹하게 처벌 받는 걸 막자는 거다. 엄벌 주장하시는 분들은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을 생각하라고 하지만, 반대로 그분들이 가해자나 가해자 가족이 되면 억울함을 가지게 된다. 두 가지를 다 고려해서 정확하게 반영해야 한다. 음주뿐만 아니라 사회가 전반적으로 처벌 일변도로 갔을 때 자유가 숨쉬기 어렵고, 식상한 말이지만 창의가 말라가는 결과가 된다.”
—‘정확한 수치로 정확하게 처벌한다’는 게 말은 쉽지만, 사안도 복잡해지고 인력도 더 필요할 수 있지 않나. 직장 동료는 피곤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물론 ‘음주운전 범죄가 너무 잦은데 어떻게 그렇게 하나하나 처리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말을 할 수도 있지만 정확하게 고려하는 자세가 있고, 구체적인 사건을 파악해야 진짜 억울한 사람이 없다. 어떤 때는 수치가 나와 훈방 조치를 해서 ‘봐주는 것 아니야’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럼에도 사법기관은 행정부처럼 일률적으로 어떤 정책을 펴는 조직이 아니다. 특정한 사람을 상대로 얼마만큼 처벌하는 게 정확한 건지 봐야 하는 사람들이다. 주변에서는 더 공부하고 더 면밀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면에서 부담되지만 내 취지에 또 동의한다.”
—한 개인을 처벌하기 위해 고민한다는 모습이 일반적으로 검찰이 가진 ‘악을 강하게 처벌한다’는 이미지와 맞지 않아 보인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빅토르 위고가 쓴 ‘장발장’을 보면 엄벌주의 화신으로 자베르 경감이 나온다. 자베르 경감은 한 명이라도 잘못한 게 있으면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사람이다. 그 자베르가 장발장 정체를 밝히는 건 자기 사명감이다. 그런데 자베르가 장발장을 잡고 보니 사람 목숨도 살려주고 고아를 도와주는 사람이었다. 자베르는 자신이 잘못 살아왔다고 생각해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법도 아주 깊은데 들어가면 자비라는 게 있다. 자비가 없으면 굉장히 가혹해진다. 법을 집행하는 데 있어 그런 정신이 반영돼야 한다. 처벌을 받는 사람도 어떻게 보면 소중한 가족의 한 사람이고 사회적으로 유능한 한 사람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장발장 같은 사람일 수 있다. 단속 편의보다는 처벌을 두고 항시 고민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이 책에는 음주운전과 과속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미국에서 배웠던 게 영향이 있나.
“그런 영향도 없지 않아 있다고 본다. 한국 변호사 시험은 소위 교과서 몇 개를 달달 외워서 나흘 동안 시험을 본다. 미국은 법률적 지식이 엄청나게 쌓여 있었다. 미국 변호사 시험도 외우는 게 있지만, 기본적으로 공부는 질문과 답변으로 이뤄진다. 미국 도서관에서 법학 관련 풍부한 자료량에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미국은 1920년대에 항공모함을 만들었던 것처럼 서양인들은 법률에서도 굉장히 오랫동안 다양한 연구를 축적해 왔고 자료들이 다 쌓여 있었다. 예를 들어 1800년대 썼던 재판, 법률 관련 자료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미국 법학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어떤 법이 사회를 더 좋게 만드는지에 대한 고민이다. 교수는 학생이 그런 고민을 할 수 있게 질문을 끝없이 던진다.”
—혹시 술을 자주 마시나.
“잘 마시지 못해서 거의 마시지 않는다.”
—2022년에는 ‘형벌 조항의 해석방법’, 2024년에는 ‘음주단속, 과속 측정의 허상’을 썼다. 다음 책으로 생각해 둔 게 있나.
“보통 퇴근하고, 혹은 주말을 쪼개 글을 쓴다. 주말에도 책 쓰는 데 매달리면서 아주 힘들었다. 이 책을 쓸 때 너무 힘들어서 당분간은 새 책을 쓸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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