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크아웃에 들어간 팬택. 박병엽 부회장은 재기할 수 있을까. 박 부회장. | ||
올해 몇 차례 팬택의 위기설이 나돌 때마다 채권단에서는 박 부회장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되고는 했다. 팬택의 문제는 박 부회장이 물러나야 해결될 수 있다는 비판론이 그것.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일수록 평가는 엇갈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 빠지자 비판론이 더 득세하는 양상이다.
박 부회장의 최대 오점으로 거론되는 것이 지난해 3000억 원을 들여 SK텔레텍을 인수한 것. 사내 의견은 찬반으로 갈렸다. 반대론자들은 휴대폰이 점점 고마진 사업에서 저마진 사업으로 이행하고 있어 결국은 PC업체와 같은 운명을 걷게 될 것이기 때문에 동종업체를 인수하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대신 시너지 효과가 있는 다른 사업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팬택은 지능형 로봇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대우종합기계 인수전에 뛰어들기도 했지만, 대우종합기계는 두산그룹의 차지가 되었다.
박 부회장을 비롯한 SK텔레텍 인수 찬성론자들은 휴대폰이 향후 모바일 컨버전스의 중심 기기가 될 것이기 때문에 유망한 사업이라는 입장이었다. 사진·동영상 촬영, MP3플레이어, TV시청(DMB), 컴퓨터(PDA), 전화 등의 기능이 한 기기에서 구현될 경우 휴대성이 높은 전화기가 중심이 된다는 것이 이들이 주장한 내용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때가 온다면 이미 유망사업은 전화기 제조보다는 바이오와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유망 사업으로 떠오를 것이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이다라는 반론도 만만찮았다.
박 부회장에 대해 비판적인 인사들은 그의 스타일이 코드경영에서 나온다는 화살도 날리고 있다. 자신과 코드가 맞는 인물을 회사 요직에 앉히다 보니 쓴소리를 잘 듣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는 얘기다. 팬택 내부에서는 팬택씨앤아이(옛 대한할부금융) 출신 인사들이 재무, 총무, 인사 등의 요직을 장악하고 있어 M&A로 합병된 큐리텔, SK텔레텍 출신들과 매끄럽지 못한 관계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박 부회장은 직원들의 신상 하나까지도 직접 챙기는 스타일이다. 정기 인사에서 대리급 직원의 승진이 누락되자 전화를 걸어 이를 고치기도 했다는 일화가 대표적이다. 사내 의견게시판에 올린 직원들의 글에도 자주 댓글을 다는 편이다. 이렇다 보니 우스갯소리지만 현직 대통령의 ‘코드정치’에 빗댄 ‘코드경영’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팬택 측은 “박 부회장이 워낙 소탈한 성격이다 보니 그런 말이 나오는 것 같다. 말이라는 것이 나쁘게 하려면 더한 말도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은 회사 정상화 외에는 힘쓸 겨를이 없다”는 반응이다. 게다가 현대큐리텔과 SK텔레텍 합병 등으로 인한 잦은 구조조정 덕분에 내부의 갈등이 더 키워진 면도 없지 않다.
▲ SK텔레텍의 휴대폰. | ||
일각에서 팬택의 ‘성골’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는 팬택씨앤아이는 팬택계열의 지배구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회사다. 팬택씨앤아이는 팬택앤큐리텔 지분 31.97%를 가진 대주주고 팬택앤큐리텔은 팬택 지분 42.2%를 가진 대주주다. 팬택씨앤아이는 지배구조의 정점에 위치해 역할과 위상이 중요한 곳이다. 그룹의 컨트롤 타워 역할로 짐작해볼 수 있다. 박 부회장은 팬택씨앤아이의 지분 100%와 팬택앤큐리텔 지분 1.8%를 가지고 있다. 박 부회장이 채권단에 팬택과 팬택앤큐리텔 지분 전체를 맡긴다면 팬택씨앤아이의 지분을 위탁해야 할 것이다.
한편 팬택의 위기와 관련해 SK그룹이 팬택계열을 재편입설 등 팬택이 매물로 등장할 경우의 시나리오도 돌고 있어 향후 박 부회장이 채권단에 위임한 회사 지분의 향방이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1991년부터 15년 넘게 이어온 박 부회장의 벤처신화는 버블 붐 붕괴시기를 거치면서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았다는 데서 더욱 주목받았었다. 그가 이 시련을 넘어 90년대가 배출한 유일한 제조업 출신 대기업이 될지, 이대로 좌초될지 주목된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