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여사 문자 파동’ 배신론에 총선 책임론까지 결선투표 가능성 대두…친윤계 투표권 80% ‘당심’에 기대
복수 여론조사를 볼 때 여전히 대세론은 유효하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국민의힘 최대 지지세력이자 당원 밀집지역인 영남권 당원들을 중심으로 ‘한동훈 다시 보기’ 움직임도 감지된다. 정가에선 결선투표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으며, 이 경우 한 후보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동훈 한 명만 때린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앞서가고 있는 한동훈 후보를 향해 나경원 원희룡 윤상현 후보는 물론, 당 안팎 친윤 세력은 집중타를 쏟아내고 있다. 이들의 타격 원점은 한 후보에 맞춰져 있다. 자고 나면 새로운 의혹이 나올 정도로 연일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처음엔 총선 패장 불가, 정치초보 무용론 등이 한 후보를 휘감았다. 친윤계는 선거에 졌다가 다시 나와 당권을 거머쥐었지만 결국 대선 재수에 실패했던 이회창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총재를 소환했다. 정치초보 무용론은 멀리 볼 것도 없었다. 불과 3년 전인 2021년 6월 전당대회에서 30대 당대표로 선출됐다가 아름답지 못한 모습으로 당과 헤어졌던 이준석 의원이 거론됐다.
그 다음은 배신자론이었다. 과거 박근혜 대통령 시절 유승민 전 의원 이름이 호명됐다. 한 후보가 당 대표가 되면 윤석열 대통령 국정운영 발목을 잡을 것이란 게 친윤계의 논리였다. 한 후보가 출마 선언 기자회견에서 야당이 추진하는 ‘채 해병 특검법’을 뜯어말리기는커녕 여당의 독자적 특검법을 만들어 민심을 받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자 배신자론은 더욱 봇물을 이뤘다.
김건희 여사가 한 후보에게 보냈던 ‘문자 논란’이 불거진 후 한 후보의 총선 패배 책임론은 다시 부각되기 시작했다. “한 후보가 읽씹을 하지 않고 당연히 그때 김 여사와 소통을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 총선 실패의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취지의 공격을 나경원 원희룡 윤상현 후보가 지속적으로 폈다.
심지어 원희룡 후보는 이를 두고 한 후보의 총선 고의 패배론까지 제기했다. 그는 7월 10일 부산에서 열린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 두 번째 권역별 합동 연설회 정견발표가 끝난 뒤 기자들을 만나 강한 발언을 쏟아냈다.
원 후보는 김 여사가 명품백 수수 논란에 대국민 사과 의사가 있었지만 주변 만류로 사과하지 못했다는 주장과 관련해 “주변이 다 반대한다 한들, 영부인이 집권 여당 책임자에게 그런 얘기를 했다면 대통령도 설득할 수 있는 최후의 희망이 있었다”면서 “없는 것도 만들어야 될, 그런 총선 승리에 절박한 상황에서 (한 후보가 답변을 하지 않은 게) 혹시 총선을 고의로 패배로 이끌려고 한 게 아닌지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나경원 후보는 7월 11일 채널A 유튜브 방송 ‘정치시그널’에 출연, 한 후보가 김건희 여사 문자 무시 논란에 당무 개입과 국정 농단 등의 표현을 동원해 반박한 점을 거론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을 형사 기소한 사람이 한동훈 당시 특검 검사였다. 그때 우리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당무 개입, 국정 농단이란 표현이 나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 것이 다 탄핵으로 연결된다. 한 후보 입으로 (탄핵의) 밑밥을 깔아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 후보는 또 “한 후보가 본인 살자고, 정권 자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 아니냐”며 “이재명 전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탄핵을 막기는커녕, 우리를 분열시켜 대통령 탄핵이 이뤄지는 것을 방조하는 것 아닌가”라고 우려했다. 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청원 청문회를 추진하는 상황과 연결 지어 보수 진영 ‘탄핵 트라우마’를 자극, 배신자 프레임을 확실하게 만들려는 의도로 보인다.
전당대회 후보들뿐 아니다. 친윤 세력의 한 후보를 향한 십자포화도 강화되고 있다. 권영세 의원은 7월 11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나가 “문자를 보면 분명히 김 여사 본인이 사과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며 한 후보가 이를 활용하지 않은 것이 총선 패배의 원인 중 하나였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정책 전당대회가 가장 바람직하지만 네거티브가 가장 솔깃하게 다가오기 때문에 계속 때리면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고 집중적으로 맞는 후보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며 “한동훈 후보를 향해 너무 많은 매가 날아들어 한 후보도 적잖은 내상을 입었다”고 분석했다.
#한동훈 대세론, 아직은 공고
국민의힘은 7월 8일 광주·전북·전남·제주를 시작으로 다섯 차례 합동연설회를 연다. 7월 17일 서울·인천·경기·강원이 마지막이다. 7월 10일과 12일엔 최대 표밭인 영남권에서 합동토론회가 열렸다. 합동토론회 현장 분위기를 목격한 당원들은 한목소리로 “대세론은 실체가 있다”고 전했다. 4명의 당 대표 후보들 중 한 후보 인기가 단연 압도적인 모습이었다. 친윤계가 띄우고 있는 ‘한동훈 배신자’ 프레임이 통하지 않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현장뿐 아니라 복수의 여론조사에서도 한동훈 후보 지지율은 흔들리지 않은 채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한동훈 대세론이 가지만 갖고 있는 게 아니라 뿌리까지 뻗치고 있다는 분석으로 이어진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좀처럼 상승세를 타지 못하는 것도 한 후보 독주를 무너뜨리지 못하는 요인 중 하나다.
한 후보에게 씌어진 총선 패배 책임, 배신자론은 윤 대통령을 주어로 해서 만들어진 프레임이다. 이 논리가 한 후보 대세론을 꺾지 못하는 것은 복수의 여론조사 결과가 보여주듯 결국 윤 대통령 지지세가 보수 진영에서 약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논리보단, 한 후보를 중심으로 하는 정권 재창출론이 힘을 받고 있다는 의미다.
한 후보 지지자들은 총선 패배에 대해서는 용산이 잘못한 탓으로 보고, 배신자론에 대해서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윤 대통령은 다르다”는 답을 내놓는다. 국민의힘 당원들이 20% 넘게 몰려있는 대구·경북(TK)의 한 국회의원은 지역구와 합동연설회 현장 등을 바탕으로 이렇게 말했다.
“지역구를 다녀보면 한동훈 후보에 대한 지지세가 상당히 강한 것을 느낄 수 있다. TK에서는 TK 출신이 아닌 윤 대통령 지지세가 박근혜 전 대통령과는 확연히 다르다. 한동훈 후보가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외치면 의외로 이것이 먹히고 있다. 때문에 배신자론의 파괴력이 약하다. 김건희 여사를 너그럽게 보는 시선도 적어 한동훈 후보가 여전히 강한 지지세를 보이고 있다.”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 분위기가 여전히 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주식시장에서는 한동훈 테마주까지 나타나는 웃지 못 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 한 후보와의 인연을 묶어 한동훈 테마주로 분류된 종목들은 7월 10일 일제히 상한가를 쳤다.
#열 번 찍으면 결선투표?
그동안 정치권에서 대세론이 끝까지 이어진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인제 안철수 이회창 반기문 등 수많은 정치인들이 대세론을 등에 업고 주요 선거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신 바 있다. 한 후보 대세론에 의문부호를 다는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다.
더군다나 한 후보는 자신을 향한 전방위적 공세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고, 앞으로 그 수위는 더욱 세질 전망이다. 7월 11일 국민의힘 총선백서특별위원회는 총선 패인을 규명하는 백서에 한 후보가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의혹 사과의향 문자를 무시했다는 논란을 추가하기로 했다. 한 후보의 총선 패배 책임론이 당내에서 더욱 강화하는 모양새다.
조정훈 특위 위원장은 이날 당사에서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기존의 백서 초안 내용을 일부 수정해 최종 의결했다며 “최근에 알려진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김건희 여사 문자 내용을 추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조 위원장은 “기존에 특위가 출범하면서 밝혔던 6말7초 (계획과 다르게) 전당대회와 전 비대위원장 출마라는 새로운 환경이 생겼다”고 말했다.
특위는 7월 15일 비대위에 정식 상정을 요청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특위 회의에서는 김 여사 문자 논란 내용을 추가하는 문제를 두고 친윤계와 한 후보 측 간 고성과 격론이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한 후보에게 불리한 사안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친윤계는 당원들이 투표권 80%를 갖는 당심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당무 고관여층이자 투표 참여율도 높은 당원들이 1차투표에서 한 후보를 과반 이하로 무너뜨릴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 후 결선투표만 만들어내면 다자구도에서 전략적 연합을 통해 한 후보를 꺾을 수 있다는 게 친윤계의 계산이다.
7월 11일 매일신문 유튜브 ‘이동재의 뉴스캐비닛’에 나온 김재원 국민의힘 전당대회 최고위원 후보는 “어쨌든 결선투표는 갈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했다. 그는 “이제 국민들께서도 상당히 좀 이 사안을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또 당원 선거인단의 생각도 관심을 많이 갖고 바라보기 때문에 아무래도 후보별로 지지가 분산되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며 “한동훈 후보가 인기가 있지만 50% 이상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있다”고 했다. 쏟아지는 공격 속에 과반 득표력까지는 얻기 어려워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보수 논객 전원책 변호사도 7월 9일 YTN라디오 ‘이슈&피플’에 출연,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결선투표로 갈 가능성이 80%가 넘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자 메시지 파동으로 결선투표로 갈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졌다. 왜냐하면 친윤들이 또 똘똘 뭉칠 것이기 때문”이라며 “한동훈이 결국 우리를 배신했구나 하는 배신자 프레임이 무섭다. 유승민 전 의원이 지역구로 나가지 못하는 이유도 결국은 배신자 프레임 때문”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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