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지역의 경우 부산-대선의 시원(C1)소주, 경남-무학의 화이트소주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이번 저도주를 통해 양측은 서로의 영역을 넘보며 본격적인 경쟁을 하고 있다.
첫 번째 논란은 원조논쟁. 무학과 대선은 11월 8일 동시에 16.9도 소주를 출시했다. 먼저 발끈한 쪽은 무학. 무학은 “1년 6개월 동안 준비하고 출시에 앞서 4일간 거리에서 블라인드 시음회를 계획했다. 시음회 첫날인 11월 7일 이를 본 대선이 보도자료를 급조해 다음날 신제품 출시를 발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무학도 어쩔 수 없이 같은 날 신제품 출시를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무학은 “지역 내 1∼2개밖에 되지 않는 왕관(병뚜껑) 제조업체에 문의해본 결과 당시 대선은 왕관 샘플을 의뢰하던 단계였다. 대선이 출시자료를 급조했음이 분명하다. 보도자료에도 출시일자와 가격조차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학이 11월 14일 제품을 출시한 상황에서 기자들이 대선은 언제 제품이 나오는지를 질의하자 ‘18일 출시된다’고 했다가 다시 18일이 되자 ‘21일 출시된다’고 말을 바꾼 것을 보면 충분한 준비가 없이 시장방어 차원에서 급히 준비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 무학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대선은 “소주가 그렇게 급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연구소에서 항상 3∼4년을 내다보고 신제품을 연구하고 있다. 소주 업계의 저도주 흐름을 따라 우리도 16.9도 소주를 준비하던 차에 우연히 출시일이 겹친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출시 자료를 내자 무학이 부랴부랴 같은 날 자료를 낸 것이 아닌가. 출시일이 늦어진 것은 출고가와 시장전망을 두고 논의하느라 그런 것이지 준비가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라며 반박하고 있다.
두 번째 논란은 무학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한 대선의 불공정거래 행위 여부다. 무학은 신제품인 ‘좋은데이’ 출시를 계기로 부산상권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아예 부산지사에 ‘좋은데이’의 마케팅, 영업, 홍부부서를 옮겨 놓은 상태로 최재호 회장도 부산에 상근하고 있을 정도다.
무학은 “11월 14일 제품을 냈지만 부산에서는 판매가 되지 않았다. 우리가 알아본 바로는 대선이 무학 제품을 받을 경우 물량을 줄이거나 납품을 끊겠다고 하는 바람에 도매상이 무학 제품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도매상들은 ‘대선이 18일 출시한다고 하니 그때 물건을 받겠다’고 했다가 대선의 ‘씨유’ 출시가 늦어지자 다시 21일로 연기하는 등 결국 ‘좋은데이’를 12월 1일에야 납품할 수 있었다”며 흥분했다. 무학은 11월 21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대선이 불공정거래 행위를 했다고 제소했다.
이에 대해 대선은 “예전처럼 제조사가 전권을 휘두르던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제조사들이 오히려 도매상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다. 제조사가 도매상에게 납품을 미끼로 횡포를 부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부산종합주류도매협회에서도 ‘좋은데이’의 납품 거부를 강요한 적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확인했다”며 의혹을 일축했다.
세 번째 논란은 보복성 논란. 2002년 무학이 대선을 인수하려 하다 롯데그룹에 뺏긴 뒤 대선의 임직원을 상대로 3년 넘게 법정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대선은 롯데 신격호 회장의 막내동생인 신준호 롯데햄우유 부회장이 67.3%의 지분을 확보해 롯데 계열사로 편입된 상태. 롯데그룹의 본거지는 부산이다. 거기다 대선이 경남지역에서 점유율을 높여가자 무학이 반격을 시작했다는 것이 이 논란의 내용이다.
두 업체는 자신들의 다툼이 보복성이라기보다는 시장확대를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무학은 “16.9도의 저도주는 술을 잘 못 마시는 여성,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틈새 상품이다. 때문에 대학가나 시내 중심가를 위주로 판촉을 시작해야 하다 보니 부산으로의 진출이 불가피하다. ‘좋은데이’는 부산뿐 아니라 전국 상권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부산은 일종의 테스트마켓이 될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대선을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부산지역을 염두에 두고 저도주를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대선은 “제조업체라면 어디나 시장을 넓히는 것이 관건이고, 인접한 시장으로 확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대선이 경남으로 시장을 확대하는 것은 생존의 문제”라는 입장이다. 김해와 양산이 부산 생활권으로 편입되면서 대선의 경남 점유율이 높아진 부분도 있다.
이런 논란 외에도 무학은 “16.9도 소주를 출시한 것은 TV광고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선이 광고모델로 탤런트 한효주를 11월 말에야 겨우 섭외한 것을 보면 신제품을 급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꼬집고 있다. 현재 주류는 17도 이하만 TV광고가 허용된다. 이에 대해 대선은 “무학의 모델인 탤런트 정준호나 가수 채연이 20대 초반에 콘셉트를 맞춘 저도주와 잘 어울리는지 모르겠다”며 맞서고 있다.
한편 올해 소주시장의 이슈메이커였던 진로와 두산도 16.9도 소주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상태. 부산·경남에서 시작된 저도주가 상승세를 탄다면 곧장 신제품을 출시할 태세를 갖춘다는 얘기다. 16.9도 소주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지, 전국을 강타하는 태풍이 될지 모든 소주 업체가 부산·경남지역을 지켜보고 있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