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구 사장(왼쪽), 심재혁 사장 | ||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둘째 동생인 구정회 씨 집안에서 일군의 기업군이 탄생하고 있는 것.
구정회 씨의 셋째 아들인 고 구자헌 씨의 아들 구본호 씨가 중심이 돼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디어솔루션 인수 등 외형 확장에 나서고 있다. 구자헌 씨는 지난 99년 사망했다.
구본호 씨는 이미 1조 원대 매출을 올리는 기업의 오너이기도 하다. LG그룹의 물량을 주로 처리하는 물류회사인 범한판토스(옛 범한종합물류)는 구 씨의 어머니인 조금숙 씨가 53.86%의 지분을 갖고 있고 나머지는 구 씨가 갖고 있어 이들 모자가 지배하고 있는 회사다. 범한판토스는 ‘레드캡’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범한여행의 지분을 100% 갖고 있다. 범한여행은 자본금 13억 3000만 원에 한 해 순이익 50억 원이 넘는 알토란 같은 회사. 지난 1977년 설립된 범한판토스는 LG그룹의 물류부문을 전담하면서 급성장한 회사로 지난해 매출 1조 원을 넘어섰고 오는 2010년까지는 매출 4조 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자본금 50억 원이지만 순이익만 200억 원에 달하는 회사다. 증권가에서는 이 두 회사의 현금 동원력을 밑천으로 최근 구본호 씨가 코스닥 업체를 쇼핑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쇼핑’은 지난해 7월 범한종합물류가 회사 이름을 범한판토스로 바꾸면서 시작됐다.
구본호 씨는 지난해 9월부터 실탄 발사에 들어갔다.
9월 말 그는 코스닥 등록업체인 미디어솔루션의 증자에 참여, 70억 원을 현금으로 쏘면서 2대 주주에 올라섰고 이어 신주 인수권부사채(BW) 180만 주를 151억 200만 원에 인수해 1대 주주가 됐다.
그리고 10월 중순 그는 깜짝쇼를 벌였다. 미디어솔루션의 BW 90만 주를 홍콩계의 카인드익스프레스라는 회사에 405억 원에 팔았다. 10여 일 만에 미디어솔루션 투자만을 통해 300억 원 이상의 차익을 거둔 것. 이 때문에 증권가 일각에선 이 거래가 재벌가 3세와 역외펀드가 짜고친 ‘재료 띄우기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에 대해 범한 쪽에선 ‘차익을 보기 위한 거래가 아니다’라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구본호 씨는 이 거래를 통해 얻은 차익으로 유상증자 참여에 필요한 자금과 이후 기업인수합병에 필요한 ‘이력서 있는 돈’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미디어솔루션에 대한 그의 투자 소식이 알려지자 미디어솔루션의 주가는 7000~8000원대에서 3만 원대 이상으로 올랐다. 하지만 카인드익스프레스의 매입금액은 주당 4만 5000원꼴.
카인드익스프레스가 미디어솔루션의 전망을 좋게 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구본호 씨는 미디어솔루션과 그의 사업기반인 범한여행의 합병을 추진 중이다. 여기에 미디어솔루션을 통해 창업투자회사 인수나 설립을 고려하는 등 금융업에도 진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는 미디어솔루션 인수에 이어 구본호 씨는 연초에 액티패스라는 무선 및 방송통신기기 제조회사를 인수했다. 이번엔 미디어솔루션과 그가 공동으로 나섰다. 그가 85억 원, 미디어솔루션이 93억 원을 투자해 회사를 인수했다.
불과 반 년도 안되어 오너 일가의 모기업에 의존하던 두 개의 회사만 갖고 있던 조금숙-구본호 모자가 물류-금융-소프트웨어-무선통신기기제조로 이어지는 일련의 기업군을 거느린 오너로 변신한 것이다.
구본호 씨 일가의 변신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LG 오너 일가의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범한판토스나 범한여행, 범한렌트카 등 기존 조금숙-구본호 모자의 기업군은 LG그룹의 물량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사업들이다. 또 이들의 모기업이라 할 수 있는 범한판토스의 대표이사인 여성구 사장 역시 LG에서 투입된 인물이다.
여 사장은 LG그룹 재무통 사관학교로 불리는 LG화학 자금부 출신으로 지난 2001년 LG투자증권 부사장을 끝으로 범한판토스로 몸을 옮겼다. 이후 그는 범한판토스와 범한여행의 사장을 맡아오다 올해 초 범한여행의 사장직에서는 물러나고 범한판토스 경영만 책임지고 있다.
이유는 범한여행에 새로운 ‘인재’가 영입됐기 때문이다.
LG그룹 회장실 출신으로 홍보담당 전무를 건쳐 한무개발 사장을 지낸 심재혁 사장이 올 1월 1일자로 범한여행에 영입됐다. 서울 삼성동의 인터컨티넨탈호텔을 운영하는 한무개발은 LG그룹과 GS그룹이 분리한 이후 GS그룹 몫으로 넘어갔다. LG 회장실 출신인 심 사장으로선 ‘친정’으로 귀향한 셈이다.
재미있는 점은 김대중 정부 시절 LG투자증권 사장으로, 금융계 실세로 군림했던 오호수 전 증권업협회장도 미디어솔루션과 범한여행의 합병 법인인 레드캡투어의 사외이사로 내정됐다는 것이다. LG 쪽에선 오 전 회장이 LG투자증권 사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LG화학 사외이사로 임명하는 등 최근까지도 꾸준히 챙겨왔다.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 최근까지도 구설수에 올랐던 오 전 회장으로선 금융업 진출을 시도하는 레드캡투어의 사외이사 선임이 재기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이에서 보듯 ‘LG 구씨’라는 사람과 자본의 은하계가 LG가의 3세 구본호 씨를 중심으로 새로운 별을 탄생시킨 셈이다. 구본호 씨를 중심으로 짠 일군의 기업군이 재계의 새로운 성단으로 커나갈지 주목된다.
김진령 기자 kj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