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산 주기 늘려 현금 확보했지만 법 개정되면 전략 수정 불가피…컬리 “현금 벌 수 있는 구조로 개선”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 이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이 8월 한 달 새 9건이나 발의됐다. 9건 모두 이커머스 업체들의 정산 주기를 정하고, 판매 대금을 유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컬리는 올해 초부터 판매 대금 정산 주기를 늦춰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컬리의 올해 1분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495억 원이었던 매입 채무가 올해 1분기 2187억 원으로 급증했다. 매입 채무는 2분기에도 2265억 원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말과 비교했을 때 51.53%나 늘어났다.
매입 채무는 기업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외상으로 구입한 후 공급자에게 아직 지급하지 않은 금액이다. 유통업계에서는 매입 채무를 오래전부터 회사 운영자금으로 활용해왔다. 소비자에게 상품을 판매하고 받은 판매 대금을 납품 업체에 전달하지 않고 매입 채무로 묶어둠으로써 회사가 재량껏 사용할 수 있는 현금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반대로 공급자들의 현금 체력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타격을 입을 기업 중 하나로 컬리를 꼽는다. 9개 법안에서 제안된 정산 주기는 최소 3일에서 20일이다. 이는 대규모유통업법에 따른 대기업 유통사의 정산 주기인 40~60일보다 짧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컬리는 대규모유통업법에 맞춰 정산 주기를 최대 60일까지 늦췄다. 법 시행 시 컬리는 다시 매입 채무만큼 공급자에게 돌려줘야 한다. 올해 상반기 기준 컬리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720억 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상반기 매입 채무보다 적은 액수다. 회사 운영을 위한 자금도 필요하므로 현재 컬리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충분한지 의문이다.
차선책이 마땅치 않아 보인다는 것이 더 문제다. 컬리는 2014년 설립된 이후 지난해까지 계속 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영업활동으로 현금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결손금만 올해 상반기 기준 2조 2777억 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기준 2조 2616억 원에서 늘었다.
컬리는 영업활동에서 적자가 나면서 발생한 손실도 있지만 외부 투자 유치 과정에서 생긴 상환전환우선주(RCPS)가 결손금에 포함되면서 전체 결손금이 늘었다고 주장한다. 컬리에 따르면 영업활동으로 인한 적자는 1조 원 수준이다. 컬리는 올해 상반기 조정 상각전영업이익(EBITDA) 78억 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했다. EBITDA는 기업이 영업활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현금 창출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하지만 같은 기간 쌓인 결손금이 EBITDA보다 더 많기에 영업활동만으로 현금을 확보하거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에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만년 적자를 이유로 컬리에 돈을 내어줄 투자자를 찾기도 쉽지 않다. 컬리는 2015년 시리즈A부터 2021년 프리 IPO(기업공개)까지 6년 동안 일곱 차례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누적 투자유치 금액은 약 9000억 원에 달했다. 프리 IPO 이후에는 컬리의 기업가치가 4조 원까지 상승했다.
이후 컬리가 수익성 개선에 실패하면서 기업 가치는 하락했다. 컬리는 2023년 한 차례 더 투자를 유치했는데 당시 투자자인 앵커PE(MKG ASIA LTD)와 약속한 2023년 흑자 전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서 유상증자된 주식의 전환 비율이 1 대 1에서 1 대 1.8462343으로 리픽싱(조정)돼 기업 가치는 더 떨어졌다. 국내 장외주식 거래 플랫폼 ‘증권플러스 비상장’이 추정한 컬리의 현재 시가총액은 4730억 원으로 프리 IPO 대비 10% 수준이다.
컬리 관계자는 “티메프 등 오픈마켓과 다르게 컬리는 직매입이 95%기 때문에 구매를 하면 정산을 무조건 해줘야 한다. 대규모유통업법을 잘 준수하고 있다. 나머지 5% 판매자 배송에 대해서는 정산 주기가 60일보다 훨씬 짧아 대응 가능하다”며 “현금 및 현금성 자산뿐 아니라 재고, 예금 자산까지 모두 포함하면 매입 채무 상환 능력은 상반기 말 기준 129%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대규모 물류센터 건설 등 큰돈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추가 투자 유치 계획은 없다. 상장 역시 시장 상황에 맞춰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을 때 재추진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공시 기준으로 지난해 12월부터 6월까지 EBITDA는 흑자를 기록 중이다. 현금을 벌어들일 수 있는 구조로 사업이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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