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미상영 작품을 영화로 볼 것인지 화두 재점화…“OTT 콘텐츠 배제는 시대적 흐름 역행” 주장도
외형만 놓고 보자면 ‘전, 란’은 한국을 대표하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개막작으로 손색이 없다. 일단 거장으로 불리는 박찬욱 감독이 제작했을 뿐만 아니라 각본에도 참여했다. 메가폰은 영화 ‘심야의 FM’으로 유명한 김상만 감독이 잡았다. 출연 배우의 면면을 봐도 강동원, 박정민, 차승원 등 그동안 충무로를 이끌어왔던 이들이 즐비하다. 러닝 타임도 2시간 안팎으로 완벽한 영화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럼에도 ‘전, 란’이 논쟁의 중심에 선 이유는 당초 넷플릭스 작품으로 소개됐기 때문이다. 즉, 극장 상영이 아닌 온라인 콘텐츠로 공개되는 것을 염두에 뒀다는 뜻이다. 극장에 상영되지 않는 작품을 영화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고민은 이미 7년 전 시작됐다. 공교롭게 그 화두를 던진 이도 한국 감독, ‘영화 국가대표’라 불릴 만한 봉준호 감독이었다.
영화 ‘살인의 추억’, ‘괴물’ 등을 통해 이미 거장으로 칭송받던 봉 감독은 영화 ‘옥자’를 들고 2017년 열린 제70회 칸국제영화제를 노크했다. 문제는 ‘옥자’가 넷플릭스 제작 영화였다는 점이다. 지금 부산국제영화제가 겪는 충격을 칸국제영화제는 이미 7년 전에 받은 셈이다. 이는 영화의 본고장인 프랑스를 비롯해 글로벌 영화 산업 전반에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영화’라는 이름을 붙이기 위해 ‘극장 상영’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이는 오랫동안 암묵적으로 유지되던 관행이었기 때문에 ‘옥자’를 둘러싼 논쟁은 거셌고, 이 때문에 ‘옥자’는 봉 감독의 작품 임에도 국내 상영관을 잡을 때 주요 영화투자사이기도 한 멀티플렉스로부터 외면받았다.
하지만 명분보다 실리를 따지는 충무로 관계자들은 “이미 역학 관계가 바뀌었다”고 입을 모은다. ‘옥자’ 논란이 불거지던 2017년만 해도 영화 산업은 탄탄한 입지를 자랑했다. 충무로도 황금기를 열며 2019년 역대 최다 관객, 최대 매출을 기록하는 등 승승장구 중이었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 전 세계는 팬데믹 시대로 접어들었고, 한국에서는 집합금지명령이 떨어졌다. 이런 명령이 없더라도 감염에 대한 우려 때문에 극장과 같이 불특정 다수가 밀집하는 공간을 피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그 공백을 메운 건 OTT였다. 이는 스마트폰 시대와도 맞물린다. 모든 대중이 ‘손 안의 극장’을 갖게 된 셈이다. 영화 한 편 볼 수 있는 가격으로, OTT 콘텐츠를 한 달간 마음껏 구독하며 누릴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장점이었다.
이 시기, 몇몇 영화 제작사는 넷플릭스에 기댔다. 영화 ‘승리호’, 사냥의 시간’, ‘콜’ 등 당초 극장 상영을 목표로 제작됐던 영화들이 줄줄이 넷플릭스에서 공개됐다. 팬데믹 종식을 점치기 힘든 상황 속에서 ‘창고 영화’로 묵힐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팬데믹을 정면 돌파하겠다며 개봉을 택한 몇몇 영화들이 흥행에서 참패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OTT행을 택하는 영화가 늘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극장 상영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OTT 콘텐츠를 영화로 인식하고 인정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넷플릭스 ‘로마’는 2018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품었고, 2019년 91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 등 여러 부문 후보에 올라 감독상, 촬영상, 외국어영화상 등을 수상했다. 또한 애플TV플러스의 ‘코다’는 2022년 제9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3관왕에 올랐다. 온라인상에서 공개된 뒤 극장에 걸리는 수순을 밟았다. 이외에도 애플TV플러스 ‘맥베스의 비극’, 넷플릭스 ‘파워 오브 도그’, ‘돈 룩 업’ 등도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로 지명됐다.
충무로에는 “내년부터 더 문제”라는 말이 나온다. 올해까지는 이미 제작을 마쳤으나 팬데믹 기간 중 개봉을 미뤘던 영화들이 순차적으로 공개됐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시름하던 기간 영화 투자가 크게 위축되면서 신규 작품 편수가 크게 줄었다. 이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 추세다. 각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는 ‘월드 프리미어’ 영화를 수급하기조차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OTT 콘텐츠라는 이유로 배제하는 것은 시대적 흐름을 역행하는 것이란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미 2021년부터 OTT 콘텐츠를 중점적으로 소개하는 ‘온 스크린’ 섹션을 운영하고 있다. 매년 편수가 늘었고, 지난해에는 디즈니 플러스의 ‘비질란테’, 웨이브의 ‘거래’, 티빙의 ‘러닝메이트’, ‘운수 오진 날’, ‘LTNS’ 등 5개의 한국 작품이 해당 섹션에서 상영됐다. ‘한국영화의 오늘-스페셜 프리미어’ 부문에 초청된 3편 중 ‘독전2’와 ‘발레리나’도 넷플릭스 영화였다.
박도신 직무대행은 “넷플릭스 작품이기 때문에 개막작에서 제외할까 고민한 적은 없다”면서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여전히 의견은 분분하지만 넷플릭스를 포함해 OTT 콘텐츠가 영화 시장의 맹주로 자리 잡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셈이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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