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리언:로물루스’ 이언 홈 부활에 “디지털 강령술” 비판…국내에선 송해·터틀맨 등장 두고 긍정 반응 많아
1979년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이리언’으로 시작된 이 시리즈의 역사는 어느덧 45년이다. 그만큼 골수팬도 많다. ‘에이리언:로물루스’는 기존 시리즈를 기억하는 이들을 만족시키는 동시에 처음 이 시리즈를 대하는 이들의 입문서로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논란은 엉뚱한 곳에서 불거졌다. 인공지능(AI) 기술이 문제였다. 최근 국내에서 AI를 활용한 딥페이크 음란물이 기승을 부리며 도마에 오른 것과 다른 논란이다. 영화 속에서 4년 전 세상을 떠난 배우를 AI 기술로 부활시킨 것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에이리언: 로물루스’에는 2020년 고인이 된 배우 이언 홈을 닮은 인조인간 캐릭터 루크가 등장한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빌보 역으로 잘 알려진 영국 배우다. 그가 이 작품에 등장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언 홈은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한 원조 ‘에이리언’에서도 인조인간 애쉬 역을 맡았다. 이 작품을 기억하는 영화팬 입장에서는 반가운 등장일 수 있다. 하지만 부정적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디지털 강령술’이라는 뼈아픈 일침이 이어졌다.
‘에이리언:로물루스’ 제작진은 다른 배우에게 루크를 연기하게 한 후 생성형 AI를 활용해 이언 홈의 얼굴과 목소리를 이 캐릭터에 입혔다. 이를 두고 영국 BBC는 “이런 시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해당 캐릭터의 출연 분량이 필요 이상으로 많고 클로즈업을 반복해 인공적인 이미지를 지나치게 부각한 것은 제작진의 실수”라고 지적했다.
온라인 매체 슬레이트의 비평가 샘 애덤스는 “이 시리즈에서 단 하나의 변함없는 존재는 인간 생명 존중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거대 대기업의 영향력”이라고 꼬집었다. 여기서 지적한 ‘거대 대기업’은 이 영화를 제작한 디즈니 산하 스튜디오를 뜻한다. 결국 스튜디오와 제작진의 욕심으로 적절치 못한 시도를 했다는 지적이다.
제작진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미 이언 홈의 유족인 아내 소피 드 스템펠과 모든 협의를 마쳤으며, 유족 역시 이런 시도를 반겼다는 설명이다. 연출을 맡은 알바레즈 감독은 미국 LA타임스 인터뷰에서 “‘에이리언’ 시리즈 역사에서 이언 홈의 위치를 기리자는 진정한 열망으로 내린 결정이며 그에 대한 큰 존경심을 갖고 모든 작업에 임했다”고 해명했다. 또 ‘에이리언’ 시리즈에 여러 인조인간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이언 홈을 선택한 것은 “그동안 재등장하지 않은 배우 중 유일하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머지않은 미래에 AI 배우들이 실제 배우들의 일자리를 뺏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란 목소리가 제기됐다. 이미 세상을 떠난 배우뿐 아니라 나이 든 배우들의 젊은 모습을 구현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디에이징(de-aging) 기술을 활용해 배우 톰 행크스,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등의 젊은 시절 모습을 담은 작품이 제작됐고, 70년 전 사망한 제임스 딘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백 투 에덴’ 제작도 진행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할리우드 배우 및 작가 조합이 대규모 파업에 나서며 대형 스튜디오에 “AI로 인해 일자리가 위협받지 않게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드라마나 영화를 제작하며 AI 기술을 활용한 사례는 국내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살인자ㅇ난감’에는 주인공 장난감 역을 맡은 배우 손석구의 어린 시절 장면이 나오는데, 아역 배우의 얼굴이 놀라울 정도로 손석구와 닮아 화제를 모았다. 이는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해 실제 연기한 아역 배우의 얼굴에 손석구의 얼굴을 덧입혀 탄생한 장면이다.
또 지난해 방송된 JTBC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에는 2022년 별세한 방송인 송해가 등장했다. 극 중 KBS 1TV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한 주인공이 ‘단발머리’를 불렀는데, 진행자인 송해의 모습이 딥페이크 기술로 구현됐다.
여기서 업계와 대중은 윤리와 가치관의 문제에 부딪힌다. 이언 홈의 부활이 질타를 받은 것과 달리 국내 사례는 높은 기술력과 새로운 시도에 대한 긍정적 반응이 줄을 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세상을 떠난 가수 김광석, 혼성그룹 거북이의 보컬 터틀맨의 모습이나 목소리를 AI로 재현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추모’의 관점으로 봤을 때 이런 시도가 유족이나 그들을 기억하는 팬들에게 반가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상업적 이익을 이유로 고인이 된 이들을 AI로 되살리려 한다면 대단한 반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결국은 ‘진정성’이 관건이라 할 수 있다. ‘왜’ 그런 시도를 했는지 명분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언 홈의 사례도 영화 개봉 전에 미리 관련 내용을 공개하며 유족과 모든 협의를 마쳤다고 밝혔다면 언론과 여론의 온도는 달라질 수 있었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AI 기술 활용은 시대의 흐름이며 역행할 순 없다. 발전하는 AI 기술로 더 정교하게 구현된 캐릭터가 등장할 것이다.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 ‘적정선’에 대한 고민이 시대의 과제가 됐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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