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학교 여학생은 물론 여교사까지 피해자로 만들어…가해자들 벌써 ‘흔적 지우기’ 돌입
특히 IT 기술 발달에 민감한 10대 미성년자들 사이에서 딥페이크 범죄가 유행하고 있다. 얼굴 사진만 있으면 딥페이크 기술로 음란물을 만들 수 있어 가해자들은 같은 학교 여학생이나 옆 학교 여학생, 심지어 여교사까지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 학창 시절 장난 정도로 여기기에는 너무 심각하고 무서운 범죄다.
일요신문에선 2024년 2월 ‘[단독] “친구 소개하면 무료로…” 지인 합성 다단계식 딥페이크 업체 활개’라는 기사를 보도한 바 있다. 특정인 사진을 전송하면 나체로 만들어 주는 딥페이크 사이트가 X(옛 트위터), 텔레그램 등을 타고 빠르게 퍼지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게다가 상당수 업체가 다단계식 운영을 통해 몸집을 불리고 있었다. 온라인에 홍보 링크를 올려 가입자를 유치하는 사용자에게 딥페이크 이용 포인트를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주머니사정이 여유롭지 못한 청소년들이 포인트를 받기 위해 홍보책을 자처하는 동시에 불법합성물까지 유포하고 있었다.
당시 일요신문은 다수의 딥페이크 업체들을 취재했는데 A 업체의 경우 초대 링크를 통해 입장하면 처음 한 번은 무료로 딥페이크 이용이 가능했다. 이후 사진은 1크레딧(1.99달러·약 2650원), 동영상은 5크레딧(9.95달러·약 1만 3260원)을 결제해야 한다. 그런데 누군가를 초대하면 0.3크레딧을 제공하고, 초대한 사람이 충전하면 그때마다 30%의 커미션을 제공했다.
딥페이크 업체들에 접속하면 ‘19세 이상만 이용 가능하다’는 문구가 뜬다. 그렇지만 별다른 인증 절차 없이 ‘19세 이상이 맞다’는 버튼만 누르면 이용이 가능했다.
그리고 5월에 ‘서울대 졸업생 딥페이크 사건’이 알려져 세간에 큰 충격을 줬다. 2021년 7월부터 2024년 4월까지 약 3년 동안 딥페이크 등의 합성 기술을 이용해 서울대 동문 12명을 대상으로 성착취물을 제작해 텔레그램에 유포한 혐의로 서울대학교 졸업생 2명이 구속된 사건(관련 기사 “아내 팬티 줄게” 미끼에…경찰도 포기한 ‘서울대생 딥페이크’ 어떻게 잡았나)이다 .
최근 딥페이크 성범죄가 더 화제가 된 이유는 대학을 넘어 고등학교와 중학교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딥페이크 범죄 발생 건수는 2021년 156건, 2022년 160건, 2023년 180건에서 2024년에는 7월까지 297건이나 될 정도로 급증하고 있다. 더욱 충격적인 부분은 같은 기간 10대 피의자 비율이 65.4%에서 73.6%로 늘었다는 부분이다. 딥페이크 범죄가 10대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다 보니 피해자도 미성년자가 많다.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2024년 1월 1일부터 8월 25일까지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딥페이크 피해 지원을 요청한 781명 가운데 288명(36.9%)이 미성년자라고 밝혔다. 2022년 64명에서 2024년에는 288명으로 급증했는데 2024년 수치는 8월 25일 기준이라 연말이 되면 수치가 훨씬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딥페이크 피해 학교 지도’까지 등장했다. 8월 27일 ‘딥페이크 피해학교 지도’를 만든 팀 데이터스택은 “딥페이크 범죄에 대해 경각심을 주고 더 많은 사람들이 피해 사실을 알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며 “각종 커뮤니티에서 자료를 수집한 것으로 정확한 정보만 모여 있는 게 아니니 참고용으로만 봐달라”고 밝혔다. 여기에는 무려 500여 개의 학교가 올라와 있다.
정부는 단호한 단속 의지를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8월 27일 국무회의에서 “딥페이크 영상물은 익명의 보호막에 기대 기술을 악용하는 명백한 범죄 행위”라며 “관계 당국에서는 철저한 실태 파악과 수사를 통해 이러한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 뽑아 달라”고 당부했고, 같은 날 한덕수 국무총리도 “거의 마약 같은 수준으로 확고한 단속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8월 26일 서울경찰청은 불법합성물 제작·유포 텔레그램 채널 관련 수사를 시작하며 무려 22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 해당 텔레그램 채널 참여 인원에 대한 입건 전 조사(내사)에 착수했다. 27일에는 서울 시내 초중고 1374개교, 학부모 78만 명에게 딥페이크 범죄를 알리고 경고하는 ‘긴급스쿨벨’을 발령했다. 또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28일부터 7개월 동안 딥페이크 성범죄 특별 집중 단속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이미 수년 전부터 딥페이크 성범죄가 꾸준히 발생했고 일요신문을 비롯한 언론의 문제 제기도 꾸준히 이어져왔지만 경찰 수사는 매우 미진했다. ‘서울대 졸업생 딥페이크 사건’의 경우 2021년 7월에 피해자들의 첫 신고가 이뤄졌다. 서울 서대문, 강남, 관악, 세종경찰서에 네 차례나 피해자 신고가 이어졌지만 경찰은 ‘텔레그램은 익명성이 강해 피의자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수사를 중지하거나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신고 과정에서 피해자가 경찰에게 “아! 텔레그램 못 잡는데”라는 말까지 들었을 정도다.
검찰도 마찬가지였다. 피해자들이 검찰에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을 제기했지만 서울중앙지검이 기각했고, 서울고검에 항고했지만 역시 기각됐다. 마지막으로 법원에 검찰의 불기소 결정에 대한 재정신청을 했는데 2023년 11월 21일 서울고등법원이 재정신청을 인용했다. 그렇게 2023년 12월 서울청 사이버수사대가 다시 수사에 착수했다.
그나마 범인 검거의 결정적 역할은 추적단 불꽃의 ‘단’이자 미디어 플랫폼 ‘얼룩소’ 에디터인 원은지 씨였다. 원 씨는 30대 남성으로 위장해 2년 가까이 서울대 졸업생 40대 남성 박 아무개 씨와 신뢰 관계를 쌓으며 추적을 이어왔다. 이를 토대로 원 씨가 아내의 팬티를 주겠다며 오프라인 만남을 유인해 4월 3일 경찰 검거가 이뤄졌다.
‘텔레그램은 못 잡는다’던 경찰이 이번 특별 집중 단속을 통해 대통령의 지시처럼 딥페이크 성범죄의 뿌리를 뽑아 낼 수 있을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게다가 이미 딥페이크 범죄 가해자들은 흔적 지우기에 돌입했다. 뉴시스는 미성년자 딥페이크 가해자의 부모들이 디지털장의사에게 증거 삭제를 의뢰하고 있다고 단독 보도했다. 가해자로 추정되는 10대 남학생들의 부모들이 관련 SNS 게시물 삭제를 위해 디지털장의사 업체에 접근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피해자들이 찾아야 할 디지털장의사 업체가 자칫 가해자들 때문에 바빠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의2(허위영상물 등의 반포등)에 따르면 딥페이크 음란물의 제작하거나 반포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그런데 피해자가 미성년자인 경우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아동·청소년성착취물의 제작·배포 등)가 적용돼 제작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 제작자에게 알선한 자도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 선고된다. 소지·시청만 해도 1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다.
전동선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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