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사건은 2020년 3월 CJ대한통운이 전국택배노동조합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하면서 시작됐다. 택배노조는 집배점 소속 기사도 배송 업무 전반에 CJ대한통운의 실질적인 지휘와 영향력을 받는 만큼 회사가 교섭에 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CJ대한통운은 기사들과 직접적인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만큼 노동조합법상 사용자가 아니라며 교섭을 거부했다.
택배노조는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을 냈지만 기각됐다. 그러나 중앙노동위원회는 재심에서 이를 뒤집고 CJ대한통운의 교섭 거부를 부당노동행위로 판단했다. 이에 CJ대한통운은 2021년 7월 재심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1·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1·2심은 CJ대한통운이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기본적인 노동 조건에 관해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에 해당한다며 노동조합법상 사용자로 인정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원고(CJ대한통운)와 집배점 택배기사 사이에 명시적·묵시적인 근로계약 관계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원고가 집배점 택배기사들과 사이에서 구 노동조합법상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히며 CJ대한통운이 하청 택배기사들의 사용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번 사건에서 지난 3월 시행된 노동조합법 개정안(노란봉투법)의 확대된 사용자 개념을 적용하지 않았다. 노란봉투법은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사용자 범위를 확장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구 노동조합법상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는 근로자와 명시적이거나 묵시적인 근로계약 관계를 맺은 자’라는 기존 판례를 유지했다.
이 같은 판단은 2017년 전국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가 HD현대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단체교섭 청구 소송에서 확립된 법리를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지난 5월 원고 패소를 확정했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구 노동조합법이 적용되는 단체교섭 사안에 관해 종전 법리를 변경해 개정 노동조합법 규정과 실질적으로 유사한 내용의 법리를 창설하고 적용하려는 시도는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노란봉투법 소급 적용 불가 판결에도 원청의 사용자성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노란봉투법 시행 뒤 접수된 단체교섭 청구 사건에는 확대된 사용자 개념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대법원도 이번 판결에서 “향후 개정 노동조합법이 적용되는 구체적 사건에서 노동3권의 실효적 보장이라는 입법 목적에 맞게 사용자의 개념을 해석해야 함은 별론”이라고 밝혔다. 노동계 역시 구법이 적용되는 기존 사건보다 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이후 원청을 상대로 새롭게 단체교섭을 요구하거나 노동위원회 절차를 밟는 데 무게를 둘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원청의 교섭 의무를 둘러싸고 ‘실질적 지배’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지를 놓고 법적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 노동조합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구법이 적용된 사건에 대한 판단일 뿐 개정 노동조합법이 적용되는 사건과는 별개로 봐야 한다”며 “원청이 개정 이후 시점에 대한 교섭을 응하지 않을 경우 개정법에 따른 절차를 통해 교섭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계에서도 원청의 사용자성과 교섭 의무를 둘러싼 갈등이 더욱 본격화할 전망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이후인 3월 10일부터 6월 19일까지 1161개 하청노조(16만 4000명)가 원청 사업장 439곳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교섭 요구 사실을 공고하고 절차에 착수한 원청은 96곳, 실제 본교섭에 들어간 곳은 10곳에 그쳤다. 교섭이 지연되면서 일부 하청노조는 원청이 교섭에 소극적이라며 파업 등 쟁의 절차에 돌입하는 모습이다.
한편 택배노조는 이번 대법원 판결을 비판했다. 노조는 “수십 년간 자행된 불의를 합법화한 부당한 대법원 판결,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퇴행적 대법원 판결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이번 판결은 이미 노동법이 개정되고 모든 민간 택배사들이 원청 교섭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실상 별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승구 기자 win9@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