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연금 개혁 당시 김무성의 박근혜 엄호 사례 거론…한 대표, 윤 대통령과 회동 후 입장 변화 가능성 주목
#계속되는 동상이몽
한동훈 대표는 지난 7·23 전당대회 과정에서 “제3차 추천 방식의 ‘채 상병 특검법’을 낼 수 있다”는 제언을 했다가 당내에서 호된 비판을 받았다. 이 제안은 현재 당내에서 제대로 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도 한 대표는 용산과 정부는 물론, 여당 지도부와도 잇따라 상반된 의견을 냈다.
한 대표는 8월 25일 비공개 고위 당정 협의회에서 ‘2026년 의대증원 1년 유예’를 제안했으나 정부와 대통령실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9월 6일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을 야당과 의료계에 공식 요구하면서 여권 내 불협화음은 일단 수습 국면으로 들어갔지만 이내 갈등은 또다시 재연됐다. 한 대표가 이미 입시 절차가 개시된 ‘2025년 증원’에 대한 의제화까지 열어놔야 한다는 의견을 들고 나오면서다.
한 대표는 의료계가 요구하는 2025년 증원 문제도 의제로 다룰 수 있다는 파격안을 냈지만, 정부는 수시 모집이 시작된 상황에서 이 사안을 논의 테이블에 올릴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때문에 집권여당 대표와 국무총리가 지난 9월 12일 비공개 석상에서 이견을 대놓고 드러내며 얼굴을 붉힌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국회에서 ‘지역·필수의료 체계 개선’을 주제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 나란히 앉았는데 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되자, 대놓고 이견을 쏟아냈다. 여야의정 협의체에서 다룰 의제에 ‘2025년 증원 유예’를 포함할지를 놓고 한 대표는 의료계를 끌어들이려면 협의체 의제에 제한을 둬선 안 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내년도 정원은 논의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확고하게 드러냈다.
한 대표는 이날 “2025년 의대 정원 증원을 꼭 유예한다는 게 아니다. 의료계가 계속 요청하니 ‘일단 협의체에 들어와서 이야기하자’고 열어놔야 하는 것 아니냐”며 “협의체를 빨리 ‘개문발차’해야 국민들이 안심한다”고 말했다. 이에 한 총리는 “2025년 의대 정원 문제를 다시 논의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며 “대입 수시 모집 등이 이미 시작된 상황 등을 고려하면 혼선이 너무 크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그러자 한 대표는 “(확정된 증원안의) 재조정이 어렵다는 것은 알지만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지금 상황이 한가한가”라고 되물었다. 한 총리는 “지금 상황은 정부가 관리 가능하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당내 일부에서는 “한 대표의 적극적이고 유연한 태도 덕분에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긍정 평가해야 한다”는 긍정론도 나온다. 하지만 소수 의견일 뿐이다. 당내 주류는 “한 대표가 의대 증원 해법에서도 자기 정치를 한다”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중이다. 한 대표가 의견 개진에 앞서 반드시 거쳐야 할 당정 간, 또는 당내 소통 노력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게 이들의 한목소리다.
국민의힘 지도부 한 관계자는 “이미 입시가 시작된 내년 의대 증원도 논의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의대 증원을 하지 말자’는 의료계의 일관된 주장과 다를 바 없다”며 “국민들은 당장의 의료서비스 혼란에 불편해하는 것이지, 의대 증원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아닌데 당대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당내에서는 한 대표가 내는 돌발 제안이 당 지도부는 물론, 용산과도 교감이 이뤄지지 않은 채 나오고 있다는 절차적 문제점도 지적한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한 대표는 용산과 대화하려는 노력, 그리고 당 지도부와 끊임없이 교감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며 “검찰이 수사하듯 일방적으로 자신이 생각하고 그 결정대로 밀어붙이려고 하면 정치 영역에서는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간다”고 꼬집었다.
#10년 전 김무성은
여권에선 한 대표가 대통령 임기 초반 여당 대표 자리에 올랐던 김무성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표 사례를 떠올려야 한다고 주문한다. 김무성 전 대표는 지금의 한 대표와 여러 측면에서 비슷한 처지였기 때문이다.
김 전 대표는 박근혜 정부 초반인 2014년 7·14 전당대회에서 친박(친박근혜) 좌장 서청원 최고위원을 큰 표 차로 따돌리며 집권여당 수장으로 올라섰다. 용산과의 거리감에도 불구, 63%라는 압도적 득표율로 당대표 자리를 거머쥔 한 대표와 등판 과정부터 비슷한 셈이다. 김 전 대표는 2007년 대선 경선 땐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했던 ‘원박(원조 박근혜)’이었다가 그 후 박 전 대통령과 거리가 멀어졌다. 이 역시 윤석열 대통령 복심으로 불렸다가 소원해진 한 대표와 닮았다.
김 전 대표는 한 대표처럼 ‘수평적인 당과 청와대 관계’를 내세우면서 당대표 선거에 출마했고 당선됐다. 김 전 대표는 이따금 청와대와 다른 목소리를 내긴 했으나 박근혜 청와대가 제시한 핵심 국정과제에 대해서는 협조적 태도로 일관했다.
대표적인 게 박근혜 정부 핵심 국정과제였던 공무원연금법 개정이었다. 갈수록 재정 사정이 악화하는 공무원연금에 혈세를 쏟아 붓는 것은 국민에게 면목 없는 행동이고 공직자들의 일부 희생이 있더라도 공무원연금 제도를 반드시 손봐야 한다는 게 박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였다.
‘100만 공무원’을 적으로 돌릴 수 있는 연금 개혁안과 관련해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이, 더군다나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김 전 대표가 박 대통령 뜻을 오롯이 받아 개혁에 앞장설 결심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당시 세종시에서 지금의 여당이 선거 때마다 연전연패했던 것이 공무원연금 개혁 때문이었다는 분석도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김 전 대표는 기꺼이 청와대와의 동조화에 나섰고 박 대통령 대표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직접 뛰었다. 김 전 대표의 공무원연금 발언 통계를 집계한 결과, 김 전 대표가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2014년 10월 28일부터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날짜인 2015년 5월 29일까지 기간 동안 교섭단체대표연설과 당 최고위원회의 등에서 김 전 대표는 모두 64차례에 걸쳐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나흘에 한 번씩은 국가재정 건전화를 위해 공무원연금을 하자고 주장한 격이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두고서도 김무성 당시 대표는 버팀목이 됐다. 김 전 대표는 일부 여론조사에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가 찬성을 앞지르고, 역사학과 교수들의 집필 불참 선언이 이어지면서 상황이 정부·여당에 불리하게 전개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서도 원군 역할을 마다하지 않고 박 대통령을 강력하게 엄호했다.
대선을 노렸던 김 전 대표였기에 이따금 소신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청와대와의 갈등 상황에 놓이면 이내 한발 물러섰다. 대표적인 것이 개헌론이었다. 그는 2014년 10월 중국 상하이에서 “개헌 논의의 봇물이 터질 것”이라며 개헌론에 불을 지피는 발언을 했다가 청와대가 반발하자 얼른 고개를 숙였다.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과 갈등하는 과정에서 “여당 원내대표가 대통령과 싸워 이길 수 없지 않느냐”며 유 원내대표의 사퇴 압박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
김 전 대표의 인내 정치, 기다림의 정치가 끝내 빛을 보지 못한 채 2016년 총선 패배로 새누리당은 비대위 체제로 접어들었지만 김 전 대표가 2년 가까이 임기를 이어가면서 나름대로 성과를 냈다는 게 당시 주된 평가였다. 청와대와의 관계에서 대등성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박근혜 정부 초·중반의 국정 순항에 김 전 대표가 일조를 했다는 것이다. 당시를 기억하는 새누리당 한 전직 의원의 회고다.
“김무성 대표가 있는 동안 새누리당이 크게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두 번의 재보궐 선거를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특히 여권 불모지인 전남 순천·곡성에서 1988년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처음으로 이정현 의원을 당선자로 배출했다. 김무성 대표도 할 말 하면서 대표 노릇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과 각을 세우려하지 않은 노력이 있었다. 그런데 옥새파동이 단적으로 보여줬듯이 2016년 총선 공천과정에서 심각한 당청 대립이 있었고 결국 총선 패배를 불러왔다. 수성을 해야 하는 여당은 뭉치면 지킬 수 있고, 흩어지면 성을 뺏긴다.”
#한 지붕 두 가족, 공멸 불러
여권에선 결국 한 대표가 스탠스를 바꿔, 용산과의 코드를 맞춰나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의대 증원을 놓고 한 대표와의 이견이 분출하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9월 24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를 용산으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한다는 일정을 대통령실이 9월 19일 밝혔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이날 회동에서 가장 큰 현안인 의료 개혁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동상이몽을 하고 있다는 지적을 낳은 의대 증원에 대해 이날 합의된 원칙을 확실하게 도출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공식 만남은 한 대표 취임 이후 약 두 달 만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한 대표 당선 직후인 7월 24일 한 대표 등 당 지도부를 용산으로 초청해 만찬 회동을 했고, 같은 달 30일에는 정진석 비서실장이 배석한 가운데 한 대표와 비공개 면담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한 대표를 빼고 다른 최고위원 및 중진 의원과 윤 대통령이 만찬을 가지면서 ‘한동훈 패싱’ 논란이 일었다. 여권은 또다시 시끄러워졌고 이 여파 등으로 윤 대통령과 한 대표, 여당의 지지율이 동반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대통령실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당직자는 “의대 증원은 지지율이 80% 안팎까지 넘나들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도 임기 중 증원을 시행하려다 의료계에 굴복해 실패했을 만큼 어려운 사안으로 지금 여권은 이를 상기해 우선 똘똘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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