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개입 등 잇단 의혹 속 순찰·봉사·해외순방 나서…‘지지율 바닥’ 윤 대통령, 특검법 거부권 부담
뉴스토마토에 따르면 김건희 여사는 지난 4·10 총선을 앞두고 당시 5선 중진이었던 김영선 국민의힘 의원에게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내 지역구를 옮겨 출마할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김 의원은 경기 고양시 일산에서 4선까지 성공했지만 2012년과 2016년 총선에서 연이어 낙선, 10년간 여의도를 떠나 있었다. 그러던 중 2022년 6월 보궐선거에서 경남 창원의창으로 출마해 당선되며 5선 고지에 성공했다. 이후 22대 총선에서는 험지 출마를 명분으로 지역구 창원의창을 떠나 경남 김해갑에 도전장을 던졌지만, 경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컷오프됐다. 이 과정에 김 여사가 관여했다는 의혹이다.
대통령실은 “공천은 당 공천관리위원회에서 결정하는 것”이라며 “김영선 전 의원은 당초 컷오프됐었고, 결과적으로도 공천이 안 됐는데 무슨 공천개입이란 말이냐”고 선을 그었다.
이후 뉴스토마토의 추가 보도로 논란은 2022년 6월 보궐선거로까지 확대됐다. 당시 김 의원을 돕던 명태균 씨의 2022년 5월 9일 통화 음성파일이 공개되면서다. 음성파일에 따르면 명 씨는 ‘윤핵관’으로 불렸던 국회의원 두 명이 창원의창 보궐선거에 다른 후보를 공천하려하자,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인과 김건희 여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약속 받았다고 말했다.
명 씨는 창원을 중심으로 경남 일대에서 활동하는 ‘정치 컨설턴트’로 알려져 있다. 보수진영 내 폭넓은 인맥을 자랑하고, 지난 20대 대선을 계기로 윤 대통령 부부와 가까워진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앞서의 통화 다음날인 5월 10일 윤 대통령 취임식에 명 씨 부부도 초청돼, 윤 대통령의 부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 등과 함께 ‘주요인사’석에 자리했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김건희 여사는 지난 4월 총선뿐만 아니라,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던 2022년 6월 보궐선거와 지방선거의 공천에도 개입했다는 의미가 된다.
추가 의혹에 대해 대통령실은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 내부 사정을 아는 관계자는 “추가보도가 예고된 상황에서 무슨 내용일지 2주간 긴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기사가 공개됐는데, 김 여사의 텔레그램 메시지나 육성은 없었다. 직접 증거는 없어 대응할 필요가 없다 판단한 것 같다”고 귀띔했다.
그럼에도 김건희 여사는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 디올백 명품수수 사건에 대해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에서 불기소 권고 의견을 낸 이후엔 윤 대통령 없이 독자적인 일정까지 소화하고 있다.
9월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119 특수구조단 뚝섬 수난구조대, 한강경찰대 망원 치안센터, 용강지구대 등을 잇달아 방문해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이어 용강지구대 순찰 인력들과 마포대교 도보 순찰도 함께하며, 난간 등을 직접 살피고 조치 및 개선점을 말했다.
명절연휴를 앞둔 9월 13일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대국민 추석 인사 영상을 공개했다. 앞서 지난 설맞이 대국민 인사 영상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것과 대조적이다. 김 여사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온정의 손길을 나누고 계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국민 한 분 한 분의 삶을 더 따뜻하게 보듬기 위해 마음과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연휴기간인 9월 15일엔 장애아동거주시설 ‘다움장애아동지원센터’를 찾아 봉사활동을 했다. 김 여사는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들과 그림 그리기를 함께하고 간식을 배식하는 등 활동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추석연휴가 끝나자마자 9월 19일부터 2박 4일간의 체코 순방에 나섰다. 지난 7월 나토 정상회의 참석 이후 2개월 만의 해외순방이다.
김건희 여사의 행보에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민주당은 9월 18일 논평을 통해 “통제 불가한 김 여사는 검찰 수심위 불기소 처분이 내려지자마자 자기 세상인 듯 사과 한마디 없이 광폭행보 중”이라며 “비난이든 비판이든 주인공 자리에만 서면 문제없다는 김 여사의 후안무치에 국민이 질릴 정도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주가조작 의혹 명품가방 수수, 채 상병 수사외압까지 김건희 윤석열 부부를 둘러싼 무수한 의혹 중 제대로 밝혀진 게 없다”며 “누구도 김 여사에게 권력과 권한을 준 적이 없다. 적어도 숨을 줄 알았던 최순실보다 더한 국정농단이다. 아무도 허락하지 않은 ‘성역’을 쌓고 권력놀이 중인 김 여사를 둘러싼 의혹을 밝힐 수 있는 건 이제 특검뿐”이라고 강조했다.
여권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9월 16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김 여사의 광폭행보에 대해 “답답하시더라도 지금은 나올 때가 아니다. 공개 활동이 국민들을 더 힘들게 할 수도 있다”고 자제를 당부했다.
‘장애아동지원센터 방문과 마포대교 근무자 위로 행보 등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 않냐’는 질문에 홍 시장은 “긍정적으로 봐야 되는데 지금 각종 구설에 올랐기 때문에 국민들이 그걸 긍정적으로 보지를 않는다. 악의적으로 본다”며 “자숙을 하고 계시는 게 답답하지만 옳지 않느냐”고 답했다. 그러면서 ‘김 여사의 행보 본격화에 조언하거나 막을 수 있는 수 있을지’에 “대통령이 해야 한다”며 “조언할 참모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한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관계자는 “영부인에게 잠행을 원하는 게 아니다. 대통령의 부인으로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며 “다만 대통령실에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제2부속실 말만 하지 말고 빨리 설치해야 한다. 특별감찰관도 약속했으니 임명해야 한다. 또한 법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각종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으니 정치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고 전했다.
공천개입 의혹뿐 아니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도 김 여사에겐 큰 부담이다. 9월 12일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판사 권순형 안승훈 심승우)에서 권오수 전 회장 등 피고인들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이 열렸는데, 또 다른 ‘전주’ 손 아무개 씨가 방조 혐의에 유죄로 인정돼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았다.
그동안 대통령실은 손 씨의 1심 무죄 선고를 김 여사의 결백 근거로 거론했다. 하지만 손 씨와 김 여사의 주가조작 가담 정도는 달랐다. 손 씨 계좌에서는 재판부가 유죄로 판단한 통정거래가 한 건도 없었다. 하지만 김 여사와 모친 최은순 씨는 각각 계좌 3개와 1개가 주가조작에 동원됐다고 재판부가 판단했다. 특히 항소심 판결문에 김 여사가 87번, 최 씨가 33번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여사의 경우 1심 판결문보다 두 배 이상 언급됐다.
그러다보니 김건희 여사에 대한 검찰의 기소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주가조작 관여 정도가 더 작은 손 씨도 방조 혐의로 유죄를 받은 만큼, 김 여사는 공범 혐의 또는 최소한 방조 혐의로라도 기소돼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검사 최재훈)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앞서 검찰은 지난 7월 20일 검찰청사가 아닌 ‘제3의 장소’에서 김 여사를 비공개 조사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손 씨의 유죄 판결 직후 “손 씨 사례와 김 여사 사례는 각각 사실관계가 달라 단순하게 비교하거나 일률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며 동일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입장을 냈다.
야권에서는 특검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방침이다. 국회는 9월 19일 본회의를 열고 ‘김건희 특검법(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주가조작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재석 167명 전원 찬성으로 가결했다.
특검법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비롯해 김 여사의 인사개입·공천개입 의혹, 명품수수 의혹, ‘임성근 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 등 8가지 의혹을 수사 대상으로 삼았다. 김건희 특검법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윤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고 재표결에서 부결된 바 있다.
여당은 이번에도 거대 야당의 본회의 단독 소집에 반발하며 회의 자체를 불참했다. 또한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방침이다. 윤 대통령 역시 특검법이 정부로 넘어오면 거부권의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윤 대통령 입장에서도 거부권 행사는 쉽지 않은 선택이 될 전망이다. ‘김건희 감싸기’가 이어질 경우 국정수행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 윤 대통령 지지율은 추석연휴를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취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국갤럽이 9월 10일부터 12일까지 자체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윤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평가는 20%로, 20%대를 겨우 턱걸이했다(여론조사 자세한 사항은 한국갤럽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들에 이유를 물어보니 ‘김건희 여사 문제’가 3%로 한 부분을 차지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김 여사를 둘러싼 각종 논란은 대통령 취임 초기부터 불거졌다. 그런데 무엇 하나 깔끔하게 매듭짓고 가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감사원·국민권익위·검찰 등 사정기관을 동원해 면죄부를 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지지율의 반등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9월 20일 “수사외압과 구명로비, 총선 공천개입 의혹을 못 본 척하는 것은 앞으로도 쭉 국정농단을 하겠다는 뜻”이라며 김건희 특검법 관련해 “거부권 행사는 정권 몰락만 앞당길 뿐이다”라고 경고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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