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에 ‘세상 밖으로’ 나온 뒤 조용히 지내는 듯했던 그는 지난 11월 말 갑자기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의 부인 손 아무개 씨가 대주주인 유아이이앤씨가 코스닥 상장회사인 유아이에너지라는 회사를 인수한 것. 토목공사가 주력인 유아이이앤씨는 지난해 6월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내 술래이마이나 지역에서 400병상짜리 병원공사를 5800만 달러에 수주하는 등 이라크 재건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회사.
유아이에너지는 지난 연말까지 ‘서원 아이앤비’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다. 전자부품 생산이 주력이었던 이 회사는 지난 5년 동안 최대주주가 15번, 대표이사도 13번이나 바귀었다. 2003년 이후 유상증자만 아홉 차례 실시됐고 중간에 무상감자도 있었다. 여러 사람의 손을 타면서 주가 이상급등으로 조회공시요구와 투자유의 종목지정 등을 반복해왔고 대표이사가 55억 원의 회사자금을 빼돌리는 횡령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결국 지난해 4월에는 자본 전액 잠식설로 거래정지 상태에서 감사의견 거절까지 받아 퇴출이 확정됐다. 하지만 상장 폐지 하루 전날 이례적으로 재감사에서 ‘적정 의견’을 받아내 퇴출을 모면했다. 갑자기 감사의견이 적정으로 바뀐 이유에 대해 해당 회계법인은 아직 침묵 중인 상태.
이뿐이 아니다. 연간 매출액이 30억 원에 미달되면 퇴출되는 코스닥 시장 규정 때문에 지난 연말에는 퇴출설이 나돌았으나 막판에 매출 31억 4000만 원을 공시하면서 ‘극적으로’ 기사회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4년 내리 적자를 지속했고, 지난해 손실액만 63억 원에 달한다.
회사 사정이 이렇다보니 주가도 너울거렸다. 2001년만 해도 7000원대를 웃돌던 유아이에너지의 주가는 2004년에는 85원까지 폭락했다가 2005년 초 5000원대까지 다시 올랐다. 전형적인 작전주의 주가흐름을 그대로 보여준 것. 그러다 지난해 초에는 500원대로 급락하더니 최규선 씨가 대표이사를 맡은 연말부터는 다시 급등세를 타고 있다.
최 씨는 회사 인수 뒤 2006년 12월 27일 상호를 유아이에너지로 바꾸고 ‘자원 개발 전문회사’로의 변신을 선언했다. 그의 유명세에 힘입은 회사 주가는 지난 연말 한때 8000원대를 넘어서기도 했고, 지금은 6000원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최 씨는 이 회사를 통해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일까. 최 씨는 현재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다만 “조만간 기자회견을 가질 계획”이라는 게 회사 관계자들의 말이다.
최 씨는 유아이에너지 대표이사 취임 직후 잇따라 네 명의 미국 정치계 거물 출신들을 고문으로 영입했다.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프랭크 칼루치 칼라일 그룹 명예회장. 미국 국방장관을 지낸 칼루치는 CIA 부국장,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 등을 거친 거물 중의 거물급 인사다. 칼라일그룹은 운용 자산만 160억 달러가 넘는 투자회사다.
칼루치 명예회장의 영입에 관해 유아이에너지 관계자는 “소로스펀드 회장인 조지 소로스 씨와 알 왈리드 사우디 왕자가 연결시켜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최 대표가 출소 후 미국과 중동을 오갔고, 지난 1월에도 소로스 회장을 만났다”고 전했다.
세계적 석학인 로버트 스칼라피노 교수도 수석고문으로 유아이에너지에 참여하고 있다. 버클리대학 학장을 지낸 스칼라피노 교수는 대우그룹과 포스코그룹 고문을 지내기도 했다.
스테판 솔라즈 전 미 하원의원도 수석고문으로 선임됐다. 솔라즈 의원은 현재 미국의 천연자원개발 회사인 글로벌 산타페의 이사로 재직 중이다. 니콜라스 벨리오츠 전 미 국무부 중동담당 차관도 유아이에너지의 고문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중 칼루치 명예회장과 벨리오츠 전 차관은 ‘버지니아 글로벌 에너지 컨설턴트’라는 회사의 이사도 맡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 씨가 표방하고 있는 ‘자원 개발 전문 회사’의 연결고리가 바로 이 회사다.
유아이에너지는 “버지니아 글로벌 에너지 컨설턴트와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이라크 유전개발 독점권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유아이 측은 버지니아 글로벌사가 1975년부터 미국 영국 포르투갈 등의 굴지 정유사와 파트너십을 맺고 원유 및 천연가스 탐사 개발 생산 용역 서비스를 해왔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정유업계 일부에서는 이 회사의 실체에 관해 의문을 제기한다.
한국석유공사 한 관계자는 “버지니아 글로벌이라는 회사를 예전에 들어본 적이 없다”며 “미국에는 에너지 관련 회사가 워낙 많아 다 알 수는 없지만 유명한 곳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고 전했다. 정유회사의 한 미국 담당 관계자도 들어보지 못한 회사라고 말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에 관해 유아이에너지 측은 “버지니아 글로벌을 중심으로 컨소시엄이 분명히 형성돼 있다”며 “계약조항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설명한다.
유아이에너지의 한 관계자는 “3월께 발표되는 이라크 석유법이 발효되면 유아이에너지가 세계 유수의 석유회사들과 함께 유전개발에 참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시점에서는 최규선 씨의 재기 움직임이 ‘대박’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보물선 탐사 등의 사례처럼 해프닝으로 끝날지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의 유명세를 믿고 ‘묻지마 투자’식으로 유아이에너지의 주식매입에 나선 투자자들이 많다.
최대주주 변경과 대표이사 교체 공시가 나던 12월 13일까지 이 회사 주가는 보름 동안 아홉 차례의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수많은 개미투자자들도 이 과정에서 유아이에너지에 올라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한 증권사 연구위원은 “유아이에너지가 진출한다는 지역은 대우인터내셔널이나 SK 등의 대기업이 기피해온 지역으로, 사업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며 ‘묻지마투자’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최규선 씨가 유아이에너지를 인수한 금액은 35억 원. 최 씨는 회사 인수 뒤 이름도, 주종목도 완전히 바꾸는 리모델링부터 했다. 즉 35억 원이라는 돈은 최 씨가 코스닥 시장에 낸 입장료인 셈이다. DJ의 대통령 당선자 시절부터 폭넓은 인맥을 자랑했던 최 씨가 이번에는 사업 그 자체를 성공시켜 그간의 불명예를 씻어낼지 주목된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