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창에 간 이건희 회장. 연합뉴스 | ||
박 전 회장이 지난해 11월 태릉선수촌을 방문해 훈련 지원금 1억 원을 전달하는 것으로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의 기치를 올렸다면 이 회장의 홍보활동 공식화는 지난 12월 28일 청와대 회동 직후 이뤄졌다. 노무현 대통령과 4대 재벌 총수들이 만난 자리에서 이 회장은 “IOC 위원으로서 동계올림픽 유치에 힘쓰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회장이 평창 홍보활동에 전력을 쏟는 것은 IOC 위원직 본분에 충실한 것으로 어색하게 볼 일도 아니다. 그러나 정치권과 재계의 호사가들은 현재 진행 중인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증여 의혹 사건과 이 회장에 대한 검찰 소환설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지적이다.
지난해 12월 28일 청와대 회동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4대 재벌 총수들에게 2012년 여수 세계박람회와 2014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대기업 역할론을 강조했다. 정치권 인사들은 정권 말기를 맞이한 현 정부가 이미 한 번씩 유치에 실패한 평창 동계올림픽과 여수 세계박람회 개최 건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전한다. 동계올림픽 개최지는 7월에 선정되며 세계박람회 개최지는 12월에 발표된다. 국내 유치 실패전력이 있는 큰 국제행사 두 개를 올해 안에 유치할 수 있다면 그동안 ‘반 노무현’ 정서를 어느 정도 호의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기대인 셈이다.
지난 연말 이건희 회장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을 공식화한 것을 지난 1월 18일로 예정돼 있던 삼성에버랜드 전·현직 사장단에 대한 2심 선고공판 연기와 맞물려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이미 정·관·재계 호사가들 사이에선 청와대-법원-삼성 간 물밑교감을 통한 결과물이란 해석이 대두되기도 했다.
만약 오는 7월에 평창이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면 정부 차원에서 국제무대를 상대로 홍보활동을 벌인 이건희 박용성 두 IOC 위원을 모른 채 할 수도 없을 것이다. 1월 18일로 예정된 에버랜드 재판 2심 선고가 연기되고 3월에 공판 일정이 잡혔지만 이는 선고공판이 아니다. 지난 2003년 12월 허태학 박노빈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단이 불구속 기소된 이후 1심 선고공판은 2005년 10월에서야 이뤄졌다. 재판부 교체와 공판 연기를 겪어온 이번 재판의 2심 판결이 7월 이전에 나올 가능성도 장담할 수 없다. 만약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성공을 전제로 2심 선고공판이 7월 이후가 된다면 이 회장 측은 정부의 지원사격과 반 삼성 정서 약화를 동시에 기대할 수도 있다.
박용성 전 회장에 대한 사면과 동계올림픽 유치 성공 전례가 어우러져 삼성 측이 에버랜드 2심 재판 결과에 대한 기대를 부풀릴 수도 있다. 지난해 12월 검찰은 허태학 박노빈 두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에 대해 각각 징역 5년과 3년을 구형한 바 있다.
검찰은 에버랜드 사장단에 대한 2심 판결 이후 이건희 회장 소환 시기를 조율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공판일정이 연기되면서 ‘이 회장 소환이 물 건너 간 것 아니냐’는 회의적 시선이 늘어가는 가운데 동계올림픽 유치에 대한 삼성의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이 회장은 유치 활동을 위해 조만간 장기 외유길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개최지가 결정되는 7월까지 ‘평창 홍보’ 명분으로 해외에 머물게 되면 에버랜드 선고 공판이나 이 회장 소환도 지연될 수밖에 없다.
이 회장은 지난 1월 25일 전경련 회장단 모임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이는 20개월 만의 일이었다. 당시 이 회장은 “앞으로 평창 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며 “실제로 자주 (해외로) 나가 사람을 많이 만나겠다”고 의지를 내보였다. 이 회장은 3월부터 해외에 직접 나가 홍보활동을 벌일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해외방문길에 나서는 이 회장의 표정은 지난 2005년 9월 당시 국감을 앞두고 도피성 논란 속에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던 때와는 분명 다를 것으로 보인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