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방송 체험버스의 20대 의전도우미들이 팀장에게 공공연히 성추행을 당했다며 하소연을 하고 있다. 사진은 한 공중파 방송의 체험버스로 기사 내용과 관련없다. |
▲ 디지털방송 체험버스의 20대 의전도우미들이 팀장에게 공공연히 성추행을 당했다며 하소연을 하고 있다. 사진은 한 공중파 방송의 체험버스로 기사 내용과 관련없다. |
그러나 이런 기쁨도 잠시, 방송 홍보도우미 이력을 쌓은 뒤 스튜어디스에 지원하려했던 A 양의 꿈은 직속 상사인 B 팀장을 만나면서부터 산산조각이 났다.
출근 첫날부터 B 팀장으로부터 “오늘은 내 방에서 자고 가라” “잠이 오지 않는데 성관계를 한 번만 하자”는 황당한 업무 지시(?)를 받아야 했다는 것이다. 당시 A 양은 가난한 재정 형편 상 일당이 제법 높은 의전도우미 일을 그만두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던 B 팀장은 A 양이 성관계에 응하지 않거나 무뚝뚝하게 반응할 경우 업무시간을 무기한으로 연장해 업무강도를 높이거나 ‘해고를 할 수도 있다’는 의사를 은연중에 내비치는 등 수시로 겁을 줬다고 한다.
결국 일주일 만에 일이 터졌다. A 양의 주장에 따르면 B 팀장은 업무 외 시간에 A 양을 불러 술을 잔뜩 마시게 한 후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A 양을 근처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했다. 그날 이후 B 팀장은 항의하는 A 양에게 “내가 언제 너에게 자자고 했느냐, 그냥 옆에서 잠만 재워 달라고, 몸이 뻐근하니 안마 해 달라고 했지”하고 말을 바꾸면서도 수시로 “오늘은 내 방에서 자라”는 황당한 주문을 거듭했다고 한다.
B 팀장의 대담한 행동은 계속됐다. 디지털방송 체험버스에 외국인을 비롯한 일반인 방문자가 시간마다 100여 명씩 몰려왔다. 이들이 방송사 홍보영상을 보는 사이 B 팀장은 A 양의 가슴을 수시로 만지고 희롱하면서 스릴을 즐겼다고 한다. 방송을 홍보하는 현장에서 남부끄러운 일을 자행한 것이다.
결국 A 양은 수치심에 사로잡혀 B 팀장의 ‘성노리개’ 노릇을 거부했다. 그러자 B 팀장은 A 양을 별안간 이유 없이 해고했다고 한다. 그 사건 이후 A 양은 약 1년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지난 9월, 억울함을 참지 못한 A 양은 뒤늦게 B 팀장을 상대로 고소를 했다. 이 고소를 계기로 A 양 말고도 B 팀장으로부터 성적 피해를 입은 의전도우미들이 상당수 있다는 충격적인 주장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사태는 더욱 커졌다.
‘당시의 성폭행 피해 과정을 소상히 알고 있다’는 이엔씨 전직 직원 C 씨(남·31)와의 만남을 통해 B 팀장의 만행을 더욱 자세히 알 수 있었다. C 씨는 평소 B 팀장으로부터 “의전도우미들을 따먹고 다녔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또 C 씨는 “B 팀장에게 성폭행 및 추행을 당한 의전도우미들 몇몇이 자신에게 찾아와 울면서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 도와 달라’며 간청을 해왔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또 다른 성폭행 피해자 D 양은 “B 팀장은 디지털방송 체험버스 팀장이란 직위를 이용해 의전도우미를 성노리개로 삼았다. 퇴근 후 휴식 중인 의전도우미 숙소로 무작정 찾아와 함께 생활하길 원했다. 성접대 요구를 거부할 경우 팀장이라는 권력을 내세워 해고하겠다며 협박했다”면서 “한 예로 의전도우미들이 샤워할 때마다 찾아와 ‘어서 문을 열어 달라, 안에 뭐 놓고 온 게 있으니 찾아가야 한다. 잘리고 싶으냐’며 여러 차례 문을 두드리곤 했다”고 주장했다.
D 양은 “B 팀장이 웃는 얼굴로 내가 누워있는 침대로 달려들어 하의를 벗기려고 했다. 양발로 B 팀장의 가슴팍을 찼는데 그 틈을 노려 뻗어진 내 다리에서 바로 하의를 벗기더라. 아주 능숙했다. 팔로 B 팀장의 어깨를 밀고 거칠게 저항했으나 B 팀장은 자기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고 ‘한번만 (하겠다)’이라며 성폭행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옥 같은 상황은 계속됐다고 한다. B 팀장이 힘으로 제압해 D 양의 하의를 벗기면서 “진짜 마지막이야. 진짜 마지막”이라고 달래며 거칠게 성폭행하는 횟수는 점차 늘어만 갔다.
이어 D 양은 “매일 밤 지방에 나가있는 딸이 걱정돼 전화로 안부를 묻는 부모님께 ‘잘 지내요.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답할 때마다 끓어오르는 눈물을 참아야만 했다”며 가슴 아파했다. D 양은 “얼마 후 하늘이 도우셨는지 본사 직원 C 씨가 방송사와 이엔씨 측에 B 팀장의 만행을 고발하고 조치를 취해주려고 했다. 그런데 이엔씨 측은 C 씨를 돌연 해고했다”며 황당해 했다.
기자와 만난 C 씨는 B 팀장을 고소한 피해 여성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B 팀장이 평소 의전도우미를 성적으로 괴롭혔다”는 진술을 소신껏 했다는 혐의(?) 때문에 강제 퇴사 조치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퇴사 당시 이엔씨 대표는 사석에서 C 씨에게 “아직 유죄 여부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B 팀장을 해고하기는 어렵다. C 씨는 일은 잘하는데 너무 정의감이 많은 것 같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전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엔씨 대표는 23일 통화에서 “C 씨가 업무능력은 좋은 편이었으나 B 팀장과 사적인 불화가 있었다. B 팀장이 성폭행 혐의를 받은 것을 빌미로 B 팀장에게 폭행을 가하는 등 문제를 일으켰다. 회사 입장에서 C 씨에 대한 퇴사 방침은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한편 C 씨의 퇴사 과정에서 방송사 측이 C 씨에게 했던 일련의 행동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난 10월 방송사 서비스부서의 한 차장은 “의전도우미들이 성 피해를 당하고 있으니 도와 달라. 이엔씨 측에선 여전히 B 팀장을 정상근무시키고 있다. 이런 비윤리적인 회사를 더 이상 못 다니겠다”고 도움을 요청해온 C 씨에게 “평소 (C 씨의) 업무 평가가 좋다. 방송사 이름으로 감사패를 수여할 테니 2012년 12월 말까지 조금만 참아 달라”며 달랬다는 것이다. 그러나 C 씨가 해고통보를 받자 방송사 측도 더 이상은 이엔씨 일에 관여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방송사 측의 한 관계자는 “이엔씨 내부에서 벌어진 사적인 문제까지 우리가 늘 주시하고 관리할 수 없는 노릇이고 계약서상 명시된 의무도 아니다. 무엇보다 성폭행 사건은 경찰 수사 결과에 따라 판단할 문제다. 더군다나 이엔씨 측에서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직원을 이미 해고조치시켰다고 통보해왔다”며 “위탁계약 상 예산집행, 관리, 감사 권한이 있지만 인사 및 관리자에 대한 관리·감독 의무는 없다. 즉 위탁업체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을 마치 방송사가 방조한 것처럼 보는 시선은 부적절하고 명예훼손의 여지가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실제로 계약서상 방송사가 이엔씨 내부 인사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엔씨 소속 성폭행 사건 관련자를 직접 처벌할 권한 역시 없다. 그러나 방송사의 디지털방송을 홍보하는 위탁업체 이엔씨 내부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에 대해 강한 권고조치를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나치게 방관했다는 게 C 씨와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일례로 B 팀장이 성폭행 혐의로 고소를 당하면서 그동안 쉬쉬했던 그의 행실이 폭로되자 이엔씨 측에선 방송사 측에 “사법기관의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 2012년 9월 25일 이후로 B 팀장을 업무에서 물러나도록 할 것”임을 약속하는 각서를 발송했다.
그러나 B 팀장은 현재까지도 버젓이 회사에 출근해 정상 근무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엔씨 측 한 직원은 11월 22일 통화에서 “현재 B 팀장은 자기 업무를 그대로 이행하고 있다. 시간 지나면 공식적으로 업무에 복귀시킬 방침인 것으로 알고 있다. 요즘 사태가 시끄러워져서 외부에서 전화가 오면 B 팀장을 퇴사시켰다고 말만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C 씨는 ‘문제의 B 팀장이 여전히 출근하고 있다’는 내용을 수차례 방송사 측에 전달했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이엔씨 대표는 23일 통화에서 “B 팀장을 분명히 퇴사시켰다. B 팀장이 후임자에게 인수인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회사에 나와 업무를 한 것일 뿐 더 이상 (B 팀장은)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현재 성폭행 사건은 검찰에서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B 팀장은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서 “성폭행을 하지 않았다”고 강하게 부인했으나 ‘거짓말’ 판정을 받은 상태다. 이에 대해 B 팀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거짓말 탐지기 조사 결과가 왜 그렇게 나왔는지 억울할 따름이다. 문제의 의전도우미들과는 전부 합의 하에 성관계를 했고 그 중 일부는 예전에 사귀었던 사이다”라고 해명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