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일 고건 총리의 한나라당 예방을 맞이하기 전 최병 렬 대표와 홍사덕 총무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종현 기자 | ||
최근 최병렬 대표 체제에 대한 ‘비토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가운데 그간 최 대표를 적극 도왔던 이른바 ‘최병렬 사단’이 물을 먹고 있다는 지적마저 제기되는 중이다. 경선과정에서 최 대표를 적극 도와 서청원 의원 같은 ‘숙적’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운 1등 공신들이 지금에 와선 모두 뒷전으로 물러났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토사구팽’이라고까지 평하는 당내 시각도 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예전에 사극에서 조선 3대 태종대왕이 자신을 왕으로 옹립해준 공신들을 나중에 모두 쳐내는 내용을 본 적이 있는데 이 같은 광경이 우리 당내에서도 벌어질 판”이라고 밝힌다.
당 일각에서는‘공신’들의 전락을 알리는 서곡은 김문수 의원을 통해서 울려 퍼졌다고 말한다. 김 의원은 대표 경선 과정에서 최 대표측 일을 적극 도운 것으로 알려졌었다. 또한 최 대표 역시 김 의원의 개혁성향과 가능성을 높이 사왔다. 그런 까닭에 최 대표 당선 이후 당 살림을 도맡아 하는 사무총장 후보 1순위로 김문수 의원이 거론됐던 게 사실이다. 김 의원은 한때 최 대표가 주창한 ‘인큐베이터론’의 주인공인 차세대 대권 후보군 중 한 명으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당내 인사들은 김 의원을 바라보는 대표실의 시선이 싸늘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경선 직후 사무총장에 박주천 의원이 선임되고 나서 최 대표측 내부에선 “최 대표가 김문수 의원을 무척 아꼈지만 경솔한 행동 몇 가지로 인해 눈밖에 나게 됐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대표실에선 부인하지만 ‘DR 총무 만들기’에 적극 나섰던 점이 부정적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언론에서 ‘공신’으로 거론됐던 정형근 의원에게도 시선이 모아진다. 이번 대표 경선이 끝나고 난 뒤 정 의원은 ‘최 대표 경선 공략의 밑그림을 그려준 인물’로 부각됐다. 정 의원측도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 대표측은 이에 대해 고개를 내젓고 있다. 최 대표 진영의 한 관계자는 “대표 경선이 끝나고 나서 정 의원이 일부 언론에 1등 공신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그 사람, 우릴 위해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최근엔 최 대표와 가깝게 지낸 일도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경선과정에서 다른 후보들은 일찌감치 정 의원을 최 대표측으로 분류해놓은 바 있다. 그가 경선 전후 다른 후보측에 대한 공세와 부산지역 공략에 ‘공’을 세웠다는 후문이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정 의원과의 관계가 어찌됐든 당 개혁을 부르짖은 최 대표가 공작정치 이미지를 가진 정 의원의 잦은 대표실 출입을 원하겠는가”라고 지적했다.
▲ 지난달 30일 정책위의장 투표에 앞서 뭔가 심각한 얘기를 나누는 김문수-정형근 의원. | ||
난공불락으로 보이던 이 지역에서 최 대표가 교두보를 마련하게끔 도와준 1등 공신이 바로 자민련에서 ‘이적’한 김용환 의원이다. 김 의원은 지난 대선 때 충청권 공략을 염두에 둔 이회창 후보측의 러브콜로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지난 대표 경선 당시 최 대표측 한 관계자는 “서 의원의 안방인 충청권을 공략하는 데 김용환 의원의 도움이 절대적”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최 대표 당선 이후 김 의원의 당내 입지가 넓어질 것이란 관측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김 의원의 내년 총선 거취 문제가 나돌 정도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김 의원은 지난 대선 패배 이후 역할이 기대에 못 미쳤다는 지적 속에 당내에서 심심치 않게 ‘용퇴론’이 나돌았다. 당내 일각에선 32년생인 김 의원 지역구인 충남 보령·서천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이 벌써부터 뛰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개혁파 의원들이 탈당하는 상황에서 최 대표가 김 의원을 드러내고 챙겨주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김 의원측은 향후 거취 문제에 이렇다할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김용갑 의원도 김용환 의원과 비슷한 경우로 분류되고 있다. 지난 경선에서 최 대표의 안방이라 할 수 있는 경남권 사수에 김용갑 의원이 큰 역할을 한 바 있다. 하지만 김용갑 의원 역시 ‘공신’ 대접을 못 받는 분위기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경선 때 안방 사수에 공을 세운 김용갑 의원에 대해 최 대표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며 “당내에서 ‘청산대상’으로 거론중인데도 그냥 방치한다.
중진 등용이 가능한 특보단장 선임에서도 일부 기자들의 예상을 깨고 대표실에선 김 의원의 이름조차 언급이 안됐다”고 밝혔다. 개혁파 의원들을 공공연히 비난해온 김 의원에 대해 ‘꼴보수’ 이미지를 벗으려는 최 대표가 손을 내밀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한편 최병렬 대표 만들기 1등 공신들이 푸대접을 받는다는 지적에 대해 일각에선 ‘당연한 일’이란 평을 내리기도 한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최 대표가 당 개혁을 부르짖어온 터라 ‘공신 챙기기’에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특히 당내에서 비토 대상이 된 측근들을 드러내놓고 요직에 앉히기엔 주위 시선이 따가웠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경선 과정에서 최 대표를 도운 한 인사는 아직 ‘당직’을 받지 못하고 최 대표 뒤에서 ‘브레인’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