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 전 후보가 문재인 후보 적극 지원을 선언하자 박근혜 캠프에서는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종현 기자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측이 “아주 낭패”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척이 져 갈라질 줄 알았던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가 앞뒤 보지 않고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돕겠다고 선언하면서다. 새누리당이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다는 이야기도 있고, 김칫국부터 마셨다는 내부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낭패가 필패가 되면 어떡하느냐”는 조바심도 나온다.
새누리당이 울상을 짓는 것에는 ‘제2 공안정국’이 급격히 도래한 데 있다는 이색 평가도 나온다. 한 친박계 인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최근 안 전 후보가 ‘문 후보는 내가 알던 문재인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보수 언론에서 떠들었을 때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얼씨구나’ 하고 떠든 바가 있었다. 안과 문의 결별은 곧 중도와 진보층의 결별을 의미했고, 불과 1%의 싸움으로 봤던 대선 전쟁에서 박근혜 후보의 승리를 예견하는 꼴이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박 후보의 ‘공안정국’ 이야기가 회자하면서 그를 돕던 내부에서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아무리 앞서 간다고 해도 ‘점수 매기기’까지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니겠느냐.”
대선을 불과 며칠 앞두고 새누리당 내에서 그동안 각 지역구 국회의원의 ‘대통령 만들기’ 행보에 점수를 매기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와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언제 각 지역 의원이 내려갔으며 ‘귀향 후 여론’이 어떻게 변했는지 당과 캠프가 수치화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대선 전후로 각 지역의 투표율과 득표율을 고려해 그 지역 국회의원의 활동을 체크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것이 ‘페이퍼화’돼 줄 세우고 있다는 직언은 처음이었다.
앞서의 친박계 인사는 “열심히 했고 아니고를 떠나서 그런 보고서가 발생했고, 일부에서 회람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박 후보 지원그룹에 뒤늦게 ‘멘붕(멘탈붕괴)’이 왔다는 토로였다. 그는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박 후보를 두고 ‘제2의 공안정국 조성자’로 비판하며 떠나는 이들이 많아질 것”을 두려워했다.
‘공안정국’은 1989년 연이은 방북사건에 대해 정부가 강력 대응하면서 급격히 보수화된 정국상황을 뜻한다. 1988년 7월 노태우 대통령의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7·7선언)’을 계기로 민간 차원에서 통일에 관한 논의가 터져 나왔고, 다양한 남북교류 주장이 대두되면서 1989년 봄부터 문익환 목사 방북사건, 서경원 의원 방북사건, 임수경 방북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이에 정부가 좌경세력에 대한 수사를 강화하고 국가보안법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면서 정치권은 체제수호적 보수주의를 표방한 극우적인 분위기로 급선회했는데 당시 정치권과 재야에서 이를 ‘공안정국’으로 불렀다.
문제는 박 후보가 집권하기도 전에 소속 국회의원과 실무진의 ‘대통령 만들기’ 활동을 감시 및 감독했고, 이를 점수로 매겨 ‘두고 봤다’는 데 있다.
박 후보 캠프에서는 지역 여론 수집 활동을 해왔다. 전국 각 지역, 나아가 아주 규모가 작은 지역까지 언론과 여론의 동향을 파악해 왔고, 박 후보에 대한 지지가 강하면 강한 대로, 약하면 그 이유를 파고들면서 여론을 돌리고자 고군분투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박 후보 캠프 측에서 수만 장에 달하는 각종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저마다 ‘암행어사’로서 활동해 왔고, 각 지역구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 등에 대한 ‘평판’이 여러 루트를 통해 보고돼 왔다는 것에 있다.
일각에서는 지역여론 수렴이라는 직책이 주어졌고, 그 본부에서 각 지역의 언론과 여론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파악해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각 군소 지역 언론 역시도 박 후보에 대해 우호적이었는지 비우호적이었는지, 대선 정국 전후에 언론의 보도 변화는 없었는지, 있었다면 무엇 때문이었는지에 대한 평가가 이뤄져 왔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혹자는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에 전국 각 언론에 적용한 ‘1도 1사’ 체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1981년 전 전 대통령이 ‘언론기본법’을 공표했는데 전국 각 지역의 언론통폐합을 이루면서 하나의 도나 시에 한 개의 언론사만 허용한 것을 당치도 않게 새누리당이 본받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최근 박 후보 캠프에서는 여러 가지 장밋빛 청사진이 나오기도 했다. 문 후보의 지지율이 정체됐다는 둥, 호남권에서 박 후보가 선전하고 있다는 둥, 부산경남(PK)권에서 박 후보가 지지율을 회복하고 있다는 둥 하는 이야기였다. 특히 안 전 후보의 사퇴가 박 후보에게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면서 수도권에서는 기본만 유지해도 승리한다는 김칫국도 나올 정도였다.
문제는 이런 ‘안일함’에서 나왔다. 박 후보 캠프에서 긴급 ‘함구령’이 떨어진 것이다.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김무성 총괄본부장은 최근 “‘200만 표 이상 승리한다’ ‘인수위원회를 꾸리고 있다’는 등 벌써부터 선거분위기를 해치는 당내 인사의 언론 인터뷰가 나오고 있는데 이런 인터뷰는 절대 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어떤 식으로 표 계산을 해도 이긴다’ ‘안철수가 사라진 이상 문재인 독자 노선으로는 절대 박근혜에게 안 된다’는 이야기가 여의도에서 회자되고 있던 터였다.
한 캠프 실무진의 솔직한 이야기다. “친한 기자와 대화하면서, 아니면 캠프에서 어느 정도 직책이 있는 사람들끼리 ‘다음 정부에서 무엇을 하고 싶으냐’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우리 캠프뿐만 아니라 저쪽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오고 갈 것이다. 그런데 그런 지적은 그렇게 공개적으로 해서 풀릴 것이 아니라, 정말 내부에서 입단속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사담까지 통제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적지 않다.”
새누리당 차원에서 안 전 후보가 문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데 대해 ‘평가절하’ 하는 것을 두고도 실무진의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박 후보의 지지율이 어떤 사건, 사고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을 두고 ‘박스권 지지율’이라고 부르는데 이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박 후보가 다른 면모를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야합, 구걸과 적선의 정치, 권력 나눠먹기 등으로 네거티브 할 것이 아니라 뒤늦게라도 ‘단일화의 완성’을 인정하면서 ‘정정당당한 승부’를 요구해야만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있는 중도층에게 읍소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박 후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려워 제대로 보고하지 않는 일부 측근들에 대한 불만이 계속 터져나오고 있다.
“야권의 단일화를 무시하면서 제 갈 길만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만 주장하면 51%를 얻을 수 없다. 서울시교육감이나 경남도지사 등 ‘러닝메이트’로 회자됐던 후보군도 박 후보 지지율과 전혀 별개로 움직이고 있다. 박 후보로선 지금 ‘지지 선언’ 외에는 어떤 확장성도 없어 보인다.”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염원하는 한 언론 종사자의 진심어린 충고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