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대선후보의 유세장. 청중들과 유세차량들이 뒤엉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유세차량들이 불법주차 하는 바람에 주변 도로는 교통체증이 빚어지고 있다. 최준필 기자 |
지난 2일에는 강원도 인제군에서 춘천의 유세장으로 이동하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 유세 지원차량 중 한 대가 과속으로 달리다 추돌 사고를 내 박 후보의 핵심 측근인 이춘상 보좌관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과속이 부른 안타까운 참변이었다. 이 보좌관의 사망 사고 이후 각 캠프에서는 무리한 일정을 줄이고 안전에 신경을 쓰겠다고 발표했다.
<일요신문>이 유세 차량의 뒤를 따라가 봤다.
지난 2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강원도 인제군 원통장 방문 일정을 마치고 춘천풍물시장 유세현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박 후보를 태운 카니발을 비롯해 보좌진, 수행원 등을 태운 수행차량 10여 대가 함께 움직였다. 행렬의 맨 앞에는 경찰차가 후보 차량을 에스코트했다.
사고는 낮 12시 10분 강원도 홍천군 44번 국도에서 벌어졌다. 행렬의 후미에 있던 검은색 카니발 2대가 차선변경 도중 추돌하면서 앞 차가 도로 경계석과 전신주를 잇달아 부딪친 것이다. 이 사고로 박 후보의 최측근인 이춘상 보좌관이 숨지고 함께 차에 타고 있던 일행 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 직후 사고 장면이 찍힌 블랙박스 영상이 공개됐다. 영상을 보면 과속으로 달리던 수행차량이 과속 단속 카메라를 피하기 위해 급하게 갓길로 차선변경을 하다 뒤따라오던 차량과 서로 뒤엉켜 사고가 난 것처럼 보인다.
사고 이전에 찍힌 다른 블랙박스 영상을 봐도 경찰 순찰차의 호위를 받은 10여 대의 박 후보의 수행차량들이 비상깜빡이를 켠 채 빠른 속도로 다른 차량들을 추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경찰 순찰차의 호위와 관련해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대선 후보는 대통령에 준하는 대우를 받기 때문에 경찰차가 호위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앞에서 에스코트를 하는 것과 과속을 돕는 것은 별개다”라는 말로 유세차량의 과속을 제지할 수 없는 현실을 드러냈다.
사실 유세차량의 과속과 신호위반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제한된 선거운동 기간 동안 더 많은 지역에 유세를 다니기 위해 대선 후보 차량이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도로를 질주하는 모습은 5년마다 되풀이되고 있는 장면들이다. 선거가 끝나면 대선 후보 캠프로 수백 장의 교통질서위반 범칙금 고지서가 날아왔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릴 정도다.
이 보좌관의 사망 사고 이후 박 후보 측뿐만 아니라 문 후보 캠프에서도 일정을 무리하게 잡지 않고 교통법규를 잘 지키겠다고 발표했다.
기자가 직접 각 후보들의 유세 차량의 뒤를 따라가 봤다. 특별히 과속이나 신호위반을 하는 차량은 없었다. 문 후보의 한 수행원은 “시내에서는 차량이 많고 보는 눈이 많기 때문에 바빠도 과속이나 신호위반을 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고속도로나 시외로 나가면 사정은 조금 달라질까. 박 후보의 보좌관들 유세차량을 운전하는 B 씨는 “교통법규 준수에 각별히 신경 쓰라는 주의를 들었다”면서도 “그렇지만 일정이 워낙 빡빡하다보니 고속도로나 시외에서는 속도를 내지 않으면 일정을 소화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무리한 일정이 이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지난 5일 박 후보는 호남 민심을 잡기위해 전라도 여수, 순천, 목포 등지를 돌았다. 박 후보는 오후 1시 전남 순천의 웃시장에서 유세를 펼친 뒤 오후 3시 20분에는 전남 목포역 앞 광장에서 지지를 호소할 예정이었다. 연설 시간을 제외한다면 2시간 안에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하는 일정이다.
그러나 이동 시간을 계산해본 결과 순천 웃시장에서 목포역까지는 규정 속도로 달릴 경우 2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사정은 문 후보도 다르지 않았다. 지난 11월 30일 문 후보는 경북 일대를 돌며 유세를 펼쳤다. 문 후보는 오후 2시 30분 포항시 죽도시장을 찾아 지지를 호소한 뒤 오후 4시까지 경산시의 영남대학교로 이동하는 일정을 계획했다.
그러나 규정 속도를 지키며 포항 죽도시장에서 영남대까지 이동한다면 1시간 2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런 무리한 일정을 정상적으로 소화하기 위해선 과속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이에 대해 문 후보의 캠프 관계자는 “이번 선거가 워낙 박빙으로 진행되다 보니 한 군데라도 더 찾아가 지지를 호소해야 하는 탓에 어쩔 수 없었다”면서 “최대한 교통질서를 지키며 이동할 수 있도록 신경 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속뿐만 아니라 대선 후보 유세차량으로 인한 교통체증도 시민들을 불편하게 한다. 대선 후보의 주변에는 보좌진을 비롯해 수행원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따라온다.
따라서 그들의 유세차량은 행렬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5일 유세에서 문 후보는 승합차와 중형차를 포함해 3~5대가 운행됐다. 전남을 찾은 박 후보는 최대 11대까지 열을 지어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후보의 유세차량들이 이동을 시작하면 수행원들이나 경찰이 길을 통제하고 유세차량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갑자기 발생한 교통체증에 뒤에 서있는 차들은 경적을 울려대고 그 주변은 잠시 일대 소란이 벌어진다.
택시기사 C 씨는 “대선 후보들이 선거 유세 한 번 올 때마다 시끄럽고 혼잡스럽다”며 “유세 차량들이 길가에 줄지어 서 있는 바람에 운행하기가 너무 불편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