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여기서 1번 선수는 SK텔레콤(SKT). 2번 선수는 KTF다. 또 100m는 아날로그인 1세대(1G), 200m는 디지털인 2세대(2G), 300m는 영상 위주인 3세대(3G·WCDMA·HSDPA)로 볼 수 있다. 최근 3G 이동통신을 둘러싼 SKT와 KTF의 ‘3차대전’의 앞과 뒤를 살펴봤다.
지난 4월 11일 밤, 문경 일대 KTF 가입자들의 통화 장애가 있었다. 갑작스런 이상을 감지한 KTF 직원은 기지국으로 출동했고 기지국에서 달아나는 차량을 발견했다. KTF 직원은 이를 경찰에 신고했고 범인은 SKT 통신망 유지보수회사 직원으로 밝혀졌다. 그는 KTF 기지국 급전선(안테나로 신호를 전달하는 케이블)을 풀고 달아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 날은 SKT가 3세대 이동통신 통화품질 평가기간 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문경 기지국 사건’ 전말이다.
SKT는 고의성이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KTF는 발끈하면서 검찰 고소 및 정보통신위 제소 등 법적대응에 들어갔다. 이 사건은 결국 김신배 SKT 사장과 조영주 KTF 사장의 화해로 일단락됐다. 이는 3세대 이동통신을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는 두 이동통신사의 현재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 3월 1일 ‘쇼(SHOW)’라는 브랜드로 3G 서비스를 시작한 KTF는 엄청난 물량공세를 펴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KTF는 지난 4월 17일 현재 쇼 가입자가 30만 7000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SKT의 3G 브랜드인 ‘3G+’ 가입자 20만여 명과의 격차를 점점 벌리고 있는 상황. 샴페인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다. KTF는 대리점 이름도 모두 쇼로 바꾸면서 기세를 올리고 있다.
KTF의 ‘화려한 쇼’는 일단 성공적이라 해도 아직 살얼음판이다. 3G 브랜드 인지도는 높아졌지만 비용이 적잖은 것. KTF는 1분기에 마케팅 비용 3691억 원을 쏟아 부었다. 전년 동기 대비 35.8%, 직전 분기 대비 26.2%를 더 썼다. 실적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가입자 1명당 152만 원을 썼다는 분석에다 ‘헛장사’라는 꼬리표까지 따라붙었다. 그럼에도 KTF는 공세의 고삐를 놓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조영주 사장의 말대로 “신 성장 엔진”이기 때문이다.
‘문경 기지국 사건’처럼 20년간 1등만 해온 SKT는 ‘역전 쇼’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는 모습이다. 최근 광고대행사(옥외)까지 바꾸면서 분위기 일신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편의점이나 버스 정류장 등에 3G+ 광고 창을 만든 것도 새로운 대행사의 작품이라는 것.
그러나 SKT의 고민은 더 ‘큰그림’ 속에 있다. 2G의 절대강자로 가만히 있어도 수익이 나는데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지출하면서까지 3G 전쟁에 먼저 나서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 그렇다고 ‘미래 동력’일 수 있는 3G에서 KTF의 질주를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 진퇴양난이다.
사용 주파수 대역은 SKT의 고민을 더 깊게 하고 있다. 3G는 2㎓, 고주파수 대역을 이용해야 한다. 그간 SKT는 800㎒, 저주파수 대역을 사용해왔다. 주파수는 낮으면 전파가 멀리까지 퍼져 기지국 수가 적어도 양질의 서비스가 가능하다. 때문에 SKT가 3G 서비스를 하려면 기지국 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 이 부분에서도 만만찮은 비용이 든다. 반면 KTF는 2G에서 이미 1.8㎓를 사용해왔다. KTF는 기지국을 증설하지 않고도 3G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식별번호도 010으로 해야 한다. SKT의 ‘011 프리미엄’도 사라지는 것이다.
때문에 SKT 입장에서 기존 2G를 개량한 2.5G로 유지하는 게 최선인 상황. 하지만 KTF가 영상을 앞세운 쇼로 3세대 전쟁에 불을 지르자 엉거주춤하게 됐다. ‘이미 3G+로 세상을 중계하고 있다’는 SKT의 캠페인은 먹혀 들어가고 있지 않다. ‘쇼’의 공세에 묻힌 데다 전반적으로 SKT의 3G 구호가 너무 어렵고 다가오지 않는다는 게 중평이다. 때문에 SKT는 벌써 두세 번 캠페인을 바꿨다. 그럼에도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과연 SKT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와 관련해 최근 SKT가 1조 원대의 ‘크리디트 라인(신용거래 한도, 마이너스 통장과 비슷)’을 외국계 은행에 개설해 눈길을 끈다. 이는 당장 쓸 수 있는 ‘실탄’을 마련했다는 의미. 기존의 마이너스 통장이 1조 원대고 현금 유동성을 확보한 게 1조 원, 여기에 마이너스 통장 1조 원을 더하면 SKT가 동원 가능한 현금은 3조 원 규모. 업계에서는 이의 사용처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이에 SKT의 ‘5월 대공세론’이 부상하고 있다. SKT가 그간 갈팡질팡했던 3G 시장에 대한 대응태세를 정리해 5월에 총반격을 취한다는 얘기다. 여기엔 마케팅 비용은 물론 저가폰에 대한 단말기 보조금 지급 등이 포함된다. 과거에도 SKT는 1조 원대에 달하는 단말기 보조금을 지급한 적이 있어 3조 원이 큰돈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무선 인터넷 기능을 뺀 ‘논 위피’ 저가폰 출시도 고려하고 있다. 여기엔 삼성의 고민과도 얽혀있다. 삼성은 SKT와 짝을 이루며 고가폰 전략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요즘 KTF가 뿌리는 3세대 폰은 ‘논 위피’ 사양의 저가폰. 주로 LG전자에서 납품한다. ‘쇼’의 공세가 SKT와 삼성의 관계에도 미묘한 기류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SKT는 ‘크리디트 라인’ 개설에 대해서 투자 목적보다는 재무안정성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지난 26일 SKT 최고재무책임자(CFO) 하성민 전무는 “비용을 효율적으로 쓰겠지만 시장 경쟁 상황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KTF가 주력하고 있는 3G 서비스와 관련해서는 가입자를 연말 150만 명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단 ‘5월 대공세론’이 힘을 받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SKT 측은 공식적으로 “5월 대공세는 없다”고 못 박는다. SKT 홍보 관계자는 “2G와 3G 두 개 망을 다 비중 있게 가져가면서 4G(세대)에 대비할 것이다. 3G에 올인할 계획도, 이유도 없다. 3G 가입자 목표를 KTF보다 낮은 150만으로 잡은 것도 적극적 대응은 하지 않겠다는 얘기”라고 밝히면서 마라톤을 예를 들었다. KTF의 초반 ‘오버페이스’에 말리지 않고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겠다는 것. 만년 2위의 1위 등극, 뒤처진 1위의 재반격. 최첨단을 걷는 대한민국 이동통신시장이 폭풍전야에 숨을 죽이고 있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