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엔 영혼에 관한 얘기가 배경음악처럼 흐른다. 소설은 줄곧 영혼을 얘기하지만 영혼 자체엔 별 관심이 없다. 영혼마저 물질이기를 바라는 현대인들의 물질만능주의가 관심사다.
‘역사는 변하지만 욕망은 변하지 않는다.’ 이 화두를 위해 1906년 청계천의 영혼결혼식과 2008년 금융위기, 리먼 브라더스 몰락과 당시 재무부 장관 헨리 폴슨을 소환하고 21세기 서울 옥인동 그랑호텔로 이어지는 120년의 시공간을 무대로 삼는다.
‘투숙객들’은 영혼을 영원불멸 대상이자 물질로 본다. 영혼이 존재한다면 내세가 존재하고 물질 소유 또한 영원하다고 믿는다. 월스트리트 역시 영혼이 있는지, 물질인지가 궁금했고 밀레니엄을 앞둔 1999년, 호주 원주민인 애버리지니 혼혈 소녀 엘라를 대상으로 섬뜩한 실험을 했다.
이 발단은 1906년 대한제국 때 청계천에서 한 미국인이 목격했다는 무당의 영혼결혼식이다. 문제는 영혼을 봤다는 사람은 있는데 물증이 없다. 비극의 시작이다. 실패한 이 영상을 구하기 위해 그랑호텔 이과수 대리가 뉴욕으로 출장을 떠난다. 이후 펼쳐지는 이 대리의 그랑호텔에서 마이애미 줄리아 모텔과 단양 도담삼봉 그리고 아르헨티나 산하비에르로 이어지는 긴 고뇌와 사유는 실존주의 인물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 5670세대에겐 성찰을, MZ세대에겐 분노와 저항을
‘그랑호텔’은 서촌이라 불리는 옥인동에 있는 옛 벽수산장이다. 친일파가 지었다가 없어진 건물이지만 소설에선 현존하는 건물이다. 친일파 건물과 현재의 기득권 주류로 상징되는 그랑호텔이 만나 투숙객들이라는 이너서클이 존재한다.
투숙객들은 이 사회를 만든 50대와 60, 70대 즉 5670세대 중 지금도 이 사회를 움직이는 ‘기득권 주류’를 가리킨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최적화된 이 체제를 바꿀 생각이 없으며 부의 연좌제가 이들 목표다.
부의 대물림에 따라 개인 삶의 질과 자존감이 결정되는 사회 역진화는 MZ세대의 허무와 사회에 만연한 극단적인 물질만능주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 소유 욕망과 불안은 사랑 결핍에서 온다
‘그랑호텔의 투숙객들’은 마술적 리얼리즘 소설이다. 장르소설의 추리와 스릴러적 요소, 본격문학이 갖는 깊이가 재미와 인문적 사유로 이어진다. 물질만능시대에 사랑을 통해 인간 소중함을 깨닫자는 게 소설이 하려는 궁극적 얘기다.
‘소유’인지 ‘존재’인지를 묻게 하는 이 주제는 에리히 프롬의 ‘소유와 존재’를 다시 생각하도록 만든다. 20년 전 헝가리의 문학이론가 지외르지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서문에 나오는 ‘심연의 그랑호텔의 투숙객들’이라는 관용구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작가는 극단적인 물질만능주의 대안으로 영혼이 아니라 사랑을 꼽는다.
사랑은 오랜 인류의 결핍이자 소망이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사랑은 성찰을 의미한다. 소설은 이 시대의 극단적 사고 흐름과 물질 만능이 인간 존재 자체를 무력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물질로부터 인간 스스로 자신을 구하자는 게 소설의 핵심 주제다.
김지영 기자 young@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