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3월, 구로시오초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일본 내각부가 ‘난카이 해곡에서 거대 지진이 발생할 시 피해 상정 지역’을 발표했는데, 그중에서도 구로시오초는 최대 34m의 쓰나미가 덮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은 단번에 열도 전역으로 퍼져나가 유명세를 탔다. 바다가 주는 혜택을 누리던 마을은 하루아침에 ‘일본에서 제일 위험한 마을’로 뒤바뀌었다.
2015년 조사에 따르면 “구로시오초 주민들의 이주가 예상돼 2025년에는 마을 인구가 약 20% 감소할 것”이라는 추계도 나왔다. 그러나 예측과 달리, 구로시오초에는 여전히 약 1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와 관련,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역경을 발판으로 삼은 방재 산업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통조림 업계는 대기업 브랜드가 압도적으로 강한 것이 현실이다. 구로시오초의 통조림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도모나가 씨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재해지에서 목격한 광경을 원점으로 삼았다”고 전했다. 가령 “알레르기 때문에 비상식량을 먹지 못해 죽을 지경까지 몰렸다” “영양소 부족으로 구내염이 생겨 고통스러웠다” “아이에게 단것을 먹이고 싶었다” 등등 이재민의 절실한 목소리에 부응하고자 ‘알레르겐(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물질) 프리’와 ‘진수성찬의 맛’을 추구하는 데 주력했다.

통조림 제작소는 방재의식을 한층 높이는 데도 도전하고 있다. 이른바 ‘도망쳐 통조림’ 프로젝트다. ‘흔들리면 보다 빨리, 보다 안전한 곳으로 도망치라’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도록 캔 디자인을 크게 바꾼 제품을 조만간 출시할 예정이다. 도망치라는 글자와 함께 비상구 마크로 친숙한 달리는 사람 픽토그램을 그려 넣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직후 쓰나미의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16m의 쓰나미가 밀어닥쳤던 이와테현 미야코시 다로 마을은 평소 높은 방조제 공사로 지진 대비를 해왔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쓰나미는 이중으로 설치된 방조제를 차례로 넘어 마을을 초토화했다. 고지대로 신속하게 대피하지 못해 인명 피해는 더욱 컸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구로시오초 마을은 평상시는 바다와 공생하고, 비상시에는 ‘피난 포기자 제로(0), 희생자 제로’를 목표로 전원이 고지대로 대피하는 훈련에 임하고 있다. 해안가를 따라 하늘 높이 거대한 방조제를 짓는 대처는 멈췄다. 방조제가 쓰나미를 100% 막아내지 못할뿐더러 마을의 자랑이기도 한 아름다운 해안선을 남기기 위해서다.
대신 구역마다 주민이 주체가 되어 방재 계획을 짜고 대피 훈련을 착실히 반복한다. 일례로 고지대로 대피하기 곤란한 장소에는 쓰나미 피난 타워를 건립했다. 총 6곳에 마련됐는데, 특히 하마마치 지구에는 있는 쓰나미 피난 타워는 8층 규모의 건물로 일본 최대급이다. 이를 견학하기 위해 외부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피난 타워 계단은 쿠션 소재를 활용했고, 슬로프(경사로)가 설치돼 있어 장애인 휠체어 이동도 자유롭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의하면 “하마마치 지구의 주민들은 70대 이상 고령자가 많지만, 대피 훈련 참가율이 높다”고 한다. 건강을 위해 타워로 매일 산책하러 오는 고령자도 적지 않다. 한 고령자는 “항상 이용하면 막상 지진이 닥쳤을 때도 자연스럽게 올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행정 시찰과 탐방을 제외하고, 2024년에만 유료로 구로시오초 방재 프로그램에 참여한 외부인은 1000명을 넘어섰다. 올해 2월에는 벤치마킹을 위해 한국과 말레이시아, 몰디브 등 해외 방재기관 연구자들도 시찰을 왔다고 한다. 방재를 문화로, 또 산업으로 일상에 뿌리내리게 하려는 대처는 많은 지역에서 힌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