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선 풀려난 윤 대통령이 지지층을 향해 “싸우자”는 취지의 목소리를 낼 것으로 점쳤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정중동 행보를 보이는 모습이다. 헌법재판소는 물론, 중도 민심을 자극하지 않는 여론 다스리기 전략으로 풀이된다. 여당 지도부도 예상과 달리 광장과의 거리두기에 나섰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독자 판단으로 보는 정치권 인사들은 거의 없다. 윤 대통령의 관저 정치 연장선이라는 것이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윤석열 대통령 측은 2월 4일 “구속기간이 지난 뒤 이뤄진 위법한 구속기소”라고 주장하며 법원에 구속 취소를 청구했다. 윤 대통령 측은 “구속영장에 따른 윤 대통령 구속 기한은 1월 25일 밤 12시”라며 “구속기소가 이뤄진 1월 26일은 구속 기간이 지났다”고 주장했다.
형사소송법은 체포적부심사나 영장실질심사 등을 위해 법원이 수사 관계 서류와 증거물을 접수한 때부터 결정 후 검찰청에 반환할 때까지의 기간을 구속기간에 산입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검찰은 통상과 같이 이 기간을 일수 단위로 계산, 1월 27일까지를 구속기간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하루 전인 1월 26일 윤 대통령을 기소했다.
그러나 공제 기간을 시간 단위로 계산해야 한다는 게 윤 대통령 측 논리였다. 윤 대통령 측은 이와 함께 “사안의 본질에 있어서도 비상계엄이 내란이 될 수 없다”면서 청구 이유를 덧붙였다. 구속 사안 실체와 절차 모두를 문제 삼은 셈이다. 법원은 3월 7일 윤 대통령 측 주장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였고, 윤 대통령은 다음 날 석방됐다.
법조계는 물론, 율사 출신들이 즐비한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윤 대통령 구속 취소 청구에 대해 관심을 두는 사람이 없었다. 구속 취소 청구 사례가 극히 적을 뿐 아니라 인용 가능성도 매우 낮기 때문이었다. 심문기일조차 잘 잡지도 않고 바로 기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는 심문기일을 잡아 심문을 진행했고, 야권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가 도출됐다.
법조인 출신 국민의힘 한 의원은 “윤 대통령은 오랜 검사 생활을 한 법률 전문가다. 수사기관의 편의적 강제 수사에 대한 허점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국정농단 사건 수사팀장이었으니 대통령 탄핵에 대해서도 굉장히 자세하게 들여다본 터라 구속이라는 힘든 상태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의 허점을 찔렀다”고 평가했다.
윤 대통령의 허 찌르기는 석방 이후에도 이어졌다.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석방 직후 지지층 결집을 위해 격하고 강한 메시지, 특유의 ‘어퍼컷’을 연이어 날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으로 석방된 윤 대통령은 3월 8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걸어 나오면서 오른손을 들어 흔들고 주먹을 쥐어 보이며 지지자들 환호에 응답했다. 이를 본 더불어민주당은 “개선장군이냐”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는 3월 11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 “(윤 대통령은)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하고 쌍으로 같이 어퍼컷 할 것”이라며 “거기에 관저 정치,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경선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 식의 행보를 할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정반대 스탠스를 보였다. 윤 대통령은 석방 후 특별한 정치적 발언 없이 관저에 머물고 있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것도 명확한 정치적 메시지라는 게 정가의 인식이다. 윤 대통령이 석방 후 ‘조용한’ 전략으로 선회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이 변했다” “사회통합 행보에 나섰다”라는 여론을 조성, 헌법재판소와 중도 진영을 잡아보겠다는 시도로 읽힌다.
석방 이후 국민의힘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윤 대통령을 찾는 발걸음도 거의 없다. 지도부와 중진 몇 명 정도만 왔거나 통화를 했을 뿐이다. 석방 직후인 3월 8일 당 지도부와 나경원 윤상현 의원 등과 통화했고, 3월 9일에는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와 만나 30분간 차담을 했다.
“윤 대통령이 실제로 변했고 더욱 신중해졌다”는 의견도 나온다. 조해진 국민의힘 전 의원은 3월 12일 YTN라디오 이슈앤피플에 나와 “윤 대통령이 많이 바뀐 것 같다”며 “민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민심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알고 윤 대통령이 어떻게 해야 지지를 받는지도 알게 된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놨다.

3월 11일 국민의힘 의원총회는 큰 관심을 끌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윤 대통령 석방이라는 의외의 결과를 맞이한 이후 탄핵을 촉구하며 장외 투쟁에 돌입한 터라 국민의힘에서도 강경 맞대응이 나올 것으로 점쳐졌다. 하지만 정치권 인사들은 또 허를 찔렸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야당에 대한 정면 대처를 하지 않고, 지금까지 펴온 원내 대응 기조를 유지하기로 하면서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3월 11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를 마친 후 기자들에게 “민주당이 국회의 본령인 민생과 경제를 내팽개치고 오로지 장외 정치 투쟁에 몰두하는 데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면서 “지도부는 지금과 같은 기조를 유지하기로 결론을 내렸고 의원님들께서 양해해주셨다”고 말했다.
권 원내대표는 “특별히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단체 행동을 하겠지만, 각종 회의를 통해서 우리 입장을 밝히고 민주당처럼 저렇게 장외 투쟁을 하거나 단식을 통해서 헌법재판소를 압박하는 그런 행동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권 원내대표는 당 일부 의원들이 헌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로 한 것에 대해 “각자의 소신과 판단에 따라서 한 부분”이라며 “지도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권한도 없고 거기에 대한 지침을 줄 생각도 없다”고 답했다.
이날 비공개 의총에서는 장외 투쟁 여부를 놓고 강경 입장도 쏟아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윤상현 의원은 의원직 총사퇴 결의 후 탄핵 심판 선고가 나올 때까지 헌재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이자고 주장했고, 조배숙 박대출 강승규 임종득 의원도 당 차원의 강경 대응을 촉구했다.
그러나 공개된 내용은 정반대였다. 여당 지도부는 광장 정치와의 거리두기를 재확인했다. 당 지도부는 ‘자율적 결정’이라는 입장이었지만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의 묵시적 승인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윤 대통령의 ‘관저 정치’가 작동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구속 취소 이튿날인 3월 9일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국민과 나라만 생각하겠다”면서 당과 의원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한 것으로 3월 11일 전해졌다. 이런 대화 속에서 당 지도부가 윤 대통령의 내심을 읽었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추정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3월 11일 의원총회에서 윤 대통령과의 관저 면담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윤 대통령이) 다행히 건강해 보였다. ‘난 괜찮다, 오로지 국민과 나라만 생각하겠다’고 하면서 아주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셨다”고 전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탄핵소추안에 대한 기각 판정이 3월 13일 줄줄이 나오면서 여당의 기세가 오름세를 보였지만, 당 지도부는 단체 행동에 대한 신중한 모습을 전혀 바꾸지 않았다. 개별적으로 탄핵 각하를 촉구하며 거리 정치에 참여하는 여당 의원들이 점차 늘어났을 뿐 민주당 장외 투쟁을 비판하면서 원내 정당 모습을 강조하는 지도부의 기조는 변화하지 않았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석방 후) 절제하는 윤 대통령, 그리고 장외투쟁은 안된다면서 여당 지도부가 이에 동조화하는 것은 1호 당원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각각의 판단이 아닐 것”이라며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을 이끌어내는 한편 최악의 경우가 닥쳐 조기 대선이 이뤄지면 중도 민심을 잡아 정권 재창출을 이뤄내겠다는 일체감 있는 여권 전체의 큰 그림”이라고 해석했다.

국민의힘은 최근 자신감에 찬 모습이 역력하다. 지도부 모습을 보면 밝은 얼굴까지 비쳐진다. 윤 대통령이 구속 중이었던 때와는 완전히 달라졌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참담한 지경에까지 이르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위기관리 능력이 발휘됐다고 내부 구성원들은 평가한다. 3월 13일 민주당 주도로 추진됐던 탄핵 소추 심판이 줄줄이 기각되자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내친 김에 윤 대통령 탄핵 기각까지 바라보는 중이다.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은 여론의 향배를 볼 수밖에 없는, 정치적 성격을 가진다. 이를 근거로 여권 일각에선 중도 민심이 줄탄핵을 밀어붙였던 야권에 대해서는 피로감을, 여권에 대해서는 동정심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와 비교할 때 박 대통령은 스스로 버티는 힘이 많이 모자랐지만 윤 대통령은 여권의 구심점 역할을 여전히 할 만큼 강하게 지탱해왔다는 점에서 당의 축이 굳건하다는 게 여당 평가다. 이런 여파로 인해 찬탄(탄핵 찬성)파가 존재했지만 당은 분열되지 않았다. 찬탄파의 존재감은 물론, 찬탄 대표 주자들의 모습도 당내에 자리하기 어려울 만큼 당이 1호 당원 윤 대통령 중심으로 뭉치고 있다고 복수의 의원들은 입을 모았다.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높게 형성되고 시간이 갈수록 헌법재판소 신뢰도가 낮아지는 수치가 나오는 것도 여당의 어깨를 으쓱하게 하는 부분이다. 여세를 몰아 탄핵 기각, 윤 대통령 복귀라는 해피엔딩으로 계엄 정국을 마무리하겠다는 구상을 내놓는 의원들도 조금씩 나온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윤 대통령이 관저 정치를 한다는 말도 나오지만 지금 상황은 관저 정치가 아니라 이심전심 정치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것”이라며 “윤 대통령이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는지는 여당 구성원들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안다. 넘치는 모습을 자제하고 서로 눈으로 소통하면서 여당다움을 보여주려고 여권 전체가 노력하는 장면”이라고 주장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