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이대로 괜찮은 걸까. 위기는 어느 정도 현실화했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3월 13일 오전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IT융합연구소 소장실에서 국내 대표적인 반도체 석학 중 한 명인 유회준 카이스트 AI반도체대학원장(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 카이스트 PIM반도체설계연구센터장)을 만났다. 다음은 유회준 대학원장과의 일문일답.
#한국 주력 메모리반도체, 긴장감 더해지는 이유

“상당한 위기 상황이라고 본다.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는 20년 전부터 위기였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먹고 살아온 D램 등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도 긴장감이 더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와 파운드리 사업을 모두 펼치는 삼성전자가 큰 위기 상황을 맞았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의 HBM(고대역폭메모리)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범용(레거시) D램 등 메모리 반도체 기술력에서 중국이 정말 한국의 발밑까지 쫓아왔나.
“범용 메모리 반도체 기술력만 놓고 보면 중국이 한국보다 최소 5년 정도 뒤처져 있다고 판단한다. 중국은 같은 품질로 대량으로 물량을 찍어내는 양산 기술이 부족한 상황이다. 다만 충분히 위협적이다. 중국은 정부로부터 막대한 보조금을 받으며 성장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내수 시장으로 먹고살면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영향력이 외부로도 확장될 수 있다.”
―중국은 한국이 주도하고 있는 HBM(고대역폭메모리) 연구를 늘리고 있다. HBM 시장에서도 중국의 추격은 위협적인가.
“반도체 업계에선 HBM을 ‘제품’이 아니라 ‘작품’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난도가 높은 기술이라 양산하기가 더욱 어렵다. 중국 기업들이 흉내를 내고는 있지만 아직은 위협적이지 않다고 본다.”
―그렇다면 HBM으로 상당한 매출을 올리고 있는 SK하이닉스는 우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현재 AI 반도체 시장은 엔비디아의 GPU(그래픽처리장치)와 SK하이닉스의 HBM 조합이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AI ‘딥시크’가 나오면서 GPU와 HBM 조합이 아니어도 된다는 점을 보여줬다. PC용 CPU(중앙처리장치)에 집중했던 인텔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시장에서 퀄컴에 밀려 무너졌다. 엔비디아의 아성이 3~5년 안에 무너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메모리 반도체는 범용 제품에서 전용 제품으로 바뀔 것이다. GPU보다 전력 소모가 적은 NPU(신경망처리장치) 등의 비메모리 반도체, HBM보다 성능이 낮고 사용이 편리한 ‘커스터마이즈(맞춤형) 메모리 반도체’가 나올 것이다. 커스터마이즈 메모리반도체에 대한 기술력을 끌어올리고 고객사와의 소통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20년 전에도 위기였다
―엔비디아 아성이 3~5년 안에 무너진다면,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도 우리나라가 기회를 잡을 수 있나.
“비메모리 반도체가 위기라는 말이 나온 20년 전과 상황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 팹리스 중 연 매출이 1000억 원 이상 되는 곳은 거의 없다. NPU 설계 스타트업은 퓨리오사AI, 리벨리온 정도다. 지금 같은 상황이면 3~5년 후 이 업체들이 시장을 주도한다고 보기 어렵다. 일단 투자가 부족하다. 최근에 퓨리오사AI는 펀드레이징(모금)이 어려워 메타 인수설이 돌기도 했다. 중국엔 캠브리콘 등 NPU를 개발하는 업체들이 상당히 많다. 정부 주도의 데이터센터에 국산 NPU를 넣어 레퍼런스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렇다. 똑같은 공정이라도 TSMC보다 삼성전자의 성능이 30%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온다. 패키징도 TSMC가 HBM 마지막 공정을 거의 책임지고 있어 TSMC와 삼성전자가 100 대 0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TSMC와 삼성전자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마음가짐의 문제다. TSMC는 죽기 살기로 임한다. 고객의 니즈를 맞추기 위해 고객사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한다. 반도체 장비 기업 ASML에 EUV(극자외선) 장비와 관련해 핵심 아이디어를 TSMC가 제공하기도 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내심 ‘우리는 세계 최고다’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삼성전자에서는 직원들이 일을 두루두루 알지 못하고 자기에게 분배된 일만 한다고 한다. 직원이 해외로 나가면 기술이 유출될까봐 이런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하는데 내부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보는 분위기다.”
#한국 팹리스, 세계시장에 초점 맞춰서 일해야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에서 주도권을 갖지 못하는 데는 환경적인 요인이 클까.
“대만은 TSMC가 정점에 있고 인력 양성부터 모든 시스템이 연계돼 있다. 미국에 많이 진출해 있는 대만 출신 엔지니어들이 정보를 빨리 입수하고 보조를 맞추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래아한글’을 개발하듯이 움직인다. 우리나라의 팹리스 업체들은 삼성전자나 LG전자에 납품하면 성공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국내 시장에만 초점을 두고 추후 세계 시장에 갈 수도 있겠지만, 그러려면 아주 첨단 기술을 개발해야만 한다. 우리나라 업체들은 마인드가 너무 조그맣다.”

“온디바이스 AI 시장은 향후 데이터센터용 AI 시장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기업 중심으로 온디바이스 AI를 대비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가전을 중심으로 AIoT(인공지능 기반 사물 인터넷) 시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응용하는 단계까지 오지는 않았다.”
―반도체 인재 양성은 문제없이 이뤄지고 있나. 대학 현장에서 느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삼성전자와 세운 계약학과인 카이스트 반도체시스템공학과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점점 줄고 있다. 삼성전자가 위기라고 하니 학생들도 흔들리는 것이다. 매년 100명 정도의 학생들을 모집하려고 했지만 못 채우고 있다. 2023년에 개원한 AI반도체대학원은 정원이 30명이라 미달되지는 않는다. 다만 해외로 눈을 돌리는 학생들이 많다. 결국 국내 기업들이 반도체 인력들 대우를 높게 해줘야 한다.”
―끝으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 한마디를 하자면.
“중국에 아예 추월당하지 않은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중국에 가보면 깜짝 놀랄 거다. 중국 반도체 열기가 굉장히 뜨겁다. 중국에서 젊은 사람들도 반도체 산업에 많이 붙어 있다. 중국에 따라잡히면서 이 골든타임이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다. 특히 올해 삼성전자는 HBM 등 분야를 막론하고 반전을 보여줘야 한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