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와(왼쪽) 문재인 |
이런 가운데 박근혜 후보가 우세할 것이라는 여론조사 예상과는 달리 여의도 정가 일각에서는 “분위기는 이미 문 후보 쪽으로 기울었다”는 전혀 상반된 주장도 터져 나오고 있다. 공표되고 있는 여론조사가 야권 성향 지지층의 표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근거해서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대체로 박근혜 후보의 우세를 예상하고 있는 가운데, 그 밑바닥에서 움직이고 있는 여론조사 사각지대의 숨은 표심을 집중 추적해봤다.
지난 13일과 14일, 주요 일간지와 지상파 방송 및 종편에서는 일제히 마지막 대선후보 여론조사 지지율을 발표했다. 결과는 16:1로 박근혜 후보의 승리가 점쳐졌다. 유일하게 <한국일보>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발표한 여론조사만 박근혜 후보 44.9%, 문재인 후보 45.3%로 문 후보가 0.4%P 앞섰다.
이 같은 결과를 받아든 새누리당 캠프 에서는 비교적 침착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장탄식을 숨기려는 모습이다. 선거운동 초반 ‘200만 표차 승리’를 거론하던 것과 대조적이다. 실제 선거운동 초반 여론조사 지지율 50%를 넘어 대세론 굳히기에 들어갔던 박근혜 후보는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최저 42.8%(문화일보-코리아리서치)에서 최고 48.9%(SBS-TNS)까지 ‘박스권’ 안에 갇혔다. 12월 6일 이후 안철수 전 후보의 유세 지원으로 밴드왜건 효과(가능성 높은 후보에게 표가 쏠리는 현상)까지 사라지면서 지지율 상승 동력을 잃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새누리당 조직총괄본부 한 관계자는 “당 지도부에서는 박 후보가 수도권에서 50%를 넘지 못한 것, PK와 충청권에서 문 후보와 격차를 벌리지 못하고 있는 것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실제 역대 대선에서 당선된 후보들은 마지막 여론조사 당시 서울에서 모두 50%를 넘긴 전력이 있다(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 51.3%, 이명박 대통령 53.2%). 새누리당에서는 수도권 표심이 야권 성향이 강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박 후보가 선전했다고 자평했지만 내심 수도권 표심을 기대한 눈치다. 이 때문에 캠프 일각에서는 “박 후보가 상대적으로 표가 없는 호남 지역에 너무 공을 들였다”는 뒤늦은 불만도 나오고 있다.
▲ 박 후보가 우세할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와는 달리 정가 일각에선 “분위기는 문 쪽으로 기울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진제공=문재인 |
캠프에 소속된 새누리당 한 정책보좌관은 “실제 당내 자체 여론조사에서 박 후보가 문 후보에게 뒤진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라면서도 “여의도연구소는 자체 조사결과를 놓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분석한다. 예를 들어 당일 조사에서 무응답층(부동층)이 10%로 나왔다면 그 가운데 70%는 야권표, 나머지 30%는 여권표로 적용해 전체 득표를 계산해 보는 방식 등이다. 이 과정에서 박 후보가 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 것 같다”라고 전했다.
최근 이런 새누리당 일각의 승리 적신호는 박근혜 후보에게까지 직보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14일 새누리당 캠프에서는 박근혜 후보의 유세 일정을 이례적으로 일찍 발표했는데 경남→대전→서울을 도는 강행군 일정을 내놓아 캠프에 막판 비상이 걸린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왔다. 그런가하면 당일 기자회견 일정을 추가한 뒤 당사에 모습을 드러낸 박 후보는 결연한 자세로 “저는 오늘부터 흑색선전과의 전쟁을 선포합니다”라며 민주당 공세에 제동을 거는 등 ‘전면전 양상’을 띠고 있다.
반면 민주통합당 캠프는 ‘분명’ 지지율이 뒤처지고 있음에도 “이미 이기고 있다”라며 승리를 자신하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당내에서는 ARS를 활용한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와 ‘리서치뷰’ 지지율에서 두 후보 차가 거의 없거나 오히려 문 후보가 앞서는 현상을 주목하고 있다.
실제 지난 12일 리얼미터와 <헤럴드경제>의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후보(47.8%)와 문재인 후보(47.7%)의 지지율 차가 0.1%P로 승부가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는 최근 기자와의 만남에서 “두 후보의 차이가 5.1%P(9~10일 조사)까지 벌어졌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이를 따라잡기는 무리가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밝혔지만, 마지막 여론조사 이후 통화에서는 “문재인 후보의 역전 가능성이 조금은 높아졌다”라고 전했다.
민주통합당 시민캠프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현재 문 후보와 박 후보와의 지지율 차이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안철수 전 후보의 지원 유세가 여론조사 결과에 늦게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가 임박할수록 부동층 대부분이 문 후보 쪽으로 쏠리면서 주말을 기점으로 ‘골든크로스’(단기 이동평균선이 중장기 이동평균선을 아래에서 위로 돌파하는 것을 뜻하는 주식시장 용어)될 것”이라고 밝혔다.
리서치뷰 결과는 한 발 더 나간다. <오마이뉴스>와 함께 발표한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리서치뷰는 지난 4월 총선 투표자 수 비율로 결과를 보정하면 박 후보가, 2010년 지방선거 비율로 보정할 경우 문재인 후보가 앞선다는 ‘희한한’ 데이터를 발표한 것이다. 리서치뷰 안일원 대표는 지난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비서실 행정관을 거쳐 지난 17대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 캠프에서 활동한 야권 인사다.
안 대표는 “이제 여론조사기관도 조사 자체의 편향성을 인정하고 이를 적극 수정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답을 구해야 한다”라고 강변했다. 이어 안 대표는 “이번 대선은 지난 4월 총선보다 2010년 지방선거의 흐름으로 갈 가능성이 많다. 지난 4월 총선 투표자 가운데 40대 이하와 50대 이상의 비율은 52.3 : 47.7이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55.1 : 44.9다. 대선의 경우 투표율이 높고 젊은 세대의 참여 역시 많아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며 “우리 결과는 대선 투표율을 적극 고려해 실제와 가장 근접한 결과다”라고 자평했다.
반면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여론조사의 경우 유권자 비율대로 결과를 발표하면서 사실상 투표율 100%를 가정하고 조사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문 후보가 역전하지 못하고 있는데 투표율 70%를 넘으면 무조건 이긴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나올 변수는 다 나왔고 숨은 야권표도 별로 없는 상황이다”라고 진단했다.
전재남 더아이엠씨 대표는 “현재 나오는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지역별로는 수도권, 세대별로는 40대 표심이 아직 많이 숨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라며 “결국 이들의 ‘숨은 표심’은 SNS와 같은 온라인을 통해 알아볼 수밖에 없는데 12월 초 안철수 전 후보 합류 이후 SNS 분석을 한 결과 박 후보가 상당히 뒤처지고 있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라고 전했다. 전 대표는 “SNS 사용자들은 야권에 편향돼 있어 실제 민심과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 많다”는 기자의 질문에 “최근 그 양으로 보면 보수 성향의 이용자들이 결코 밀리지 않았다. 그런데 특정 사안, 예를 들어 TV토론과 같은 이슈 이후 두 후보에 대한 평가를 분석하면 박 후보의 평가가 좋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일각의 불신과 그것을 해석하는 ‘온도차’ 때문에 국민들도 옳은 판단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이번 대선 결과에 따라 여론조사기관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인식이 일정 부분 달라질 것으로도 보인다.
사회조사분석사 송 아무개 씨는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 선거 이후 메이저 여론조사기관들은 KT등재 조사 방식(집전화)을 폐기처분하고 대부분 RDD(유·무선전화 임의번호 걸기) 방식을 도입했는데 이는 미국과 비교하면 한참 더딘 발전이다. 최근 미국 대선에서 ARS와 전화면접을 통한 여론조사보다 신뢰 높은 데이터로 평가받은 것이 빅데이터 분석과 온라인 여론조사다”라며 “지금까지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 대부분이 박 후보의 우세로 나오고 있지만 그것은 오차범위를 전후한 접전 양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막상 문 후보가 이긴다면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여론조사기관들의 궤도수정이 불가피할 것 같다”라고 전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17%P 차 진다”→ 5%P 차 승리도
여론조사기관들의 지지율은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여론을 읽는 창으로 각광을 받아왔다. 관련 종사자들은 변수가 많은 총선에 비해 지방선거와 대선에서는 좋은 역할을 보여줬다고 자평한다.
하지만 2010년부터 헛발질이 계속되면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도 한다. 2010년 6·2 지방선거는 ‘여론조사 무용론’이 제기된 대표적 선거였다. 선거 당일 공중파 3사는 출구조사로 당선자들을 정확히 예측한 반면, 전화조사로 당선자 예측을 시도했던 YTN, MBN 등은 예측 실패로 시청자에 대한 사과방송을 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 중 기관들이 가장 가슴 졸였던 순간은 서울시장 선거의 결과 발표 때였다. 당시 전화로 실시된 모든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와 민주당 한명숙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20%P 차가 나면서 오 후보의 당선은 기정사실화됐다. 선거 당일 발표한 예측조사조차 오세훈 후보가 10%P 차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개표결과는 오세훈 후보 47.4%, 한명숙 후보 46.8%, 득표율 차이는 고작 0.6%P에 불과했다. 일각에서 여론조사기관들이 오세훈 전 시장을 위해 여론조사를 조작해 당선을 도왔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듬해 4·27 강원도지사 보궐선거 역시 메이저 여론조사기관들은 수모를 겪어야 했다. 마지막 여론조사 공표 금지 직전 TNS에서는 14.2%P, 코리아리서치는 17%P까지 최문순 지사가 엄기영 후보에 뒤처지는 것으로 나왔지만 일주일 뒤 실제 결과에서는 최문순 후보가 5.1%P차로 승리했기 때문.
한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는 “강원도지사 선거의 경우 억울한 면도 있다.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 이후 엄기영 후보의 ‘불법 콜센터 사건’이 터지면서 여론이 심하게 요동쳤고 당시 여론조사기관 역시 최문순 후보가 격차를 좁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선거법 때문에 이야기를 못하던 상황이었다”라고 설명했다.
2011년 실시된 10·26 서울시장 보궐 선거 역시 혼란스러웠다. 각종 언론매체에서 하루는 나경원 후보가 앞서고 그 다음날은 박원순 후보가 앞서는 결과를 발표하면서 도대체 누가 이기고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같은 날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가 서로 다른가 하면, 동일한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에서 사흘 만에 지지율 순위가 뒤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박원순 후보가 무려 7.2%P 차로 승리했다.
앞서의 관계자는 “당시 여론조사 방식을 보면 KT등재 방식으로 조사하면 나경원 후보가, RDD 방식으로 박원순 후보가 이기는 것으로 나왔다. 결국 이 선거 이후 KT등재방식이 공식 폐기됐다”라며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RDD 방식이 정착되면서 과거와 같이 크게 예측이 빗나가는 일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