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이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을 제기한 가운데 12일 민주통합당 당직자들과 기자들이 국정원 여직원 김 아무개 씨가 거주하는 서울 강남구의 오피스텔 현관문을 지키고 있다.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결국 양측이 서로를 고소하면서 그 수사 결과에 따라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난 쪽은 치명타를 입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여야 간 사활을 건 진실 공방전으로 확전되고 있는 ‘국정원 여직원 사건’의 비공개 X파일을 들춰봤다.
민주통합당이 국정원 3차장 산하 심리정보국과 관련된 제보를 받은 것은 지난해 연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민주통합당은 ‘국정원이 2011년 11월 해외 파트 담당 3차장이 관할하는 대북 심리전 담당 부서를 심리정보국으로 격상시키고 그 안에 국내 업무를 담당하는 팀을 신설했다’는 내용을 확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팀 직원들이 정치 현안에 대해 인터넷 등에 글을 띄우거나 댓글을 달아 왔다는 게 민주통합당의 주장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 여직원’ 김 아무개 씨 역시 이 팀 소속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당 제보를 최초로 받은 민주통합당 P 의원은 국정원 내부를 비롯한 여러 채널을 가동해 확인 작업을 벌였지만 별다른 성과를 올리진 못했다고 한다. P 의원실 관계자는 1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대북 정보 업무를 맡고 있는 3차장 밑에 국내 정치·사회 부문이 만들어졌다는 얘기를 듣고 의아하게 여겨 체크해봤던 건 사실이다. 존재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졌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인 물증을 찾는 데 실패했다”고 전했다. 그 후에도 P 의원은 자체 정보망을 가동해 꾸준히 심리정보국 실체에 대해 수소문을 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P 의원이 심리정보국에 대해 재차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본격적인 대권 레이스가 시작될 무렵인 지난 10월경이다. 이곳 직원들 중 일부가 국정원 외부 모처에서 대선 후보들에 대한 내용이 담긴 댓글을 주요 인터넷 사이트 등에 게재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앞서의 P 의원실 관계자는 “이들이 문 후보와 안철수 전 후보 등 야권 주자들에게 불리한 글을 ‘집중적으로’ 올리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국정원이 특정인(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을 당선시키기 위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다고 판단, 총력을 기울여 확인에 나섰다”고 귀띔했다.
P 의원을 주축으로 심리정보국 직원들의 선거개입 여부 진상을 쫓던 민주통합당의 움직임이 분주해진 것은 12월 초 김 씨와 관련된 제보를 받으면서부터다. 문재인 캠프와 민주통합당 몇몇 당직자들은 김 씨 신병과 행적 등에 대해 추적에 들어갔고, 결국 12월 11일 김 씨를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김 씨를 미행해 강남구 역삼동 소재 S 오피스텔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과정에서 민주통합당 관계자들은 김 씨가 살고 있는 정확한 호수를 알아내기 위해 주차돼 있는 김 씨 차를 일부러 들이받은 뒤, 경비원에게 “접촉사고가 났으니 차 소유주 집을 알려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민주통합당은 김 씨가 이곳에서 문 후보에 대한 비방 댓글을 달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 국정원 전경 |
문재인 캠프 우상호 공보단장은 “문제의 국정원 직원 신원과 그 사무실 컴퓨터가 확인돼 있는 만큼 경찰이 IP주소를 추적하는 것은 몇 시간이면 된다”면서 “우리는 해당 직원의 활동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분들도 이미 확인하고 있다”며 추가 내용을 확보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홍영표 캠프 종합상황실장도 “김 씨가 지난 한 달간 오피스텔에서 오후 2시 이후로 근무했다는 것을 경찰이 확인했다. 국정원 내규에는 직원이 숙소에서 근무할 수 없다고 돼 있다. 무슨 이유로 직원이 오피스텔에 가서 근무했는지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홍 실장은 “국정원이 정말 떳떳하고 결백하다면 정확하게 진상을 밝히면 된다”고 촉구했다.
또한 민주통합당은 경찰이 국정원의 눈치를 보며 수사를 ‘미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이 굳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지 않더라도 긴급 통신 사실 확인자료 요청을 할 수 있는 데도 계속 미루고 있어 논란을 키웠다는 것이다.
이러한 민주통합당 공세에 대해 국정원은 “사실과 다르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정원은 “정치적 중립을 철저히 지키고 있는 국정원을 민주당이 근거 없이 중상모략하고 있다”며 민주당의 사과와 책임자 문책을 요구하는 동시에 형사고발 및 손해배상 청구 등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힌 상태다. 원세훈 국정원장 역시 13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김 씨가 국정원 3차장 산하 심리전단 소속 직원인 것은 맞다”면서도 국정원의 대선 개입 및 여론조작 활동에 대해선 일축했다. 이어 원 원장은 ‘문재인 후보 측이 정권 획득을 위해 선거공작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고 “그렇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도 변호인과 국정원 대변인 등을 통해 자신의 자택 앞을 지키고 서 있던 민주당 관계자들을 고소했다. 감금 및 주거침입 혐의다. 김 씨는 향후 민사상 손해배상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액수를 산정해 책임을 물을 계획이다. 김 씨는 기자들과의 통화를 자청해 “국정원 직원으로 중립을 지키고 있으며 대선과 관련해 어떤 글도 인터넷에 남긴 적이 없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대응과는 별개로 국정원은 민주통합당 측에 자료를 건네 준 내부 ‘빨대’를 찾기 위해 감찰을 진행 중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내부 조직개편 및 인원 현황 등에 대해 민주통합당이 상세히 알고 있는 것으로 봐서 내부에서 제보자가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전했다.
민주통합당과 국정원 간의 치열한 공방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견해는 분분하다. 김 씨가 이틀 동안 집 안에서 버티다 국정원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오피스텔에서 빠져나간 점, 김 씨의 근무 현황, 경찰의 소극적인 수사 태도 등을 놓고 “진짜 뭔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반면, 민주통합당이 ‘오버’를 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김 씨 활동에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으로서는 당연한 문제 제기를 한 것”이라면서도 “경찰 수사가 시작됐는데도 이를 계속 대선 쟁점으로만 부각시키려는 민주통합당도 논란을 키우고 있다. 또한 김 씨 개인에 대한 인권 침해 가능성도 고려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민주통합당과 문재인 캠프 역시 마찬가지 기류다. 북한 로켓 발사 이슈마저 뒤덮을 만큼 대형 호재로 여기고 있긴 하지만 자칫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날 경우 치명타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캠프 관계자는 “대선에서 유리하게 작용하긴 할 것 같은데 불안한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실제로 정치권과 사정당국 주변에선 이번 사건과 관련해 민주통합당이 다소 성급했다는 말들이 확산되고 있다. 사정기관 고위 인사는 “민주통합당이 김 씨 주소를 몰라 고의적인 차사고까지 냈다면 기초 자료가 부족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의혹을 제기한 쪽에서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또한 <일요신문> 취재 결과, 민주통합당은 김 씨가 달았다는 ‘댓글’과 관련해 구체적인 증거를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민주통합당이 단순한 첩보 수준의 자료만을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새누리당 역시 ‘제2의 김대업 사건’이라며 민주통합당을 겨냥해 역공을 펼치고 있다. 2002년 대선 때 민주통합당이 김대업 씨를 내세워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을 제기해 낙선시킨 것처럼 선거 공작을 자행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박근혜 후보는 선거 유세 도중 “이 나라의 공당이 젊은 여성을 집단 테러한 것은 심각한 범죄 행위다. 고의로 주차된 차를 들이받는 것은 성폭행범들이나 사용할 수법”이라며 강도 높게 꼬집었다.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도 기자회견에서 “민주통합당이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의 인권을 완전히 짓밟고 있다. 흑색선전과 마타도어를 하는 전문 집단”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정원 여직원’ 사건을 민주통합당 선거 전략의 일환으로 보고 맞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심지어 이정현 공보단장은 “민주통합당이 한 아가씨 집을 습격하는 바람에 국정원이 북의 동향을 정밀 추적할 시간을 빼앗았다”며 대북 정보 실패의 책임을 민주당에 돌려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한편, 경찰은 대선 일정과는 상관없이 최대한 수사를 빨리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13일 김 씨로부터 PC와 노트북을 건네받은 경찰은 이를 사이버수사대 디지털 증거분석팀으로 옮겨 분석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복수의 경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대선 전 그 결과를 발표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져 그 결과에 따라 대선 판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민주통합당 관계자들을 고소한 김 씨도 불러 조사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경찰은 민주통합당을 상대로 구체적인 자료 제출을 요청했지만 아직 건네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