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국채시장을 보고 있었다. 국채시장은 매우 까다롭다. 내가 어젯밤에 보니까 사람들이 좀 불안해하더라.”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9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자동차 경주 선수들과 개최한 행사에서 내놓은 상호관세 유예 이유다. 주식시장 폭락에도 꿈쩍하지 않던 트럼프가 국채시장 움직임에는 반응한 이유는 뭘까.
채권금리는 가격과 반대다. 금리 상승은 가격 하락이다. 지난 4월 2일 주식시장 마감 이후 이뤄진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발표 직전 4% 아래까지 떨어졌던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최고 4.5%까지 치솟는다.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미국 국채 가격이 단기간에 이처럼 큰 폭의 변동성을 보인 것은 이례적이다.
통상 주식시장이 불안하면 안전한 국채로 돈이 몰리며 가격은 반대 흐름을 보인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식과 채권 가격이 동반 하락했다.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처음이다. 이렇게 되면 위험분산을 위해 주식 60%, 채권 40% 비율로 운용되는 연금펀드 수익률에 치명적이다. 노후를 연금에 의지하는 미국 가계가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공화당에게는 정치적 부담이다. 하지만 정치적 부담보다 더 큰 이유는 채권가격이 폭락한 메커니즘에 있다.
#관세 부메랑 향할 곳은 미국 국채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발표 이후 관세전쟁으로 인한 물가상승으로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금리인하 대신 금리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소문이 채권시장에 돌았다. 채권을 팔아 가격하락 위험을 회피하려는 거래가 커졌다. 국채 가격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헤지펀드들의 포지션 정리가 뒤따랐다. 헤지펀드들은 주로 파생상품을 통해 국채에 투자하는데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규모 차입(Leverage)을 일으키는 것이 보통이다. 채권 가격이 하락하면 차입상환 부담이 커진다. 무려 1조 달러로 추정되는 자금이 움직이면서 파생상품 시장이 국채의 변동성을 더 크게 높이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풀이다.
헤지펀드의 움직임은 연쇄적인 폭락을 부르는 방아쇠가 됐다. 다른 자산 시장과 마찬가지로 미국 국채 시장 역시 가격이 하락하면 손실을 줄이려는 매매가 늘어나기 마련이다. 이에 더해 관세 부담으로 대미 무역으로 얻는 달러가 줄어들 것을 걱정한 각국이 달러 자산을 매각해 외화를 확보할 필요도 커진다. 일본에 이어 가장 많은 미국 국채를 보유한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제재를 통해 달러 자산을 동결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미국 국채를 매각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격에 맞서고 있다는 해석도 등장했다. 중국은 최근 3년간 지속적으로 미국 국채를 팔고 금을 매입하고 있다.
#“미국 못 믿겠다…달러도 못 믿겠다”
각국 정부나 중앙은행들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에 대외자산을 미국에 두기 불안할 수 있다. 관세로 대미 무역수지가 악화되면 무역흑자로 번 달러를 미국 금융시장에 재투자하던 대미 수출국들의 관행에도 제동이 걸린다. 국채 수요기반 약화는 금리 상승요인이다. 최근 유럽은 독일을 중심으로 경기부양과 국방비 증액을 위해 국채 발행을 늘릴 태세다. 유로화 강세로 미국과의 실질 금리차도 많이 줄었다. 미국 국채로 향하던 글로벌 자금이 유럽으로 발길을 돌릴 만하다. 미국 국채 가격이 하락하면 이를 보유한 금융회사들도 큰 손실을 입어 건전성이 악화된다. 금융위기의 씨앗이 될 만하다.
달러의 불안도 또 다른 이유다. 트럼프 행정부의 숙제 가운데 하나가 금리 하락을 통한 재정적자 축소다. 금리가 높으면 국채 이자 부담이 커져 재정안정을 꾀하기 어렵다. 발행하는 나라의 재정이 불안하면 기축통화의 신뢰를 유지하기 쉽지 않다. 미국은 무역적자를 통해 기축통화인 달러를 전세계에 공급해왔다. 미국이 무역적자를 줄여 공급이 줄면 기축통화 이용이 어려워진다. 기능 약화다. 미국 국채 시장이 흔들리면서 유로화와 엔화 가격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 것은 그 반증이다.
달러는 미국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다. 성능에 문제가 생기면 심각한 손실이다. 독불장군인 트럼프 대통령도 재정부담과 그에 따른 달러의 위상 추락은 간과할 수 없었던 셈이다. 지난 4월 9일에는 중국에 이어 유럽연합(EU)도 미국에 보복 관세를 예고했다. 미국이 숙적 중국을 상대하는 데 집중하기 위해서도 다른 국가에 대한 관세 유예는 필요한 조치다.

이번 유예조치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쉽게 진정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당장 90일간의 유예 기간 뒤에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를 예측하기 어렵다. 힘을 앞세워 이익을 취하려는 정책 방향은 크게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관세 장벽 외에도 환율 정책과 세제, 제도 등 각종 비관세 장벽에 대해서도 압력을 가할 방침이다. 각 나라 별로 입법이 필요한 부분이 많아서 상당한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미국 경제의 침체 가능성도 여전하다. 관세 장벽을 높이면 미국 내 공산품 가격 상승은 불가피하다. 특히 미국이 가장 많은 공산품을 수입하는 중국으로부터의 공급이 줄면 이를 대체하기가 쉽지 않다. 미국 내에 새로운 공장을 짓는다고 해도 최소 5년 이상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트럼프 임기 내에 완공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의 지지율도 하락하고 있다. 내년 중간 선거에서 공화당이 패할 경우 민주당이 트럼프 정책에 제동을 걸 것이 뻔하다. 미국의 정치 상황이 불확실해지면 미국에 공장을 짓기로 한 해외 기업들이 투자를 주저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숙련된 제조업 인력은 적고 임금수준이 높은 미국에서 공장을 지으려면 자동화가 필수다. 공장 건설에 필요한 장비와 부품을 미국으로 반입할 때 높은 관세가 적용된다면 이 역시 기업들이 투자를 주저할 요소가 된다. 줄이면 트럼프가 시작한 관세 전쟁이 미국 경제를 강타할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협력 대신 대결로…패러다임 전환 이미 시작
미국의 정책에 따라 얼마든지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 트럼프발 관세전쟁을 통해 전세계가 확인했다. 세계가 생산하고 미국이 소비하는 글로벌 경제 질서도 유지되기 어렵게 됐다. 각국이 글로벌 협업 대신 각자도생의 길을 택하면 경제 효율은 하락하게 된다.
펀더멘털이 약한 일부 신흥국은 글로벌 경제 위축과 수출 감소에 따른 달러 공급 차질로 외환위기의 벼랑으로 내몰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패러다임 변환기에는 유동성도 극단적인 안전 선호를 보이는 것이 보통이다. 주식은 새로운 글로벌 질서의 수혜를 받거나, 변화된 환경에서도 수익성을 유지할 곳만 주목받을 가능성이 크다. 전자는 경기부양과 국방비 증액에 나선 유럽 간판 기업들, 후자는 생산성을 높일 독보적 기술을 가진 글로벌 빅테크다. 트럼프 대통령까지 국채 시장 구하기에 나선 만큼 미국 장기채권을 저가 매수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있다.
문홍철 DB증권 연구원은 “(자산가격 급락으로) 금융기관들이 극심한 현금 부족에 직면하면 연준이 긴급 유동성 지원에 나설 수밖에 없다”면서 “이 경우 단기간에 폭락했던 미국 장기국채 가격이 급반등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최열희 언론인 master@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