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D램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가 발표한 2025년 1분기 D램 매출액 기준 시장 점유율 보고서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25%로 전체 3위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는 34%로 SK하이닉스(36%)에 처음으로 1위 자리를 내줬다. 2024년 4분기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의 격차는 16.9%포인트(p)였으나, 2025년 1분기에는 9%p로 좁혀졌다.
마이크론은 최근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데이터 처리 속도를 혁신적으로 끌어올린 HBM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마이크론은 2024년 2월 말 5세대 HBM인 HBM3E 8단 양산 소식과 함께 엔비디아 AI 반도체인 H200에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먼저 공급하고 있던 SK하이닉스에 이어 두 번째다. 이어 마이크론은 엔비디아의 새 AI 반도체 블랙웰 울트라(GB300)에 맞춰 설계된 HBM3E 12단 품질 테스트까지 통과했다.
마이크론은 2025년 3월 실적 발표에서 “HBM3E 12단의 대량 생산을 시작했다”며 “올해 하반기에는 출하량 대부분을 해당 제품이 차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2024년 전 세계 HBM 시장점유율이 5.1%에 불과했다. SK하이닉스는 52.5%, 삼성전자는 42.4%다. 마이크론은 실적 발표에서 생산 확대를 통해 2025년 HBM 점유율을 20%대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기술격차가 몇 년씩 차이가 났던 예전과 달리 요새는 전 세계적으로 기업들의 차이가 크지 않다”며 “마이크론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과 상관없이 성장해 우리나라 기업들을 추격하고 있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오락가락한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월 11일(현지시각) 대통령 각서에서 스마트폰, 반도체 등 전자제품 품목을 상호관세에서 제외한다고 밝혔다. 관세 징수를 담당하는 세관국경보호국도 같은 날 이를 공지했다.
하지만 AFP,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4월 13일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기자들에게 스마트폰·반도체 품목별 관세가 “머지않은 미래에 시행될 것”이라며 “(관세율 등은) 다음주 중에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미 행정부의 방침에 따라 온탕과 냉탕을 수시로 오가고 있는 셈이다.
미 행정부의 보호주의 기조에 따라 마이크론이 수혜를 누릴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마이크론은 메모리를 대부분 대만·일본 등에서 생산하고 있다. 미국 버지니아주 머내서스 공장을 보유하고 있지만 장비가 노후화돼 생산량이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이크론은 1250억 달러(약 180조 원)를 투자해 아이다호주와 뉴욕주에 메모리 공장을 짓고 있다. 아이다호주 공장은 2026년, 뉴욕주 공장은 2028년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삼성전자 입장에서 미국의 관세 정책에 따른 타격은 불가피하다.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가동 중인 텍사스주 오스틴 공장과 인근에 추가로 건설 중인 테일러 공장 모두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시설이다. 삼성전자의 D램·HBM은 대부분 경기 화성·평택 등 한국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스마트폰·PC 등에도 품목별 관세가 적용되면 범용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둔화돼 대미 매출 감소가 예상된다. 삼성전자 2024년 사업보고서의 주요 지역별 매출현황에 따르면 별도 기준 미주지역 매출은 61조 3533억 원이다. 전체 매출(209조 522억 원)의 29.3%에 달한다.
첨단 공정을 적용해 6세대 HBM인 HBM4 성능을 얼마나 보여줄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꼽힌다. 권영화 서울기독대학교 글로벌AI융합대학 교수는 “마이크론은 빠르면 2026년이 돼야 HBM4 양산이 가능하다”며 “삼성전자가 하이브리드 본딩이나 1c D램 기술을 HBM4에 최초로 적용한다면 경쟁우위를 갖출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반도체와 반도체, 혹은 반도체와 웨이퍼를 직접 연결하는 기술이다. 기존 칩을 연결해주는 소재(범프) 없이 칩을 쌓아 두께를 줄이고 성능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7세대 HBM인 HBM4E부터 하이브리드 본딩을 적용할 예정이다. 6세대부터 적용하려는 삼성전자가 한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10나노미터(nm, 10억분의 1미터)급 D램 공정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칩 크기가 작아질수록 동일 면적의 웨이퍼(반도체 원재료) 안에서 더 많은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성능과 전력효율을 확보할 수 있다. 6세대 10나노급 D램인 1c D램은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 타이틀을 가져갔고, 마이크론도 샘플을 고객사에 공급했다. SK하이닉스는 HBM4에 1c D램을 적용하지 않는 반면, 삼성전자는 이를 적용해 퀀텀 점프를 노리고 있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관계자는 “관세와 관련해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HBM4 개발 및 양산은 올해 말을 목표로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영현 기자 nogoo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