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삼성-이부진, 신세계-정유경, 한진-조현아 | ||
두 살씩 차이 나는 이부진(1970년생) 정유경(1972년생) 조현아(1974년생) 세 상무 중에서 제일 처음 ‘호텔 문’을 열어 제친 사람은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딸인 정유경 상무(프로젝트실장)는 1996년 조선호텔 마케팅담당 상무보(등기이사)가 되기 전까지 미술을 공부했다. 서울예고와 이화여대 디자인과를 졸업한 뒤 미국 로드아일랜드디자인학교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한 것. 그는 2003년 상무에 올랐다.
정 상무는 호텔을 경영하면서 자신의 전공을 살렸다. 객실 리노베이션과 인테리어 작업을 주도한 것. 업계 최초로 비주얼 디자이너를 채용할 정도였다. 호텔에서 사들이는 미술작품과 캘린더 제작에도 영향을 미쳤고 이를 통해 호텔의 품격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 상무의 입사 이후 조선호텔은 사업다각화에 공격적으로 나섰다. 2005년 초 베이커리사업부는 조선호텔베이커리로 분사, 이마트 등에 ‘데이앤데이’ 매장을 여는 등 매장 수를 117개로 늘렸다. 조선호텔베이커리의 지난해 매출액은 867억 원(당기순이익 35억 9447만 원)으로 조선호텔 매출액(1581억 원·당기순이익 64억 3210만 원)의 54.8%에 달하는 안정적 수입원으로 커졌다.
그렇다고 구설수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정 상무는 조선호텔베이커리 분사 때 베이커리 주식을 주당 7976원에 80만 주(40%)를 조선호텔로부터 매입했다. 조선호텔(45%)에 이은 2대주주로 올라선 것. 참여연대는 지난해 “조선호텔이 주식을 정 상무에게 넘길 이유가 없었다”며 편법 증여 의혹을 제기했다. 이는 오빠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편법 증여 의혹과 맞물려 있다.
정 상무의 사촌언니이자 이건희 회장의 맏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상무(경영전략담당)는 대원외고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아동학을 전공했다. 그는 졸업 후 1995년 삼성복지재단 기획지원팀에 입사하면서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이후 삼성전자 전략기획팀 과장, 국제경영연구원 해외인력관리팀 차장을 거친 뒤 2001년 드디어 호텔신라 기획부 부장으로 ‘호텔리어’의 길에 들어섰다. 2004년 경영전략담당 상무보, 1년 뒤 ‘보’ 꼬리표를 떼고 상무에 올랐다.
이 상무의 사실상 첫 작업도 신라호텔의 리노베이션이었다. 1층의 ‘더 라이브러리’ 등 로비 라운지를 바꾼 것은 물론 노화예방 한방병원 등 각종 클리닉에 자산관리서비스까지 입주시킨 ‘라이프스타일존’은 이 상무의 작품으로 알려진다.
이 상무도 호텔경영자로 성장하면서 홍역을 치렀다. BJ라는 호칭과 함께 ‘임원급 부장’으로 불리던 지난 2003년 신라호텔 노조가 뜰 뻔했던 것. 무산되긴 했지만 노조 설립을 시도하던 인사들은 ‘이 부장’의 전횡을 문제 삼으며 퇴진까지 주장했다. 당시 호텔신라의 경영부진도 문제가 됐다. 지난 2000년 153억 원이던 당기순익이 이 상무가 온 뒤인 2002년 64억 원대로 주저앉았기 때문. 하지만 이 상무의 개혁작업이 탄력을 받으면서 매출액과 당기순이익은 상승세를 탔고 지난해 매출액 4487억 1900만 원, 당기순이익 178억 1900만 원을 기록하며 BJ에 대한 비난을 잠재웠다. 호텔신라는 조선호텔베이커리에 맞서 이마트 경쟁사인 홈플러스에 프리미엄 제빵 브랜드 ‘아띠제 브랑제리’ 매장을 세 곳 운영 중인데 전국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맏딸인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이사(대한항공 기내식사업본부장 상무)는 앞의 두 상무보다 늦은 지난 4월에야 호텔업계에 발을 디뎠지만 ‘이론’은 가장 밝다고 할 수 있다. 서울예고 졸업 후 미국 코넬대학교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했기 때문이다. 조 상무는 1999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대한항공 호텔면세사업본부 대리로 입사했다. 이후 2002년 호텔기판사업본부 기내판매팀 차장, 2005년 상무보, 지난해 상무로 승진했다. 작년 3월 조 상무는 비빔국수로 국제기내식협회(ITCA)가 최고 기내식에 주는 ‘머큐리’ 상을 받기도 했다.
조 상무가 이번에 등기이사에 오른 칼호텔네트워크는 하얏트리젠시인천을 관할한다. 이를 포함해 한진은 그룹 차원에서 제주·서귀포칼호텔과 해외 호텔 등 5개 호텔을 보유하고 있다. 재벌 3세 중 가장 넓은 사업영역을 확보한 셈이다. 그동안 호텔사업부에서 업무를 보고받아온 조 상무가 전공을 바탕으로 어떻게 날개를 펼 것인지 주목된다.
호텔신라는 서울과 제주도의 2개 호텔을 운영하고 있고, 한때 중급호텔 체인을 만든다는 얘기도 나왔지만 실현되지 않고 있다. 조선호텔 역시 호텔이 서울과 부산에 두 곳밖에 없어 외식업을 키우는 등 외연확대를 위해 애쓰고 있다. 이에 비해 칼호텔네트워크는 국내외에 체인망을 두고 있어 호텔사업에 관한한 재벌 순위가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때문에 재벌가의 후광을 업고 출발한 이들 중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 주목받고 있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