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발 뗀 박 당선인 박근혜 당선인이 20일 새누리당 지도부와 함께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했다. 사진공동취재단 |
이번 대선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혼자 쓴 드라마다. 그는 절대적 대세에서 열세(안철수 등장)로, 다시 소폭 반등(문재인 후보 확정), 그리고 정체(여론조사 45% 박스권)에서 박빙-초접전 (안철수 사퇴)을 거치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밤 10시 40분이 되어서야 집 밖으로 나온 박 후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박 후보도 누군가와 함께 개표방송을 보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박 후보는 자정이 되어서야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다.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당선인이 수비를 잘해서라기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공격력이 고만고만했고 결정적으로 골대 앞에서 골을 놓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문 후보가 비전을 제대로 제시하지 않았고, 이기는 전략도 구사하지 못한 탓이란 것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을 좀 더 들여다보면 그것만도 아니다. 실제 박 당선인 캠프에서는 어떤 일을 어떻게 언제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지만, 나름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첫째, 박 당선인은 ‘이미지 전쟁’에서 선방했다. 2차 TV 토론회 직후 박 캠프에서는 총동원령을 내려 박 후보의 이미지 변화를 꾀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의 ‘막말 공세’로 수세에 몰렸고 3차 공세는 더욱 세질 것이란 예측이 나왔기 때문. 그래서 박 당선인 측에서는 다소 우호적인 친박계 취재 기자들을 온·오프라인에서 만나 무엇이 필요한지 조언을 부탁하게 된다. 옷차림에서부터 화장, 손짓, 몸짓, 임기응변까지 모든 조언을 종합해 박 후보가 인지하도록 했다는 후문이다.
이 후보가 3차 TV 토론회 6시간 전 전격 사퇴하면서 박 후보 측이 다소 당황했지만 양자대결에서 나름 선방한 것도 그런 ‘족집게 과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3차 토론회를 들여다보면, 박 후보는 최대한 두 손을 모아 읍소하는 몸짓을 취했고, 카메라를 응시했으며, 자세를 바꿔가며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박 캠프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TV토론이 ‘말’보다는 ‘이미지’에 의해 많이 좌우된다는 평론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다만 박 후보가 자신의 공약을 매끄럽게 발음하지 못하면서 준비가 덜 됐다는 비판이 일었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둘째, 새누리당은 ‘투표 독려’에도 적극적이었다. 물론 선거 막판에 가서였다. 민주당은 대선정국에서 ‘오후 9시까지 투표 시간을 연장하자’고 박 당선인 측을 압박해 오다 “100억 원은 더 드는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생각이 든다”는 박 후보의 말을 들어내고야 만다. 곧 박 후보가 “참정권의 가치를 훼손했다”는 공세가 이어진다. 정치공학적으로 여권은 투표율이 낮을수록, 야권은 높을수록 유리했기에 새누리당은 그 공식에 따른 것이었지만 후폭풍이 컸다. 그러다 이달 초 중앙선관위가 대선 유권자 수를 확정 발표할 때 새누리당이 무릎을 쳤다는 것이다.
“바로 이거다!”
총 유권자 수는 4046만 4641명. 이 중 남자는 49.4%로 1998만 1167명, 여자는 50.6%인 2048만 3474명. 여자가 남자보다 50만 2307명(1.2%) 더 많다. 게다가 17대 대선(3765만 3518명)과 비교하면 유권자가 281만 1123명이나 늘었는데 대다수가 50~60대였다는 것이 선관위 발표였다. 새누리당은 곧바로 ‘투표 독려’ 전략을 구사, 박 후보도 막판에는 한 표를 달라기보다는 투표를 해달라고 직접 읍소하고 나선다.
여기서 새누리당은 두 가지를 벌었다. 일단 참정권 훼손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지만 투표 당일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실어 나르는’ 자발적인 행동을 끌어올 수 있었다. 민주당의 투표 독려가 ‘캠페인’이었다면, 새누리당은 ‘실천형’이었다. 여기에다 노년층이 오후 4시 이후 급격히 투표장을 찾는 전략도 있었다. 투표 초반, 투표율 최고치가 실시간 보도되면서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투표 누수가 일어난 것도 새누리당이 승기를 잡는 단초가 됐다. 게다가 일부 출처가 모호한 ‘문 후보가 이기고 있다’는 왜곡된 정보도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세 번째는 네거티브의 내려놓음에 있었다. 문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를 과하지 않게 조절했다는 것인데, 실상은 문 후보가 지나치게 깨끗한 사람이어서 검증할 ‘재료’가 별로 없었다. 문 후보 검증에 집중했던 한 인사는 “아들 특혜 채용 논란, 별장, 법무법인 수십억 수입 등 문 후보를 몰아붙인 것이 발전하지 못하고 스스로 제동이 걸린 것은 아무리 까도 깔 게 없었기 때문”이라며 “오히려 검증거리는 박 후보가 훨씬 많았지만 민주당도 ‘안철수의 덫’에 걸려 우물쭈물했다”고 분석했다. “선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며 네거티브 자제를 촉구했던 안철수 씨의 주문에 민주당이 막혔고, 새누리당이 반사이익을 얻었다는 분석이다.
네 번째는 ‘프레임 전쟁’에서 거둔 승리였다. 2030세대는 박정희의 독재정권 때 아주 어렸던 나이다. 박정희가 절대적으로 싫을 수 없다. 그들로선 너무 먼 역사의 과오였고, 체감하지 않은 어두움이었다. 하지만 5060세대가 겪은 노무현 정부는 가까운 역사였고, 짙게 드리운 먹구름이었다. 이들 기성세대는 그때를 견뎌냈던 것이다. “어쩌면 이번 선거는 박정희 대 노무현의 싸움, 그 시작이자 끝”이라는 한 인사의 평가가 이를 단적으로 요약한다.
40대에서는 “박정희와 육영수를 뺀 박근혜에게 과연 무엇이 있느냐”며 ‘새마을운동’이나 ‘잘 살아보세’ 등에 대해 노골적 비판을 던졌지만 유권자 절대 수에서 밀렸다. 특히나 민주당이 내세운 ‘이명박근혜’ 프레임은 지난 4·11총선 때 써먹고도 패했던 전략이었는데 다시 들고 나오면서 박근혜를 이명박에 제대로 녹여내지 못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지만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는 전략의 절정은 ‘우호적인 언론’에 있었다. 종합편성채널 일부와 보수 일간지, 지상파 일부는 한편으로는 노골적으로, 한편으로는 교묘하게 박 당선인을 도왔다. 박 당선인을 향해선 ‘최초의’ 여성 대통령, 부녀 대통령, 퍼스트레이디 대통령 하며 ‘최초’를 부각했지만 문 후보에 대해선 그러지 않았다. 한 정치권 인사는 “직선제 이후 불과 대통령을 5명밖에 배출하지 않은 나라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은 얼마나 붙이기 쉬운 슬로건이냐”며 “문 후보에 대해서도 최초의 특전사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 대통령, 법과대학 출신 대통령 등을 내세울 수 있었지만 힘 있는 언론은 그를 돕지 않았고, 힘없는 언론은 도울 힘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언론은 박 후보가 위협을 받을 때에는 문 후보 측을 끌어와 ‘균형(?)’을 맞췄는데 그 일례가 바로 김무성의 “중립층은 투표 포기하게 해야” 발언과 정동영의 “꼰대들 ‘늙은 투표’에 인생 맡기지 말고”를 함께 쓰는 식이었다.
박 당선인은 앞으로 ‘어머니 정치’를 국민에게 보여줘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보복의 정치는 거두고 누구든 포용하는 국모(國母)의 통치력이 필요한 때란 지적이다. 수십 명 거느리던 친박계의 수장에서 수천만 명의 국민을 웃게 하는 국민의 어머니로 거듭나야 한다는 주문이 잇따르고 있다. 그 역시도 태어나서 가장 큰 이벤트를 치르면서 “우는 아이(김종인 안대희) 달래고, 얄미운 아이(김재원 등) 안으면서 참을성을 길렀다”는 전언이다. 그의 말대로 자신은 “자식도 없고 가족도 없어서” 국가에 대한 봉사가 그의 유일한 취미이며 인생의 낙이 될 것이란 기대가 크다. 국정운영에 대한 집중도가 어느 때보다 높을 것이란 이야기도 있다.
새누리당 내부에서 “문 후보를 지지한 48.0%, 1469만 2632명의 국민을 껴안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인사부터 대통합과 대탕평을 녹여내야 한다. 절반의 국민이 박 당선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선우완 언론인
친박계 역차별 불가피한 까닭
정치권에 오래 몸담은 인사들은 요즘 “친박계가 너무 조용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5년 전 이명박 당선인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나 10년 전 노무현 당선인 인수위 인선 직전에 인 ‘인사(人事) 소음’이 전혀 발생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한 정치권 인사의 말이다.
“사실 박 당선인을 보좌한 인사들 중에는 호랑이 새끼 같은 존재는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개국 공신들 중 강경파였던 ○○○이나 ◇◇◇처럼 ‘내 몫을 달라’고 외치는 사람도 없고, ‘너는 이만 물러가라’고 그들끼리 자리다툼과 알력싸움을 하는 이가 없다. 어찌 보면 충성심이 가득한 개와 같고, 짐의 뜻대로 해도 달게 받겠다는 순한 양과도 같다.”
친박계가 인수위나 첫 조각에 선임되는 순간 박 당선인은 거짓말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대탕평이니 대통합이니, 국민 눈높이니 하며 박 당선인이 내놓은 그간의 공약과 원칙, 신뢰에 대한 비판이 들불처럼 번질 공산이 크다. 친박계가 누구보다 그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박 당선인이 가진 일종의 권위가 친박계가 쉽게 대들 수 없을 정도로 높다는 것도 지금 ‘납작 엎드린’ 친박계를 이해할 수 있는 한 부분이다. 그동안 박 당선인은 그 누구에게도 2인자의 지위를 허용하지 않았다. 보스와 신하의 경계를 그 어떤 대통령보다 확실히 그어놓았기 때문에 누구도 면전에서 한 자리 달라고 할 처지가 못 된다. 특히 이번 대선은 ‘돈의 선거’를 무색케 할 정도로 투명해졌고, 자기 돈을 쓴 사람이 없는 만큼 친박계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논공행상으로 입에 불이 나는 집단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언론에 오르내렸다가는 곧바로 ‘팽’당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난 대선 경선과 본선에서 입을 잘못 놀렸다가 스스로 아웃된 인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