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언니 박근혜 후보와 껄끄러운 사이인 박근령 씨가 대선을 불과 나흘 앞두고 박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일요신문DB |
패배의 쓴 잔을 들이킨 민주통합당도 박근혜 당선인이 편치 않지만 그보다 더한 인물도 있다. 바로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선후보다. 이 전 후보는 본인이 직접 박 당선자를 떨어뜨리기 위해 출마했다고 말할 정도로 얼굴에 철판을 깔고 ‘저격수’ 노릇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한 실패. 덕분에 이 전 후보는 누구보다도 박 당선인의 승리가 탐탁지 않을 것 같은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새누리당이라는 한 지붕 아래에서 겉으로는 축제 분위기를 즐기고 있지만 마음만은 편치 않은 정치인들도 수두룩하다. 박 당선인을 외면하기도 그렇다고 품기에도 껄끄러웠던 친이계가 그 주인공들. 특히 끝까지 몽니를 부리며 박 당선인을 애태우던 이재오 의원 등은 새누리당이라는 지붕 아래 있으면서도 좌불안석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나마 뒤늦게라도 박 당선인을 지지한 것은 위안 삼을 만하다.
순간의 선택으로 박 당선인의 뒷모습만 바라봐야 하는 인사들도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강삼재 전 신한국당 사무총장과 김덕룡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과 김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는 문 후보를 지지하며 힘을 보탰으나 당선의 기쁨을 나누진 못했다.
재벌기업들은 박근혜 당선인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지는 않고 있지만 “그래도 숨통이 트인다”는 입장인 것. 한 재계 관계자는 “그동안 대선 결과에 대해 방관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박 당선인이 문재인 후보에 비해 그나마 온건적인 경제개혁안을 내놨기에 안심이 되는 부분이 있다. 어쨌든 변화에 적응할 시간을 번 것 아니냐”며 “더욱이 10대 기업 대부분은 박 당선인과 학연이나 지연으로 얽혀있어 덕을 보진 못하더라도 매는 피해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소기업만큼은 표정이 확연히 갈린 상태다.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대선 내내 뜨뜻미지근한 입장을 취해온 곳이 대부분이지만 공개적으로 문 후보를 지지선언한 곳도 있기 때문이다. 회사 이름을 내걸고 지지선언을 했던 정보기술(IT)과 소프트웨어(SW) 기업의 최고경영자 104인은 성명서를 통해 “지난 5년 동안 후퇴했던 IT와 SW의 부활을 위해서는 문재인 후보가 최적의 대통령 후보”라고 말했던 터라 박 당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극렬하게 파가 갈렸던 문화계와 사회단체에도 대선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앞으로 출연이 어려워지는 일이 있더라도 문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밝힌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부터 각종 사회·시민단체들도 원치 않았던 결과에 침통한 모습들이다.
▲ 왼쪽부터 강삼재, 김덕룡, 김현철 |
특히 박 당선인과 새누리당을 향해 원색적인 비난과 각종 의혹을 제기했던 인사들은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모양새가 됐다. 대표적인 사례로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의 패널들을 들 수 있다. 현재 김어준 총수를 비롯해 주진우 기자, 김용민 씨까지 나꼼수의 패널들 모두가 고소·고발전의 최전방에 서 있는 상태다. 이들은 새누리당과 박 당선인의 동생인 박지만 이지(EG) 회장을 비롯해 국가정보원으로부터도 고소를 당해 검찰의 수사까지 받고 있다.
세 패널이 받고 있는 혐의도 다양하다. 일명 ‘십알단(십자군 아르바이트단)’이 국가정보원과 연루돼 여론을 선동하고 있다는 주장을 제기해 국정원으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됐으며 박 회장은 5촌 조카 살인 사건에 자신이 연루됐다는 허무맹랑한 의혹을 제기했다며 이들을 허위사실 공표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새누리당도 아무런 근거 없이 박 당선인을 신천지와 엮고 1억 5000만 원짜리 굿을 했다며 비난한 나꼼수 패널들을 경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몸을 사리고 있는 정재계 인사들과 달리 사회·문화계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나꼼수 패널들도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의 대응을 하고 있으며 소설가 공지영 씨도 현재의 상황을 나치 정권에 비유하는 듯한 발언을 해 ‘적진’에 대한 공격을 늦추지 않고 있다.
한편 박 당선인의 가족이라도 마음이 편치 않은 인물이 몇몇 있다. 여기엔 대선 며칠 전 극적으로 박 당선인 지지를 선언한 박근령 한국재난구호 총재도 포함된다. 박 총재는 당초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히며 친언니인 박 당선인과 대립각을 세웠다. 사실 박 총재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박지만 회장과 달리 사사건건 박 당선인과 부딪쳐왔다.
육영재단 운영권을 놓고 지난 1990년부터 다툼을 벌여왔으며 박 총재의 남편 신동욱 전 백석문화대 겸임교수도 박 당선인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 더욱이 신 교수는 아내가 육영재단 이사장직에서 쫓겨나자 자신의 미니홈페이지에 박 당선인을 비방하는 글을 수십 차례 올렸다가 고발당해 최근 1년 6개월의 실형을 확정 받아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이런 배경으로 박 총재는 섣불리 박 당선인을 지지할 수 없었고 안 전 후보와 한 배를 타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안 전 후보가 사퇴하는 등 변수가 생겨나면서 상황이 바뀌었고 오랜 시간 고심한 끝에 박 총재는 대선을 불과 4일 앞두고 박 당선인을 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로 인해 어느 정도 화해의 여지는 남긴 셈이지만 그동안의 전력을 봤을 땐 ‘진심’으로 언니를 응원하기엔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영부인 없는 영부인 보좌팀 헐~
박근혜 당선인에게는 유독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는다. 헌정 사상 첫 ‘미혼’의 ‘여성’ 대통령이란 타이틀도 그 중 하나다. 덕분에 청와대 제2부속실은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본래 제2부속실은 대통령 배우자의 일정 및 행사 기획, 집행, 비서업무, 대내외 활동 및 관저생활을 보좌하는 업무를 맡아왔다. 사실상 영부인을 위해 존재했던 부서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박 당선인에게는 배우자가 없기에 제2부속실의 필요성이 없어졌다. 현재 제2부속실에는 강현희 실장을 비롯해 김윤옥 여사의 의상코디네이터, 헤어·메이크업 담당자까지 총 6명이 일하고 있지만 박근혜정부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도 될 부서가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 안팎에서는 제2부속실이 대통령 수행을 담당하던 제1부속실에 통폐합되거나 역할이 축소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박민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