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경 삼성전자 감사팀은 외국계 고문 A 씨의 휴대폰 사진 목록을 확인한 후 크게 놀랐다고 한다. A 씨의 휴대폰에는 300건에 달하는 동영상과 사진이 담겨있었는데 모두 여성들의 상반신과 치마 밑을 촬영한 것이었다. 사진에 찍힌 이들은 다름 아닌 회사 여직원들이었다. 사진 구도상 누가 보더라도 ‘도촬(도둑 촬영)’로 단정할 수 있었다. A 씨는 수년간 삼성전자 출퇴근 버스를 이용해오던 인물. 대부분 사진 역시 버스 안에서 찍힌 것들이었다. A 씨가 덜미를 잡힌 곳도 바로 버스 안.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을 수상하게 본 여직원의 신고로 감사팀은 곧바로 조사에 착수, 휴대폰 속 ‘증거’를 확보했다. A 씨는 결국 그달 해임됐다.
앞서 6월에는 해외로 여직원과 출장을 갔던 임원 B 씨가 성추행 혐의로 감사팀의 조사를 받았다. 사연은 이랬다. B 씨는 5월 말 중국으로 네댓 명의 직원들과 함께 출장을 떠났다. 비즈니스가 끝난 이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술자리. 취기가 오르면서 사달이 났다. 동석한 여직원에게 술을 따르라고 강요한 것도 모자라 밀폐된 공간에서 몸을 더듬고 강제로 키스를 시도했다. 감사팀 조사에서 B 씨는 “그런 사실이 없다”, “기억이 안 난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자리를 함께한 직원들의 증언으로 B 씨는 지난 7월 회사에서 쫓겨났다.
삼성전자의 성 관련 사건은 출퇴근 버스 안에서 적발된 사례가 가장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1월 성희롱 사실이 적발돼 해임, 정직, 감봉 등의 징계를 받은 임직원은 15명가량. 이 중 3분의 2인 10명 정도가 출퇴근 버스 안의 행위가 적발돼 징계를 받았다고 한다. 단순 신체적 접촉에서부터 심각한 수준의 성추행까지, 사례는 다양했다. 일부 직원의 경우 “기지개를 켜다가 부딪쳤는데 성희롱으로 신고해 징계를 받게 됐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회사 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처럼 삼성전자 내에서는 올 들어 지난 11월 말까지 최소한 80명이 넘는 임직원들이 성 문제로 적발돼 징계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불과 40명 안팎의 직원들만 관련 조치를 받았다고 하니 1년간 두 배가량 급증한 셈이다. 이는 성 범죄가 늘었다기보다는 회사 측의 강력한 의지와 분위기 변화로 적발 건수가 늘었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또한 이 같은 일이 계열사 중 유독 삼성전자에서만 많이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이 같은 사례에 비추어 보면 삼성그룹의 올해 대규모 성 관련 징계 조치는 기업문화 차원에서 볼 때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이제는 여직원들도 성희롱 사실을 회사에 알리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는 후문이다. 오죽하면 남자 직원들 사이에 “출퇴근 버스 안에서 여직원 옆에 앉을 경우에는 절대 졸지 말라”는 말까지 회자될 정도다. 실수로라도 신체접촉이 있으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회사가 직장 내 성 범죄를 뿌리 뽑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실천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직장 내에서 발생한 성 관련 사건을 전 직원들에 매달 정기적으로 이메일 공지를 하는 등 오히려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있기도 하다. 구체적인 사례를 알림으로써 사건을 예방하기 위한 차원으로, 다른 계열사들도 자사와 관련한 내용으로 시행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회사에서 성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서인지 올해 초부터 전 직원들에 이메일을 보내 관련 사실을 주지시키고 있다”며 “삼성그룹 전체 계열사에서 앞으로도 성 문제와 관련한 징계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되고 예방에 적극 나서고 있는 만큼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공식적으로 “매달 불미스런 일을 조심하라는 계도성 메일을 보내고 있기는 하다”면서도 “그러나 성 문제와 관련해 특별히 징계를 강화하거나 그런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한편 삼성은 연말 회식자리에서 ‘벌주, 원샷 강요, 사발주’를 3대 음주 악습으로 규정하는 등 절주 캠페인을 벌이며 건전한 직장 음주문화를 주도하고 있다. ‘1가지 술로, 1차만, 9시 전에 끝내는 회식’이란 의미의 ‘119’ 시스템도 정착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의 이러한 캠페인은 사회 전반적인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따라서 삼성의 직장 내 성문제 척결 움직임 또한 상당한 파급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
김은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