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검찰은 굿모닝시티 사건을 놓고 정치권과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다. 대북송금 특검으로 상처를 입은 검찰은 이번 기회에 검찰의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는 입장이고, 정치권은 대선자금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검찰권에 제동을 걸겠다는 태세다. 굿모닝시티 사건을 둘러싼 검찰과 정치권의 ‘파워게임’ 결과에 따라 정국의 풍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추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대철 민주당 대표가 굿모닝시티 사건으로 검찰의 소환을 받는 등 정치권이 ‘윤창렬게이트’로 몸살을 앓던 지난 7월 중순, 노무현 대통령은 송광수 검찰총장과 전화통화를 했다.
집권여당 대표가 검찰의 소환을 받는 초유의 일이 발생하고 정치적 파장이 확산되면서 사건의 진상과 향후 검찰의 입장을 알아보기 위해 청와대 방문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그러나 송 총장은 아직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고 대통령에게 ‘짐’이 될 수도 있다는 이유로 노 대통령의 제의를 정중히 거절했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청와대 비서실은 상당히 당혹해했다는 후문이다. 대통령의 요청을 검찰총장이 거부한다는 것은 과거 정권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청와대 비서실의 한 관계자는 “당시 검찰의 태도에 대해 일부 비서진들은 송 총장의 결정이 ‘현명’했다고 옹호하기도 했지만, 상당수는 ‘무례함’을 이유로 ‘교체론’을 거론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검찰과 청와대와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은 지난 5월에도 있었다. 월드컵 휘장사업권 로비의혹을 수사중이던 서울지검 특수1부는 5월16일 자민련 이인제 의원의 특보를 지낸 송종환씨를 알선수재 혐의로 긴급 체포하고 관련 사실이 확인될 경우 이 의원을 소환할 방침임을 밝혔다.
이에 이 의원은 “정적 죽이기”라며 노 대통령을 강력히 비난하는 한편, 같은 당 K의원을 통해 청와대 문희상 비서실장에게 검찰의 수사 진행 상황을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 문 실장은 “예전의 검찰이 아니다”며 “청와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상황이 아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마디로 검찰이 ‘법대로’ 수사로 일관해 청와대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검찰은 이에 앞서 SK그룹 수사 때 청와대의 불편한 기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최태원 (주)SK 회장과 손길승 전경련 회장을 기소하는가 하면, 나라종금 수사 때도 청와대의 강력한 반발 기류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에 대해 두 번이나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검찰의 ‘당당한’ 태도는 여야 정치권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새정부 출범 초기 ‘표적수사’라는 의혹이 잇따랐지만 노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염동연 민주당 인사위원과 한광옥 전 민주당 대표를 구속하고 박주선·김홍일 의원을 소환 조사한 것은 대표적인 예.
최근 굿모닝시티 사건에 연루된 정대철 대표에 대한 검찰의 압박은 정치권과의 일전도 불사하겠다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검찰이 집권 여당 대표를 소환하고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검찰 사상 초유의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11일 검찰과 정치권은 극히 대조적인 장면을 연출, 양측 간 갈등의 현주소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날 오전 소집된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정대철 대표가 모두발언을 통해 “받은 돈은 모두 4억2천만원”이라고 검찰 내사결과를 시인했음에도 ‘검찰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임채정 의원은 “검찰이 본분을 떠나 정치검찰화되는 것이 우려된다”고 성토했고, 검사 출신의 박주선 의원은 “검찰이 소영웅주의적 공명심에 사로잡힌 듯하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검찰 성토가 한창이던 이날 송광수 검찰총장은 창원지검을 초도순시하면서 굿모닝게이트와 관련, “드러나는 것은 철저히 조사해 진상을 밝힐 것”이라고 말해 정도(正道) 수사를 천명했다.
검찰의 수사가 정 대표 외에 관련 의혹이 있는 여야 의원 20여 명에게까지 미치자 정치권은 “검찰권이 너무 크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7월14일 민주당 율사 출신 의원들은 검찰총장 국회출석 제도화를 추진하기도 했다.
반면 같은 날 굿모닝게이트 수사 책임자인 신상규 서울지검 3차장검사는 이번 사건은 굿모닝시티 윤창렬 대표가 3천5백억원에 달하는 분양금을 횡령, 정·관계에 로비한 일반적인 형사사건임에도 일부 정치인들이 사건을 정치자금 수사로 희석시키려 하고 있어 통탄을 금할 수 없다”며 정치권을 정면 비난했다.
최근 정가에서는 검찰 수뇌부를 지낸 최병국 한나라당 의원이 30세 가까이 어린 후배 여검사에게 면박을 당한 일이 화제가 되고 있다. 최 의원이 지인(知人) 연관 사건을 담당한 춘천지검 원주지청 이영림 검사(32·사시40회)에게 전화해 소환방식에 이의를 제기했다가 “변호인 선임계를 내고 전화하는 거냐”는 말을 들은 것. 이를 두고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찰 내에 흐르는 대 정치권 ‘냉기류’를 대변하는 사건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검찰은 최근 굿모닝시티 분양 비리에 연루된 의원들을 차례로 소환할 방침임을 밝혀 정치권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정치권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검찰의 ‘질주’에 제동을 걸려고 하나 ‘여론’에 밀려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대북송금 특검 과정에서 불거진 현대 비자금 1백50억원에 대한 수사도 정치권의 또 다른 ‘뇌관’이 될 전망. 특검 주변에서는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전달된 것으로 알려진 1백50억원이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갔을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만일 정치권에서 특검법 통과가 무산되면 1백50억원에 대한 수사는 검찰의 몫이 된다. 검찰이 수사를 통해 1백50억원의 행방을 찾아내고, 그것이 총선을 전후해 의원들에게 전달된 사실이 밝혀진다면 정치권은 또다시 한바탕 홍역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 들어 연이어 터져나오는 정치권력 연루 사건들은 검찰에게 정치권을 향해 휘두를 수 있는 여러 자루의 칼을 안겨주고 있다. 게다가 검찰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칼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이래저래 검찰과 정치권 간 ‘긴장’의 파고는 점차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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