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발 창고영화 가운데 가장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38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소방관’이다. 2020년 9월 크랭크업한 ‘소방관’은 2024년 12월 4일 개봉했다. 사실 ‘소방관’은 코로나19라는 악재에 주연배우 곽도원의 음주운전 사건이라는 더 큰 악재가 더해져 개봉이 상당 기간 늦춰진 케이스다. 영화계에선 작품이 잘 나왔다는 얘기가 꾸준히 이어졌음에도 개봉일을 잡지 못하다 2024년 겨울 성수기에 어렵게 개봉했는데, 다행히 많은 관객들을 만났다.
최근 극장가에서 흥행 1위를 달리고 있는 ‘하이파이브’ 역시 코로나19에 주연배우 유아인의 마약 불법 투약 사건이라는 겹겹이 악재로 2021년 11월에 크랭크업 하고도 2025년 5월 30일에야 개봉할 수 있었다. 현재 ‘하이파이브’는 꾸준히 일일 박스오피스 1위를 질주하며 개봉 6일째인 6월 4일까지 68만 8735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가볍게 100만 관객은 넘길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어디까지 흥행 기록을 이어갈지가 관건이다.
코로나19와 유아인 리스크라는 두 가지 악재에 휘말린 영화는 ‘승부’도 있다. 2021년 4월 크랭크업한 ‘승부’ 역시 오랜 기다림 끝에 2025년 3월 26일 개봉했다. 그렇지만 21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코로나19발 창고영화 가운데 1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모두 8편이다. ‘하이파이브’가 곧 9번째 영화로 합류할 예정이다. ‘소방관’이 38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1위이고 214만 명을 동원한 ‘승부’가 3위다. 2위는 256만 명을 동원한 ‘탈주’로 2022년 6월 크랭크업했지만 개봉은 2024년 7월 3일에 이뤄졌다.

5위는 17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시민덕희’로 2020년 12월 크랭크업한 뒤 2024년 1월 24일 개봉했다. 라미란이 원톱 주연을 맡은 ‘시민덕희’는 아무래도 출연진의 티켓 파워가 강한 작품은 아니다. 그럼에도 17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핸섬가이즈’와 ‘시민덕희’는 비교적 낮은 기대감에 극장가 비수기에 개봉했지만 예상을 뛰어 넘는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이외에도 123만 명을 동원한 ‘그녀가 죽었다’, 102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1947 보스톤’, 10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히든페이스’ 등이 100만 명 이상 관객을 동원하며 창고영화의 한계를 넘어섰다.
그렇지만 그 한계를 전혀 극복하지 못한 영화들도 많다. 4.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1980’, 5.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귀신경찰’, 7.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바이러스’, 8.1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결혼, 하겠나?’, 8.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1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스트리밍’ 등은 10만 명 이하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강신일, 김규리, 신현준, 고 김수미, 배두나, 김윤석, 이동휘, 정우, 김대명, 강하늘 등 영화계에서 검증된 스타급 배우들이 출연했음에도 흥행 성적은 매우 저조했다.

고 이선균의 유작인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와 ‘행복의 나라’는 2024년 7월 12일과 8월 14일에 개봉했다. 2021년 6월과 2022년 1월에 각각 크랭크업이 이뤄진 작품들이지만 개봉이 미뤄졌고 그사이인 2023년 12월 고 이선균이 세상을 떠났다. 이듬해 여름 극장가에서 유작 두 편이 한 달 간격을 두고 개봉했지만 각각 68만 명과 7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8월 개봉 예정인 윤아 안보현 주연의 ‘악마가 이사왔다’를 비롯해 최민식 박해일 주연의 ‘행복의 나라로’, 류승룡 박해준 주연의 ‘정가네 목장’ 등도 2025년 하반기에 개봉할 예정이다. 이 세 편을 제외하고도 아직 개봉일을 확정짓지 못한 창고영화가 여덟 편 정도 대기 중이다. ‘행복의 나라로’가 2019년 10월에 크랭크업해 가장 오랜 기간 창고 안에 있었고 다른 영화들은 2021년에서 2023년 사이에 크랭크업한 작품들이다.
이처럼 창고영화가 많아진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인 2019년 한국 극장가는 이례적인 호황을 누렸다. 500만 관객을 넘긴 영화가 무려 10편이나 됐는데 이 가운데 ‘극한직업’, ‘어벤져스: 엔드게임’, ‘겨울왕국2’, ‘알라딘’, ‘기생충’ 등 5편은 아예 1000만 관객을 기록했다. 성적으로 증명된 흥행 작품들을 보며 영화계에 투자가 쏟아지면서 제작 또한 활발해졌다. 그러나 이 직후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면서 개봉길이 막혀 그 많은 영화들이 대거 창고영화로 남은 것이다.
이후 극장가는 극심한 불황을 겪었고 영화계에 대한 투자도 급감하면서 제작 편수가 크게 줄었다. 그나마 지난 몇 년 동안은 100여 편에 육박하던 창고영화로 버틴 한국 영화계의 악몽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2025년에는 아직 창고영화가 남아 있어 영화계 5대 투자배급사가 개봉하는 상업영화가 10편은 넘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2026년부터는 이마저도 힘겨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5대 투자배급사가 매년 1~2편에서 2~3편만 개봉하는 상황이 임박했다는 의미다. 영화계에서는 한국 영화 제작 급감으로 매년 73일은 한국영화를 상영해야 하는 스크린쿼터도 채우기 힘들어 질 수도 있다는 한숨 섞인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김은 프리랜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