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7월 도쿄에서 열린 ‘행방불명전’은 7만 명의 관람객이 찾았다. 이어 나고야에서도 3만 명이 다녀가며 총 10만 명의 흥행을 기록했다. 예상치 못한 인기에 주최 측도 놀랐다는 후문이다. 이러한 열기에 힘입어 올해 7월 재전시가 결정됐다.
관람객들은 “실제 실종자의 물건처럼 생생하다” “모르는 사람의 유류품이지만 마음이 뒤숭숭하다”라고 반응했다. 전시물은 모두 허구이며, 공식 홈페이지에도 가상 설정임이 명시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구인 걸 알면서도 무섭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묘한 공포”라는 후기가 잇따랐다.
전시회를 기획한 TV도쿄의 오모리 도키오 프로듀서는 “행방불명이라는 단어 자체에 이미 섬뜩함이 내포돼 있다”고 했다.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잠적일 수도 있고 경계선이 모호하다. 이처럼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 미지의 공포로 이어진다”라는 설명이다.

흔히 경기가 좋지 않을 때 공포물이 인기를 끈다는 말이 있다. 이에 대해 오모리 프로듀서는 “일리가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1995년생인 나 역시 일본 경제가 좋아질 거란 희망을 느낀 적이 없다. 나보다 어린 세대는 더더욱 그럴 것”이라며 “불투명한 현실 속에서는 오히려 밝은 콘텐츠보다 어두운 감정을 건드리는 공포물이 위로가 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허물다
전시회뿐만 아니라 영상,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호러 콘텐츠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대체로 ‘일상을 잠식해가는 불안’을 주제로 삼는다. 유령이 나타나는 식의 극단적 공포가 아니라, 현실과 맞닿은 듯한 미세한 위화감이 서서히 공포로 번져가는 구조다.

소설은 “실종된 사람을 찾습니다. 아는 바가 있다면 제보 바랍니다”라는 독특한 호소로 시작된다. 실종 사건의 실마리를 쫓는 프리랜서 작가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모든 서사가 철저히 사실처럼 구성돼 있다. 픽션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있었던 일처럼 느껴지는 ‘페이크 다큐멘터리(모큐멘터리)’ 형식을 통해 독자들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경험을 한다.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의 생생한 공포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일본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이거 진짜 아냐?” “실제 사건인지 검색해봤다” 등의 반응이 잇따랐고, 호기심과 공포를 동시에 자극하며 입소문이 퍼졌다.
이 같은 열풍의 배경에는 “기저에 깔린 불안감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작품이 다루는 ‘실종’ ‘고립’ ‘불확실성’이 지금의 젊은 세대가 일상에서 체감하는 감정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일종의 ‘감정 아웃소싱’으로 해석된다. 일본 매체 아에라는 “아이돌 팬 활동이 현실에서 느끼기 어려운 감정을 대리 만족하는 수단이 되는 것처럼 공포물을 찾는 이유도 불안한 감정을 외부 콘텐츠에 투사해 해소하려는 방식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1990년대 호러 붐과의 차이점
일본에서 호러 장르가 대중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기폭제가 된 작품은 스즈키 코지의 소설 ‘링’이었다. “비디오테이프를 본 사람은 일주일 안에 죽는다”는 기묘한 설정으로 화제를 불러모았다.
이 작품은 원래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에 응모됐지만, 심사 과정에서 ‘미스터리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최종 후보에서 탈락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1991년 양장본으로 출간된 데 이어 1993년 문고본으로 재출간되면서 대중적 인기에 불이 붙었다. 흥미롭게도 초판 표지 띠에는 ‘공포소설’이라는 문구조차 없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 출판계에는 호러 장르라는 시장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 ‘링’의 성공은 일본 내 호러 문학 시장의 포문을 열었고, 여러 호러 작가들이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잠시 주춤했던 일본의 호러 붐은 최근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과 함께 다시 부상하고 있다.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스타일은 1990년대 호러가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공포를 다뤘던 것과는 또 다른 방향에서 젊은 세대의 감성을 파고든다. 호러 작가 아사미야 운가는 “매우 현실적이고, 친근한 공포를 그리는 것이 요즘 트렌드”라며 “바이러스나 미토콘드리아처럼 정체가 밝혀지는 예전 공포소설과 달리, 소설이 끝나도록 ‘무엇이 우리를 해치고 있는가’에 대한 정체가 드러나지 않아, 오히려 더 깊은 불안감을 남긴다”고 평가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